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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Jun 28. 2022

우중충한 하늘은 때론 신비함을 머금는다.

비운의 여주인공을 더 그럴듯하게 포장해주거든.

 장마가 일찍이도 찾아왔다. 이제는 8월을 한여름이라고 부를게 아니라, 6월을 한여름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것 같다. 거기다가 장마라니. 습하고 더운 이 무더위를 어떡하면 좋을지. 에어컨을 이렇게 일찍부터 틀거라고도 생각 못했다. 이 찝찝함은 동남아보다 더하다고 확신한다. 차라리 동남아에 가면 여행이라도 하지,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에 이런 찝찝함이라니. 도저히 일할 기운이 나지 않는다(라며 날씨 핑계를 댄다). 


 하지만 또 알쏭달쏭한 것은 내가 이런 우중충함을 즐긴다는거다. 기왕이면 쉬는날 날이 좋은 것 보다는 우중충한게 더 좋다. 왜냐하면 집에서 쉴 합당한 이유가 생기거든. 맑은 하늘을 보며 나가야되는데라며 강박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나가서 뭐라도 해야하는데,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나가서 걷던가, 따릉이라도 타. 라는 마음 속 말에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비가 오면 날이 안좋으니 집에 있어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날이 좋지 않아서 나가지 않는거야 라며 합리화한다. 


 집순이가 되고부터는, 아니 어쩌면 태생이 집순이였지만 밖순이 코스프레를 해온 나는, 집에 있는게 참 좋다. 비가 토독토독 떨어지는 소리도 참 좋다.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건 내 우울함과도 관련이 있다. 우울하다고, 우울하다고, 울듯이 신세한탄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우울을 즐기는게 분명하다. 최근에 어느 정신과 의사가 하는 유튜브에서 이 말을 듣고 머리를 탕 맞은 느낌이더라. 동굴에 자주 들어가는 사람은 비운의 여주인공이 된 것 처럼 우쭐하기도 한다고. 비운의 여주인공이라... 그렇다. 나는 우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게 아니라, 우울에 잠겨있는 나를 즐겼다.


 그래서 비오는 날이 꽤나 좋았나보다. 비가 오면 우울한 나의 모습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니깐. 그래서 우중충한 하늘은 신비롭나보다. 마음껏 주인공 역할을 맡을 수 있어서. 좀 오글거리기는 해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야 이런 재미난 글도 맘껏 쓸 수 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도 얻을 수 있고, 나름 재밌기도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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