brunch

매거진 런던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 스타킹 Apr 17. 2020

99세 할아버지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유산

영국 코로나


톰 무어(Tom Moore)는 현재 99세로 세계 2차 대전 참전 용사이다. 오는 4월 30일 100세 생일을 맞아 가족과 함께 특별한 생일 파티를 계획했다. 하지만 코로나 19 발생으로 영국 전역에 이동 제한(Lockdown) 조치가 내려지면서 가족마저 한자리에 모일 수 없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생일 파티 대신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NHS 의료진을 위해 기부 챌린지를 결심했다.


< 세계 2차 대전 참전 용사 톰 무어 >


NHS는 영국 전 국민에게 무상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 의료기관이다. 보수당 집권 후 NHS 지원 예산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면서 재정난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COVID-19이 발생했고 의료진과 의료 기기 부족으로 매일 수백 명의 환자가 사망하고 있다. 의료진도 개인 보호 장비 부족으로 감염되어 십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영국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오늘만 861명이고 총 만 3천 명을 넘었다.

영국 정부는 현재 상황을 전시(War Time)로 인식한다. NHS 의료진을 최전방 요원(Front Line Key Worker)라고 부른다. 영국의 이동제한(Lockdown) 조치에 동참을 호소하는 슬로건도 'Stay Home, Protect NHS, Save Lives'이다.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 모두 함께 NHS를 지켜내야 한다.  


< 코로나19 퇴치 슬로건 >


톰 무어 할아버지의 챌린지도 이런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지만 자신의 생일 전까지 집 뒷마당을 100번 돌기로 하고 1000파운드 모금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의 도전은 SNS를 통해 빠르게 알려졌고 단 하루 만에 목표액을 훨씬 넘어 70만 파운드가 모금되었다. 도전은 계속되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1백만 파운드 모였다. 영국 아침 방송 GMB(Good Morning Britain)에도 할아버지가 소개되었는데 방송 진행자 피어스 모건(Piers Morgan)은 인터뷰 도중 그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10,000파운드 기부를 약속했다.

그 이후로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영국의 셀러브리티들도 할아버지를 응원하며 기부에 동참했다. 보건 복지부 장관 핸콕 (Matt Hancock), 내무부 장관 리쉬 수낙(Rishi Shunak)도 코로나19 정부 대응 정례 브리핑에서 톰 무어에게 경의를 표하고 감사를 전했다. 찰스 왕세자도 공개적으로 할아버지를 지지했다. 오늘까지 총 80만 명이 기부에 동참하고 모금액은 1600만 파운드 (한화 255억 원)에 달했다. 정부의 지원 부족을 개인이 돕겠다고 나서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 톰 무어 할아버지에게 감사를 전하는 NHS 의료진>


NHS를 향한 응원과 지원은 이뿐만이 아니다. NHS 자원봉사 모집에 며칠 만에 70만 명이 지원했다. 대형 마트는 NHS 관련자에게 우선적으로 생필품 구입이 가능하도록 했다. 커피숍과 빵집은 럭다운(Lockdown)으로 영업이 중지되었지만 NHS에 무료로 빵과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는다. 이튼 컬리지(Eton Colleage)와 같은 사립학교는 NHS의료진에게 기숙사를 숙소로 제공했다. 자발적으로 조직된 지역 네트워크 (Mutual Aid Network)에서는 NHS 의료진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나누고 대신 장을 봐주거나 의료진들의 아이들을 돌보아 주기도 한다.

매주 목요일 저녁 8시가 되면 럭다운(Lockdown)으로 집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NHS 관련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박수 세리모니를 한다. 국가가 대비하지 못해 드러난 약한 고리를 개인 각자가 자발적으로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지탱하고 있다.


<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NHS 응원 세리모니 >


정부는 매일 오후 5시 진행되는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에서 과학과 의학적 근거만을 바탕으로 필요한 시기에 가장 적절한 조치로 대응하고 있다고 발표한다. 이제는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이 들지만 영국 국민들은 순진한 것인지 인내심이 깊은 것인지 비판 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영국 시민들을 보면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관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다른 것인가 싶기도하다. 영국은 어떤 면에서는 국민과 국가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가 운영하는 나라처럼 보인다.

오늘부로 이동제한 조치가 3주 연장되었다. 이 시간 동안 톰 모어 할아버지가 남겨준 사회적 책임이라는 유산을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더불어 할아버지가 100세 생일을 지나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함께 하시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굿프라이데이와 부활절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