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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유 Jul 19. 2024

죽음의 물살, 이안류에 휩쓸리다

나는 내 자리에서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주저 없이 살릴 것이다.


당신은 죽음에 대해 얼마나 자주 떠올리는가?

신기하게도 이상하게도 최근 한 두 달 새에 내게 죽음을 각성하게 하는 사건이 겹쳐 일어났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깊어진다.'

정말 이 문장대로 라면 나는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사색하고 빠져보기로 했다. 죽음의 바다에서 다시금 내 삶을, 내 삶의 의미를 건져 올려 보고 싶다.


<메멘토 모리, 죽음에 관하여>






에피소드 2.

죽음의 물살, 이안류에 휩쓸리다



죽음에 관해 한참 관심이 많아졌던 어느 날, 나는 오랜만에 제주 본가로 향했다.

나와 '물'이라는 관심사와 취미가 맞는 동료와 함께였다.


스노클링을 하려고 폭포, 황우지해안, 난드르 바다까지 모두 돌았지만 어제 비가 많이 와서인지 폭포는 출입금지, 황우지 해안도 낙석 위험으로 출입금지, 난드르 바다는 흙탕물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포기하고 중문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사실 중문 해수욕장은 내가 서핑보드를 들고서 자주 왔던 아주 친숙한 바다다. 그날은 서핑 대회가 열려서 바다에는 어림잡아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었고 드문드문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스노클링을 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서로 암튜브를 하나씩 나눠 끼고 바다로 향했다. 파도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고, 발에 땅이 닿는 곳에서 1년 만에 느끼는 바다의 짠내음과 파도를 느끼며 헤엄쳤다.


들어간 지 3분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동료가 내게 외쳤다.

"지유님, 너무 뒤로 간 것 같아요, 밖으로 나오세요~"


어라? 나 분명 발이 땅에 닿는 곳에 있었는데 어느새 내가 백사장과 상당히 멀어져 있다.


사실 나는 제주 사람 답지 않게 수영을 잘 못한다. 수영장에서 빠질 뻔한 적이 있어 깊은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초급 서핑까지는 보드가 있어서 서핑을 즐겼지만 내 안전을 위해 작년에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다.


그래서 발이 닿지 않는 위치에 떠있는 게 살짝 불안해진 나는 수영을 시작했다. 배웠던 대로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자유형 수업에서 배운 대로 팔을 젓고 다리를 저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봤는데 그대로다. 되려 약간 멀어진 기분이다.

다시 헤엄쳤다.

'그래, 배운 대로 다시 해보자.'


수영을 멈추고 앞을 봤는데 나아가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수영을 해도 백사장 육지 쪽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살짝 패닉이 왔다. 표정은 굳었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날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팀원에게 손을 들어 커다란 엑스 표시를 했다.

'저 혼자 못 나가겠어요'


다행히 파도는 높지 않았지만, 넘실댈 때마다 물을 먹고 다시 나오기를 반복했다. 작은 암튜브에 유지해 어떻게든 바다에 떠있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미 약간의 패닉 상태였다.




천만다행일까, 이게 바로 천운일까. 라이프가드 커플이 마침 휴가를 나와 물놀이를 하던 우리 근처에서 놀고 있었고 내가 조금 걱정됐는지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프 가드님은 도와달라는 내 동료의 말을 듣자마자 내 쪽으로 빠르게 헤엄쳐서 다가왔다.


내가 패닉 상태인지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하려고 살짝 떨어진 채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숨 쉴 수 있겠어요?"

"네, 저 숨은 쉴 수 있어요"

"힘 빼고 숨 쉬세요. 괜찮아요. 도와드릴게요"


라이프가드님의 말에 조금은 안심한 나는 뒤로 누워 힘을 빼고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배영을 시도했다.

'그래, 배영도 배웠으니까 힘 빼고 다시 해보자' 하며 다시 힘차게 손과 발을 굴렸다.


한참 배영을 했을까 고개를 돌려 다시 육지를 바라봤는데, 가깝지 않다. 점점 더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라이프 가드님도 나와 살짝 멀어졌고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안류는 파도가 치는 힘을 거꾸로 받아 빠르게 바다 쪽으로 빨려가는 조류의 흐름이고, 초속 2~3M다. 이안류는 몇 분 간 지속되며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르를 수 없는 불가항력의 힘이다.



그땐 몰랐는데 라이프 가드님도 나와 같이 이안류에 휩쓸린 거다. 나를 구하려고 시도했지만 대자연의 힘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같이 휩쓸려갔다. 본인의 힘으로 나를 구할 수 없음을 깨달은 라이프 가드님은 그때부터 외치기 시작했다.

"도와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도와주세요!"


분명 오늘은 서핑대회 날이고, 저 멀리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백사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우리의 외침이 도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 안되는구나. 나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진 나도 공포에 질린 채 같이 소리를 질렀다.

"살려주세요"


하지만 라이프 가드님은 말했다.

"소리는 제가 지를 테니 힘 빼고 숨 쉬세요. 호흡하세요. 도와주러 올 거예요"


힘 빼고 숨 쉬라고, 괜찮을 거라고, 근처에서 외치는 말에 나는 다시 힘을 빼보려고, 안정을 되찾으려고 애썼고, 조금씩 더 크게 넘실 대는 파도가 덮쳐올 때마다 물을 먹었지만 다시 올라와서 숨을 쉬며 버텼다.


그때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살고 싶다'

정말 간절하게 살고 싶다.




도와달라는 말을 한 10번쯤 외쳤을까 눈앞에 서핑 보드를 탄 서퍼들이 도착했다. 한 명은 나를 앞에 태우고 한 명은 라이프 가드님을 앞에 태웠다.


보드 앞에 나를 태운 서퍼님은 말했다.

“이제 같이 패들 해서 나갈 거예요. 나갈 때까지 쉬지 말고 계속 저으세요”


그렇게 패들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힘이 빠져서 팔을 젓는 힘이 약해질 때마다 서퍼님은 말했다.

“쉬면 안 돼요. 계속 저으셔야 해요”


그때의 엄청난 챌린지는 발이 땅에 붙어 있는 안전한 환경에서 하는 응원 따위가 아니었다. 살아서 나가야 한다는 강력한 푸시와 의지였다. 서로의 패들 박자가 꼬여서 팔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파도가 다가올 때면 파도의 속도에 맞춰서 죽기 살기로 팔을 저어서 파도를 타고, 다시 패들을 하고, 파도를 타고. 크고 작은 다섯 번의 파도를 탔을 때쯤 모래사장에 당도했다.


발이 모래에 닿았을 때의 그 감각이 생생하다.

‘살았다’

팀원과 주변 사람들이 너무 다행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아서 나온 게 감사하고 신기한 순간이었다.





죽음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


집에 와서 곱씹어보니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다. 작년에도, 재 작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이맘때쯤 이안류 사고가 있었고 그중에는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죽음은 50년 뒤 미래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 코 앞에 있었다.


‘난 어떻게 산 걸까? 살려주신 걸까?’

나와 라이프 가드님 모두 산 것이 말이 안 될 정도로 기적이었다. 본인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날 살려준 라이프 가드님과 서퍼님의 도움이 헛되지 않도록 살고 싶다.



라이프가드님은 튜브도, 구명조끼도 없었지만 그저 나를 살리기 위해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살릴 수 있는 생명을 살릴 거고, 주저하지 않을 거다.

그 방법이 코칭이 되었든, 디자인이 되었든, 뭐든 간에. 그게 날 살려주신 이유 아닐까?



나를 태우고 나온 서퍼님은 나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팔목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살렸다.

나는 다정한 전사이자 강력한 지지자가 될 것이다.

안전한 환경에서 ‘할 수 있을 거예요’ 응원만 하는 게 아니라 때로는 강하게 밀어붙이기도 하고, 적나라하게 스스로 직면하게 만들어 작은 상처를 입힐 수도 있지만 결국은 그 사람이 해낼 수 있게 함께 할 것이다.




마침 오늘은 내가 태어난 날이다.

태어난 날, 죽음의 바다에서 다시금 내 삶을, 내 삶의 의미를 건져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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