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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게무침

할머니를 떠나보내며

by 한지유


당신은 죽음에 대해 얼마나 자주 떠올리는가?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깊어진다.'

정말 이 문장대로 라면 나는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사색하고 빠져보기로 했다. 죽음의 바다에서 다시금 내 삶을, 내 삶의 의미를 건져 올려 보고 싶다.


<메멘토 모리, 죽음에 관하여>






나는 언제나 끝마침표에 글을 적는 편이다. 잔상이나 마음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니다가도 손으로 글을 적거나, 타이핑을 하고 있다 보면 하나하나 내려앉아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랄까.


이번 주 할머니를 떠나보냈다.

평일 낮, 되게 이상한 시간에 전화가 울렸다. 그리고 그 직감은 맞았다.


할머니를 떠나보내며 다시 한번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잊고 살만하면 문득문득 내 곁을 찾아온다. 이번에도 죽음이라는 단어를 까마득히 잊고 살자, 또 한 번 코앞에 찾아왔다. 죽음은 너의 곁에 있다며 알려주듯이.


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의 곁에 없지만 그토록 바라던 천국에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따스히 지내실걸 안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그저 그동안 키워주신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바쁘단 핑계로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고되고 힘들었던 할머니의 삶이 애달퍼서 눈물이 날 뿐이리라.






6년 전 대학교 졸업작품으로 '지유식당'이라는 주제로 미디어 작품을 만들었다. 그 출발은 사실 할머니였다.


"여러분은 자신만의 추억이 담긴 음식이 있나요?"

지유식당은 우리의 마음에 있을법한, 추억을 요리하는 식당입니다.
음식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이야기와 추억을 담고 있습니다. 지유식당은 음식 속에 담긴 이야기와 추억을 함께 나누기 위해 기획한 디지털 콘텐츠 디자인입니다.

바쁜 삶 속에 매일 끼니를 챙기는 것 마저 쉽지 않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분이 가끔은 자신만의 추억이 담겨있는 음식을 떠올리고 그 추억을 나누며 식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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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할머니는 매 끼니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다. 사촌오빠들이 먹을 새라 제일 맛난 과자와 반찬은 따로 숨겨두고 나만 주실 정도로 아끼셨다. 할머니의 음식을 먹고 자란 덕에 나는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패스트푸트를 먹어본 적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다.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키워지던 내가 초등학생 때 다른 지역으로 떠난 이후로 내가 할머니 집을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학생이라는 이유로, 멀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찾아뵙지 못했는데 18년 6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언제까지고 곁에 계시지 않을 것이라는 진실과 그전에 할머니와의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 그때부터 할머니께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더 간절해졌다.



그렇게 광주에 내려가 할머니께 쇠고기 장조림과 게무침을 배웠다. 장을 보러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얘가 내 손녀딸이에요' 하시는 할머니의 말에서 기분 좋은 자랑이 느껴져 괜스레 죄송해졌다. 이제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에 몇 번이고 "참말로 오늘 가야~"라고 물으시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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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의 정, 그리고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주는 것을 기뻐하는 모습은 다 할머니께 보고 배운 것 같다. 초등학생 저학년 때부터 친구들과 사촌동생들을 집으로 데려와 케첩밥이며, 계란밥이며 해주던 나니까.







왜 이제야 왔을까, 지금이라도 와서 다행이라 생각하던 게 6년 전.

이제는 갈 수가 없다.

한 번만 더 갈걸.



그래도 참 다행이다.

할머니를 기록해 둬서.

할머니의 그 따스하던 정과 손맛을 조금이라도 남겨둬서.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질 때 꺼내 볼 추억이 있어서.

할머니께 건강하게 성인이 된 내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여드려서.







"밥은 묵었냐잉"

"아무리 바빠도 밥은 거르지 말어~"

하시던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밥 먹었는지 안부 묻는 전화를 시답게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때를 놓치지 말자.










6년 전 기록해 뒀던 졸업작품, 지유식당. 기록해 둬서 참 다행이다. : )

시의성, 대중성에는 꽝인 나지만, 앞으로도 언제 봐도 좋은 그런 기록을 남기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XGYq4bzcQ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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