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과 당찬 다짐
떠나는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이 들었다.
시대의 통념에 반하는 선택이었고 당장 다음 달 수입원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곳을 떠나겠다고 말하는 순간에 내 눈빛이 단호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확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바뀌는 것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으레 사람들을 떠날 때는 내 몸이 그 시공간을 떠난다는 사실에 더해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평소 슬픈 무드에 빠지는 경우가 드문데도 떠나는 날에 만큼은 혼자서 몰래 울컥거리는 목을 음음, 큼큼거리며 잠재우는 때가 적어도 두 번씩은 있다.
‘일로 만난 사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직전 회사의 몇 팀원들은 직장 동료에서 어느새 지인이 여는 파티에도 초대할 만큼 친한 친구들이 되었다. 우리는 인스타 친구도 맺었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인스타 공유하는 거 아니라고 무슨무슨 법에 적혀있지 않았었나…. 무튼, 모든 종류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 버둥거리며 노력해 온 사람도 고집스럽게 지켜온 가장 베이직한 고정관념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은 멀고, 탈피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계몽의 기회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왜 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회사에 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아무도 말 안 해 준거야. 이것이 진짜인지 실험하고 검증하느라 이 년이 걸렸어요. 의심이 들어도 꾹꾹 누르니 터져 버렸지요.
온몸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일하다 외출할 틈이 날 때마다 내 몸은 회색 건물 밖의 햇빛이 잘 드는 길로 나를 이끌었다. 건물 사이를 걷는 대신 나무 사이를 걸었고, 점심을 빨리 먹고서라도 조금 떨어진 한강공원의 끝자락을 걸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무언가를 그만둘 때마다 불안했다. 단순 취미일지라도 시작하면 잘할 때까지 끝을 봐야 한다고 배웠다. 최소한 1년은 버텨봐,라는 조언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불합격을 극복하는 것이 다음 목표여야만 했고 나의 내추럴 본 (natural-born) 오기는 그 목표에 추진력을 주었다. 그렇지만 다시 오지 않을 올해, 이번 달, 이번 주, 그리고 오늘을 더 이상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졌다. 관련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내 미래가 그것으로 정해졌다고 믿고 살고 싶지 않다. 오늘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자유롭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싶다. 내 몸과 머리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들을 뒷전에 두고 싶지 않다. 수년이 지나도 ‘하고 싶은 것’ 리스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들을 방치해 뒀지만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그것들을 이제는 들여다봐주고 싶다.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일은 셀 수도 없는 조합의 가능성을 제치고 일어난 전기적 현상인데, 그렇게 소중하고 놀라운 것을 없어지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걸 외면한 나는 미래의 나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르는 이 “쓰고 싶다”는 마음은 바닷속으로 점점 사라지다가 12월 말에 떠난다는 선택을 내림과 동시에 가까스로 끌어올려졌다.
작년에는 ‘살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알아보기 위해 그렇게 사는 사람들의 인터뷰나 글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것도 충분하지 않으면 직접 찾아가서 물었다. 왜 회사에 다니지 않는지, 왜 불안해도 하고 싶은 것을 하는지. 대답은 비슷했다. 그게 좋으니까. 내겐 그것이 중요하니까. 어쩌면 나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걸 꼭 음성으로 여러 번 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올해는 내 마음이 향하는 곳에 가까이 간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간다. 나를 용감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곁으로 간다. 나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러,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내러 간다.
미국에 있는 오랜 친구와 신년 근황을 나누었다. 곧 너를 보러 갈 거라는 말과 함께,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감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데, 계획에 없던 문장이 뇌와 손가락을 거쳐 문자화되었다: well, It just feels so r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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