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던 중에 걷다가 너무 지쳐서 공원 분수대에 앉아 오래도록 쉬었던 경험이 있다.
말 그대로 멍을 때리고 앉아 있는데 책 한 권이라도 가져올 걸 하며 자책 중이었다.
왜 가만히 있으면 괜히 시간을 죽이는 것 같을까..
쉬려고 여행을 왔으면서도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또 하려는 내가 안쓰러웠다.
그러다가 물가에서 나처럼 멍 때리는 갈매기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갈매기들이 왜 도시 한복판에 있는 분수대에 앉아서 멍을 때리는 거지?
유럽의 기후가 바뀌어 생태계가 변하는 현상 중 하나인데 나는 지금 그것을 목격하고 있는 건가?
그들에게 이미 분수대가 익숙해 보인다.
어쩜 저렇게 평화롭지. 내가 이렇게 보고 있는데.. 내가 무섭지 않아? 긴장이 안돼?
이 새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다들 모르는 사이인지 마주 보는 새들은 없고 쪼로로 일렬로 앉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듣지 못하는 초음파로 대화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새들은 눈이 살짝 옆에 달린 편이니까 대화할 때 마주 볼 필요가 없을지도..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서로 바라보는 게 되는 거니까.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신체구조 느낌이다.
날아다니다 힘들어서 쉬고 있는 걸까? 나처럼.
얘네도 딱히 할 일이 없었을 테니… 사람을 구경하는 것 같았다.
내가 자기들을 구경하고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나는 관찰을 하게 되었지만.
그리고 지금은 글도 쓰고 있고…
이런 경험과 느낌을 글로 남기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건 인간들만의 특성일 거다.
갈매기가 그날 집에 가서 일기를 썼을 것 같지는 않다. 확실히..
갈매기들은 그냥..
멍 때리다가 털을 고르다가 갑자기 물에 뛰어들어 몸을 씻고 갑자기 울어댔다.
내 시선을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나랑 눈이 마주친 것 같기도 한데 반응이 없고
자기들끼리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유 없는 집중력을 가만히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 쓰는 것 같았다.
사실 이유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세상엔 더 많으니까.
이유나 목적 없는 행동을 하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멍 때리는 건 하나의 자연현상이라고 보면 되는 거다.
그러다 비행기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게 보였다.
동시에 한 마리의 새가 우연히 비행기 아래로 날았다.
내 시선에서 날아가는 비행기와 새가 원근감을 두고 겹쳐 보였다.
배를 보이고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폼이 아래에서 보니 둘이 닮았다.
비행기는 목적지가 있었을 거고
새는 목적지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곧바로 분수대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는 거 보면..
나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 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앉아있어서 다리가 저려 제자리에서 다리를 털어 보았다.
옆에 두었던 가방도 탁탁 털어서 어깨에 메고
머리에 얹어 두었던 선글라스도 다시 얼굴에 씌웠다.
내가 그러는 동안 갈매기들이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안 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
제목 : 새
새들이 물가에 쪼르르 앉아 있다
새들의 눈은 인간과 달라
옆에 앉아도 마주 보는 것
정면을 바라봐도 상대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새들이
털을 고른다
물로 뛰어들어 몸을 씻는다
별안간 소리를 지른다
가려운 곳을 긁는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죄스러워
할 일을 찾다 새를 보았는데
최선을 다해 쉬고 있는 새들을 보니
이제
부끄럽다
열심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비행기가 날고 그 아래
비행기보다 더 큰 배를 가진 새가 날았다
비행기는 목적지를 향해 날았고
새는 어디론가 훌쩍 날았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새가 나를 보았다
나는 가방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새가 나를 보았다
나는 호텔방을 향해서 다시 걸었다
새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