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이상한게 아니었다.

이야기의 시작, 프롤로그

by 김지윤

어느 봄날 오후, 저는 카페 창가에 앉아 오랜 친구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항상 과민반응이야. 그런 일 없었어.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야." 제 감정이 틀렸다는 것일까요? 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제가 정말로 이상한 사람인 걸까요?


그날 이후로 몇 달간, 저는 제 자신을 의심했습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내가 문제인가?"라고 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제 말이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제 반응이 지나친 건 아닌지 끊임없이 검열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제 목소리는 작아졌고, 제 감각은 무뎌졌으며, 제 경계는 흐려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현실 인식을 왜곡시켜, 그 사람이 자신의 기억, 감각, 판단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 그 정의를 읽는 순간, 마치 안개가 걷히듯 모든 것이 명확해졌습니다. 문제는 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제 감각은 정확했고, 제 기억은 유효했으며, 제 감정은 타당했습니다.


이 깨달음은 제게 엄청난 안도감을 주었지만, 동시에 깊은 슬픔도 가져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많은 순간을 제 자신을 의심하며 보냈는지, 얼마나 많은 관계에서 저를 지우며 살아왔는지 비로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에게서, 직장 동료에게서, 때로는 오랜 지인에게서 겪는 미묘하지만 강력한 심리적 조작들.


가스라이팅은 흔히 연인 관계나 가족 관계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친구 지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가스라이팅은 더욱 교묘하고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걱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솔직함'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우리 사이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이런 말들 뒤에 숨은 진짜 의도를 알아채기란 쉽지 않습니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이 항상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 역시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 통제 욕구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의도가 없다고 해서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악의가 없다고 해서 피해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브런치북 연재를 기획하면서 이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제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극도의 고립감을 느낍니다. 자신만 이상한 것 같고, 자긴만 유난히 예민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당신의 경험은 유효하고, 당신의 감정은 타당하며,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둘째,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가스라이팅에 대한 정보는 많지만, 실제로 그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자료는 부족하다 생각했습니다. 이 브런치북에서는 제가 경험하고 정리해 본 모든 내용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제가 회복 과정에서 사용했던 방법들이며, 많은 시행착오 끝에 정제된 것들입니다.


셋째, 회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의 상처는 깊고 오래갑니다. 때로는 관계가 끝난 후에도 그 영향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회복은 가능합니다. 느리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분명히 가능합니다. 저 역시 그 여정을 걸었으며,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브런치 북은 에필로그, 프롤로그 포함해서 총 12개의 장으로 구서 되어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의 발견부터 인식, 대응, 손절, 그리고 회복에 이르는 전체 역정을 다룹니다. 처음 시작에는 가스라이팅을 처음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을 살펴봅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 마음속 불편함, 그리고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 이런 초기 신호들을 알아채고 신뢰하는 것이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이후에는 가스라이팅의 다양한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예정입니다. 기억 조갈, 감정 부정, 현실 왜곡, 고립 전략, 책임 전가 등. 각각의 패턴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데 필수적입니다. 또한 새로운 관계에서 건강한 경계를 세우는 방법, 불편한 대화를 나누는 기술, 자기 확신을 회복하는 과정도 다룹니다.


특히나 중요하게 다룬 부분은 '손절'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손절이 때로는 필요하고 정당하며, 그것을 선택한 당신은 냉정한 사람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이 책에서는 손절의 타이밍을 판단하는 기준, 손절 후의 감정 정리, 그리고 건강한 거리 두기의 기술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저는 이 브런치북을 쓰면서 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담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얼마나 오랫동안 제 자신을 의심했는지. 또한 어떻게 조금씩 회복해 갔는지, 어떤 순간에 힘을 얻었는지,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도 솔직하게 나눕니다. 완벽하게 치유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여전히 여정 중인 동행자로서 썼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당신의 감각을 믿으세요. 만약 무언가가 불편하다면, 그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말이 당신을 작게 만든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어떤 관계에서 계속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면, 그 관계를 다시 살펴볼 때입니다. 당신의 불편함은 과민반응이 아니라 중요한 신호입니다.


이 브런치 북을 읽는 모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기억은 유효합니다. 당신의 감정은 타당합니다. 당신의 경계는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회복할 수 있습니다. 회복은 직선으로 가지 않습니다. 때로는 앞으로 나아가다가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때로는 한참을 제자리에 머물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강하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모든 것이 다시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정상입니다. 회복은 완벽한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의 여정입니다. 같은 지점을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당신은 이전과는 다른 높이에 있을 겁니다.


저는 이 브런치 북이 누군가의 여정에서 나침반이 되기를 바랍니다. 완벽한 지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방향을 가리키는 도구가 되기를.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여정을 시작할 준비가 되셨나요? 천천히, 당신의 속도로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이미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밖의 햇살이 따뜻한 계절입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제 자신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회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말을 당신에게도 전해드리겠습니다.


당신의 여정에 평화와 용기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

이 연재는 목, 일 연재될 예정입니다.

다음화는 작은 균열로 시작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