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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유 Aug 03. 2024

미뤄도 되는 것, 그리고 미뤄선 안 되는 것

내가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난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은 죽음에 대해 얼마나 자주 떠올리는가?

신기하게도 이상하게도 최근 한 두 달 새에 내게 죽음을 각성하게 하는 사건이 겹쳐 일어났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깊어진다.'

정말 이 문장대로 라면 나는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사색하고 빠져보기로 했다. 죽음의 바다에서 다시금 내 삶을, 내 삶의 의미를 건져 올려 보고 싶다.


<메멘토 모리, 죽음에 관하여>






에피소드 3.

미뤄도 되는 것, 그리고 미뤄선 안 되는 것


최근 심장박동 속 느껴진 이상한 이질감, 이안류에 휩쓸릴뻔한 사건으로 연달아 죽음을 각성하게 된 이후로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과연 내가 일주일 뒤에 죽는다면 난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일주일 뒤가 아니라 한 달 뒤에 죽는다면?”

“한 달 뒤가 아니라 일 년 뒤라면?”


사실 최근까지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남기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뭔가를 남기고 싶었다. 내가 없어도 남을 글, 서비스, 회사 이런 것들.

이것이 내가 꾸준히 글을 쓰고 업으로 디자인을 하는 이유기도 하고, 창업을 고민하는 이유기도하다.



그런데 내 죽음을 한 달 뒤, 일 년 뒤로 앞당기면 갑자기 불안감이 올라온다.

“당장 퇴사를 하고 여행을 떠나야 하나? 내가 회사에서 이렇게 일만 열심히 할 땐가?”

내가 당장 죽는 것만 생각하면 괜스레 내가 안 해봤던 모든 것을 다 해보고, 안 가봤던 곳에 가보고, 안 먹어봤던 음식을 먹고 모든 것을 해내야 할 것 같아 투두리스트가 쌓이는 기분이다. 시야가 좁아짐을 느꼈다.


그리고 100년 이상 지속되는 서비스나 기업은 하루아침에, 한 달 만에 만들어질 수 없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조금은 허무한 결론에 도달했다.


사랑하는 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을 잘 지켜내야겠다.

매일매일을 이렇게 산다면, 그런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그렇게 살아간다면 결국엔 그 끝에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내가 죽어도 지속될 회사가 생기겠다는.



이 결론에 이르고 나서 구분을 짓기 시작했다.

내가 미뤄도 되는 것과 미뤄선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첫 번째,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 보내기


가장 미뤄선 안될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식사, 대화, 귀한 시간이다. 그 외의 대부분의 것은 사실 미뤄도 괜찮은 것들이다. 당시에는 미뤄도 괜찮은 것들이 더 중요해 보일지라도 따져보면 아닌 경우가 태반이다.



미뤄선 안될 것을 미루게 하는 가장 큰 적은 ‘다음에 보지 뭐, 다음에 하지 뭐’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이런 시간 미루거나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할머니, 사촌동생들에게 연락해서 밥 한 먼 더 먹고, 얼굴 한 번 더 보고, 대화 한 번 더하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보지 뭐’하고 지금 미루면 한 달이 미뤄지고, 일 년이 미뤄지고 나중에는 결국 후회할 것 같아서.



제주 본가로 잠시 내려갔던 6월 말, 다시 서울로 떠나기 전날 엄마, 아빠와 집 마당에서 맛있는 바비큐를 구웠다. 식사를 하고 나서는 아빠랑 채소가 심어진 좁은 마당에서 굳이 굳이 배드민턴 공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렸다.


평일에는 짬을 내 할머니와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다. 과연 내가 할머니께 몇 번이나 더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을까 헤아려보면 50번, 어쩌면 10번도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촌동생들과는 언니인척 생색내며 1차로는 맛있는 회를, 2차로는 시원한 맥주를 샀다. 성인이 되고 동생들과 술을 마신건 처음이었는데 처음으로 어린 시절 서로의 추억과 상처를 나눴다. 오늘 한 이야기의 전부가 아닌 반 정도만 기억해 주면 좋겠다는 동생들의 말과 함께 그저 듣고 또 들었다.








두 번째,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누리기


나는 자연, 특히 움직이는 ‘물’을 사랑한다.

나는 재즈, 하우스, 잔잔한 음악을 사랑한다.

나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순간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때에 맞게 온전히 누렸다. 흩날리는 벚꽃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루프탑에서 하는 식사도, 한여름의 청계천도 다 때가 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즐겨야 한다.



서울 시청 근처에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청계천에서 ‘책 읽는 야외 도서관’ 행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흔들리는 물결과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청계천+책+음악의 조합이라니!


마침 더웠던 터라 청계천에 발을 담그고서 ‘겨울을 지나가다’라는 책을 읽었다.


중간에는 뉴욕 여행 중에 버스킹으로 듣고 내 최애 중 하나가 된 ‘If I ain’t got you’가 흘러나와서 정말 신났다. 그 순간을 마음껏 누렸다.







맛있는 식당, 비싼 공간도 좋지만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연, 정성이 더 귀하고 소중하다. 각자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가는 멋진 언니들과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름다운 한강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미슐랭 음식이 아니어도 한강라면과 언니들이 마음 써 준비해 준 자그마한 케이크가 내게는 더 감동이었고 즐거웠다. 곳곳에 소나기를 쏟아내는 먹구름이 우리를 비껴가는 행운까지 있었다.







세 번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응원하기


내가 배운 코칭이라는 철학과 스킬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쓰기로 다짐했다. 의사가 본인 가족 수술을 안 하고, 심리 상담사가 본인 가족을 상담하지 않는 것처럼 사실 코칭도 가까운 사람에게 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뭣이 중헌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꿈을 향해 좀 더 다가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뭐든 못할 것도 없으리라.



진로와 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맛있는 칵테일 한잔, 커피 한잔 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평가도 판단도 하지 않았다. 그저 듣고 원하면 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동생에게는 아는 지인을 연결해 줬고, 한 동생에게는 스무 살에 샀지만 집 한구석에 처박아뒀던 기타를 건네줬다. 충분히 고민하되 열심히 하라는 격려와 함께.



인스타그램에서 이상한 생일맞이 이벤트를 했다. 7월 한 달간 신청한 친구들에게 무료로 코칭을 해주겠다고. 조건은 나와 실제로 얼굴 보고 대화를 했던 사람.


5년 넘게 알고 지냈는데 처음 알게 된 그 사람만의 꿈, 어려움, 속사정을 들으며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오랜만에 대화해서 반갑다는,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으며 참 기쁜 요즘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풍족하게 내어줄 수 있는 돈과 시간을 위해 나는 더 잘 벌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싶다.





네 번째, 사랑과 감사를 전하기


사랑과 감사 표현을 더 적극적으로 하기로 다짐했다. 더 이상 주저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다.


엄마가 직접 키우고, 말리고 덖어준 차를 포장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했다. 조그마한 손 편지를 써서 주변의 팀원들에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했다. 다들 오늘 하루 조금 더 행복하고 힘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내 리마인더 앱에는 ‘OO에게 감사 표현하기’가 자주 적혀있다. 한 동료가 ‘지유님은 참 감사표현을 잘하는 것 같아요. 일부러 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대답은 아니라고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맞는 것 같다.


감사를 전한 사람 중에 나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은 아파트 관리소장님이다. 정말 아파트 주민들이 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귀찮을 법도 한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을 솔선수범 행하는 모습이 참 감사하고 존경스러웠던 터였다. 그런 감사함을 담아 작은 쪽지와 차를 담아 관리사무소에 가서 전했다.


앞으로 주변에 더 많이 감사하고 표현하고 싶다.








매일매일을 이렇게 산다면, 그런 하루가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내 숨이 붙어 있는 한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닐까?


독자에게 던지는 성찰 질문과 함께 글을 마친다.

당신이 미뤄도 되는 것과 미뤄선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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