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유JiYou Apr 15. 2021

멈추지 않고 피아노 치는 방법

좋아하는 곡 치기, 치고 싶은 곡 치기, 쉬운 곡 치기 그리고...

이쯤에서 나의 오랜 피아노 연습 습관을 공유해 보려 한다.

나는 일할 때 주로 45분 개인 레슨을 하고 있다. 아주 어리거나 진도를 버거워하는 초보 학생들에겐 30분 레슨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45분이다. 그리고 15분을 쉬고 다음 학생을 받는다. 하루에 적을 땐 두 명, 많을 땐 8명의 학생들과 수업을 한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학생 수일 테지만, 어쨌든 수업을 하는 날에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나만의 시간을 갖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15분이라는 쉬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밥을 먹는데 쓰기도 하고, 잠시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화장실도 가고.. 그리고 피아노 연습을 한다. 그래서 내가 이 15분이라는 시간을 마법의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생활 패턴에서는 아주 중요한 개인 시간이다 보니. 


15분 동안 피아노를 칠 때 꼭 염두에 두는 것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무얼 연습해야 할지 미리 확실히 알고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오랜 습관으로 어느 부분을 연습할지 잘 알고 있다. 우선 순위는 자주 틀리는 부분, 두 번째는 새로운 부분이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에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치고 싶었던 곡들을 마음껏 친다. 


연습곡은 세 부류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고른다. 매 달, 그 달에 연습할 악보들을 따로 분류해 두고 연습하고 잘 된 곡은 끝내고 다른 곡을 고르고 잘 안 되는 곡은 그다음 달에도 또 연습한다.


첫째는, 내가 좋아하는 곡으로 고른다. 난이도는 중상 정도로, 내가 악보를 보기에 그리 어렵지 않지만 아름다운 곡을 고른다. 뉴에이지와 영화음악 작곡가들의 곡들, 주로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곡이나 마이클 니먼, 류이치 사카모토, 히사이시 조 등의 곡들이나 그밖에 클래식 곡으로는 에릭 사티, 슈베르트, 모차르트, 바흐 등의 곡들 중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곡들을 위주로 고른다. 나에게 어렵지 않은 곡은 내가 악보를 처음 보았을 때 별 노력을 들이지 않고 쉽게 칠 수 있는 곡들이다. 보통 한 두 번 만에 악보를 끝까지 칠 수 있다. 이런 곡들을 그냥 악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음악 표현이 서툴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충분히 연습하고 녹음이나 녹화를 해 보는 것을 목표로 연습한다. 쉬운 곡도 자주 틀리고 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없애고 누가 들어도 좋게 들리게 연습해 둔다. 최대한 완성도 있는 수준까지 다다르도록 연습한다. 하지만 나는 잘 외우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잘 외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엔 억지로라도 외우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나를 고문하지 않는다. 아주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다음 곡을 고른다.


두 번째는, 내가 치고 싶은 곡을 고른다. 좋아하는 곡과 치고 싶은 곡이 무엇이 다르냐고 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다르다. 나에게 좋아하는 곡은 굳이 치지 않고 그냥 들어도 되는 것이고, 치고 싶은 곡은 어렵지만 도전하고 싶은 것이다. 가끔은 너무 어려워서 편하게 악보를 볼 수 없고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야만 하는 곡으로 고른다. 들리는 음악이랑 이 악보랑 정말 같은가?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곡을 고른다. 이 빠르기로 정말 인간이 칠 수 있는 건가 싶어 음반을 찾으면 누군가는 꼭 쳐냈기에 자괴감이 드는 곡을 고른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꼭 한 번 쳐보고 싶기에 고른다. 완성하려면 평생이 걸릴 수도 있지만 그 곡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어 시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곡을 고른다.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테크닉을 연마한 후에야 비로소 완성되게 칠 수 있는 곡을 나는 '치고 싶은 곡'이라고 부른다. 곡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일종의 도전 정신을 일으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쇼팽의 에튀드들이나 발라드들, 베토벤 소나타들, 슈베르트, 슈만의 곡들과 리스트의 곡들 등등... 구체적인 곡을 하나만 예로 들면 유튜브에서 유명한 '라 캄파넬라' 같은 곡들을 말한다. 좋아하면 그냥 들으면 되지만 이 곡들을 '치고 싶어'지면 연습을 해야 한다. 이런 곡들은 '완성'을 목표로 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느낌을 어그러뜨리지 않는 것을 우선 목표로 잡고 연습한다. 하지만 어느 한 구간 멋진 부분은 꼭 잘 쳐서 녹음을 하거나 녹화를 해 둔다. 완주는 목표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의도치 않게 보통 완주를 하게 된다. 치다 보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다가 도저히 안돼서 포기한 곡들도 있고 (아까 그 '라 캄파렐라') 끝까지 치긴 쳤는데 뭔가 찜찜한 상태로 끝낸 곡도 있다. (사랑의 꿈.. 그러고 보니 다 리스트의 곡이다..)


세 번째로 내가 고르는 곡들은 아주 쉬운 곡들이다. 주로 나의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곡들이나, 어렸을 적에 배운 곡들을 다시 쳐 본다. 나는 쉬운 악보를 계속 발굴하고 쳐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렵고 긴 곡들을 칠 때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또 곡의 구성이나 표현법을 좀 더 편안하게 배울 수 있다. 손가락의 움직임들을 조금 더 편안하게 관찰할 수 있고, 머리를 식히는데도 도움이 된다. 바흐의 어린이를 위한 프렐류드나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차이코프스키의 어린이를 위한 연습곡집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부르크 뮐러.. 나의 꿈은 이 작곡가처럼 되는 것이다. 정말 너무 간결하고도 아름다운 곡들을 많이 작곡했다. 아마도 그는 좋은 피아노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바이엘, 체르니, 부르크 뮐러를 무지 좋아했다. 그 선율들이 마음에 콕 박힐만큼 아름다웠다. 친구들이 그 곡들을 너무 치기 싫어할 때 나는 체르니 30번과 부르크 뮐러 25번, 그리고 소나티네 앨범 CD를 구입해서 들었을 정도로 그 연습곡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렇게 못 쳤지만 자라면서 그중 한 곡씩을 골라 음원으로 들었던 것처럼 연습해보곤 했다. 완벽하게 되지 않는 곡도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곡을 내가 샀던 CD에서 들었던 것처럼 칠 수 있다. 물론 실수도 한다. 이런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쉬운 곡들도 다시 연습한다. 손가락들이 말을 잘 들어줄 때면 날아갈 듯 기쁘게 그 음악들을 만끽한다. 곡이 쉽기도 하지만 그래서 나의 표현력은 극에 달할 수 있다. 나는 그 기쁨을 느끼기 위해 아주 쉬운 곡들을 꼭 한번씩 다시 연습한다. 


그리고 이 외에 내가 또 연습하는 곡들이 있다. 바로 내 유튜브 채널에 주기적으로 올리는 곡들이다. 주로 가요나 뉴에이지 곡으로 신청곡을 받고 그것을 새로 편곡해 악보를 만들고 연주해 올린다. 내가 평소 쳐보고 싶었던 곡들이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할 곡들을 골라 연주해 올리기도 한다. 여러 번 녹화한 후 제일 잘 된 것을 골라 같은 화면에 악보와 피아노위의 내 손과 페달까지 다 보이도록 편집해서 올린다. 악보는 주로 내가 새로 만든다. 클래식 악보는 원곡일 때는 기존에 있는 악보를 쓰고, 쉽게 편곡할 때는 직접 편곡해 악보를 만든다. 아주 짧고 쉬운 곡을 올릴 때도 있고, 어려운 곡을 일부러 아주 느리게 쳐서 누군가에게 연습 가이드가 되고자 하여 만든 영상도 있다. 작곡한 곡들도 있는데, 주로 초보자들을 위한 피아노 교재이다. 그리고 가끔 레슨 영상도 만들어 올리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혼자 연습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확실히 실력이 는다. 

내가 연습한 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업로드를 하니 그 영상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처음엔 구독자도 별로 없고 조회수도 별로 없었지만, 조금씩 꾸준히 구독자와 조회수가 올라갔고, 점점 자주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꾸준히 영상 작업을 계속하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실력이 늘어 있었다. 피아노 연습도 보다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내 채널의 주된 타겟층은 연령 상관없는 피아노 초중급 독학러들이다. 그래서 내가 고르는 곡들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그래도 그중엔 실수 없이 잘 쳐서 녹화하기에 꽤 까다로운 음악들이 있다. (보통 대부분 까다롭다. 쉬운 곡들도 녹화를 하려면 괜히 긴장되고 잘 안된다.) 그런데 녹화를 위해 항상 나의 현재 수준에서 가장 완성도 있는 연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실력이 느는 것이다. 그래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나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습관이나 기회를 만들면 피아노 칠 때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 학생들은 대부분 가족 중 누구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피아노를 치거나, 여자 친구 또는 남자 친구에게 들려주려고 친다. 아주 좋은 동기부여이다. 하지만 만약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거나 그러기 꺼려진다면 나처럼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부끄럽다면 비디오를 찍을 때 얼굴은 얼마든지 가릴 수 있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이 사실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을 활용하는 목적은 순전히 나를 위해서다. 내가 나를 보는 첫 번째 관객이 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나의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책임감이 생기며 내가 연습하고 있는 그 곡의 완성도를 확실히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내 현 수준의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면 된다. 완주하지 않아도 된다. 인스타에 1분 영상을 올리거나 릴스를 활용해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을 올려보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지인들에게 보이기 부끄럽다면 부계정 하나를 만들어 얼굴을 가리고 피아노 영상만 올리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그곳이 머지않아 나만의 작은 콘서트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피아노 치기를 계속하게 만드는 훌륭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혹시 누가 아는가. 그 공간이 나에게 다른 어떤 것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나서 1년 뒤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년엔 책이 나올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함께 걸어가 보자. 

연습하고 싶은 곡을 고르고, 꾸준히 연습하고, 누군가에게 보여주자. 그러면 나도 모르게 피아노 실력이 늘고 자꾸만 치고 싶은 곡들이 생기게 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명심할 것은 반드시 당신의 시간으로 여유롭게 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가라는 것. 당신이 피아노를 치는 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서니까 말이다.










http://www.youtube.com/c/Tutopianorial















매거진의 이전글 잘 쳐야 한다는 생각 버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