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함이 주는 힘

by 오지

시간은 남아 도는데 막상 무엇을 하려고 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럴때는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기는 하지만, 딱히 재밌지도 않아서 멍한 눈으로 그저 인스타그램 피드나 훑을 뿐이다. 이 기분은 뭘까, 이것도 저것도 다 시시하고 허무하다. 그러다가 현타에 빠진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굳이 보고 싶은 것도 없는데 계속 유튜브는 왜 들어가는건지, 딱히 누가 궁금하지 않은데 인스타그램은 왜 자꾸 들어가는건지.

이럴때는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길을 잃어서 어딘가로 가기는 가는데, 이게 맞는 길인지 확신조차 들지 않고, 그저 여기를 탈출해야 하니깐 어떻게든 움직이는 느낌이다. 즉, 공허하니깐 무엇이라도 해서 이 기분에서 탈출하고 싶은데, 딱히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 막막한 느낌이다. 탈진한 듯 누워서 허공을 바라보는 개마냥 소파에 풀썩 주저앉아 있었다. 그게 나에게 답을 가져다 주리라곤 생각치 못했지만.


그때는 2020년 호주 브리즈번이었다. 돈도 많이 벌고, 원어민들과 영어로 솰라솰라 말하고,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여행도 많이 다니는, 소위 모든 워홀러들이 꿈꾸는 기대를 안고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호주에 갔었다. 사실 호주로 간 것 또한 세계일주를 마치고 밀려오는 불안감과 공허함에 뭐라도 해야겠다고 내린 선택이었다. 혹은 나는 이 규칙적이고 보수적인 한국 생활에 맞지 않으며, 역마살이 낀 삶에 맞게 살아야 한다며, 화려하고 특이한 인생이 나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떠난 일이였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사는 월급쟁이들과는 다른 수준의 용감한 도로시같은 존재이고 싶었다. 한국에서 보낸 우울한 생활이 다른 나라에 가면 사라질 줄 알았다. 다시 의욕을 찾고 활기찬 나로 돌아갈 것을 기대하며 그렇게 호주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이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 있다. 선택할 때 조심할 점은 선택을 하는 당시, 내 마음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귀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에 빠진 상황에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호주에 가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고, 외국인들 사이에서 일을 하고, 유튜브를 찍고, 유명해지고, 그런 열정도 분명 있었지만, 그보다는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온 우울한 나의 모습이 너무나도 싫어서 도피로 선택한 결과였다. 불안함의 원인을 잘 못 짚은 것이다. 단지 여행을 못하고 있다거나 한국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둥의 이유는 그저 허물 뿐인 이유였다.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 자신이 그저 불안했다. 불안한 상태에서 나온 결정은 다시 불안을 야기한다. 그리고 도망가면 도망갈수록 그 문제는 다시 나를 찾아온다. 나는 무엇이 그렇게 불안했을까.


호주에는 12월에 입국했다. 어쩌면 버킷리스트를 이룬 셈이기도 했다.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겪어보고 싶었거든. 하지만 화려했던 버킷리스트를 댓가로, 나에게 돌아온건 암울한 상황이였다. 어쩌면 누군가가 나와 딜을 했다고 착각이 될 정도로.


“너에게 버킷리스트를 이룰 기회를 줄게. 대신 그 댓가는 분명해. 나와 딜을 하겠어?”


입국해서 바로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잡(JOB)은 이력서 20개를 발로 뛰며 돌리고, 이메일을 넣어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잡은 한인 스시집에서는 총체적 난국이였다. 처음에는 요리로 지원했지만, 일본어가 조금 된다고 하니, 일본인들로 이루어진 홀서빙파트로 권유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운이 좋았다. 하지만 홀서빙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파트다. 가뜩이나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 호주 악센트가 너무 어려워서 질문을 받으면 멘붕에 빠지고, 일도 허둥지둥, 전화도 허둥지둥 받는 답답한 스탭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도 일이 익숙해질 때쯤 코로나로 인해 호주 식당가가 마비되고, 매출이 줄어들고 배달서비스만 하게 된 스시가게에 홀서빙 스탭은 쓸모없는 인력이나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아예 나가지 않다가, 배달서비스가 잘 되면서 2주에 한번은 나가서 포장을 도와주는 일을 했다. 다행히도 그 돈으로 월세만큼은 감당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조용해진 작은 도시에서는 할 것도 없고, 돈도 없었기에 주로 집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해봤자 집 앞 공원을 돌거나, 밤에 조깅하는 정도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뭐 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루가 참 의미 없게 돌아갔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달리기도 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잘못된 자세의 운동은 안하느니만 못한걸 그때 제대로 알았다. 유튜브로 어림잡아 배운 홈트레이닝은 하다보니 허리가 아팠고, 무작정 기록에만 연연한 달리기는 무릎통증을 야기시켰다. 결국 다시 꼼짝없이 침대에서 누워만 있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더 아무것도 못하게 된 만신창이가 된 나는, 집에서 대부분 의미없는 것들로 시간을 버텼다. 답답했다. 계속 움직이고 성장을 위해 달려야 한다는 강박증이 깃든 나에게는 의미없는 시간은 마치 챗바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자에 갇힌 햄스터 같았다. 일하러 호주에 왔는데 당장 일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고 있다니. 시간은 버티면 버틸수록 나를 더 답답하게 했다. 마음의 강박은 다른 증상으로 나타났다. 할 거 없이 빈둥거리게 되는 상황이 더 깊은 무기력과 슬픔으로 내몰았다.

아는 사람도 몇 없으니 만나는 사람도 없고,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에 나는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억지로 나가본 사교모임은 스트레스만 쌓였다. 거기에다가 같이 한 집에 살던 룸메들과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한국으로 떠났고, 집도 계약 만료로 모두가 흩어져 버렸다.


낯선 타지에는 많이 가봤지만, 여행과 사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내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나는 뭐라도 해야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일상을 잃고, 하는 것도 없다보니 점점 더 미칠 노릇이었다.

우리 집은 호주 브리즈번의 로마파크가 바로 보이는 2층집이였다. 브리즈번의 공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원과는 사뭇 다르다. 박쥐가 나타나기도 하고, 페리칸 같은 새가 비둘기처럼 도시를 날아다니고, 도마뱀이 길을 장악한다(바퀴벌레까지 많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박쥐가 코로나를 옮긴다는 말이 많아 공원에는 한동안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기도 했다.

나는 로마파크를 보며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그 위로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노라면,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났다. 그때 알았다. 머릿속에서 이거해야돼, 저거해야돼, 정신없이 왔다갔다할 때, 머리가 하는걸 따라가다가는 혼돈의 카오스로 들어가는 꼴이다. 오히려 그럴때는 잠깐 멈추고 가만히 기다린다. 가만히 아무 생각하지말고, 멍을 때리던가, 주변에 있는 사물들을 관찰하다보면 내가 정확히 해야 할 일,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그게 글쓰기가 되든, 산책을 나가든, 요리를 하든. 어쨌든 먼저 나오는 답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자동 실행된다.

기억하자. 머리가 복잡하고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아 어쩔 줄 모르겠을 때, 오히려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보면 최선의 답이 따라올 것이다. 그 답이 ‘아무것도 안하기’라도.


나는 정말 가만히 있는 것 자체를 ‘혐오’했다. 가만히 있는 것은 사치이며, 인간으로 태어나서 할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인간은 항상 움직이고 생각해야 하는 동물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으니 반대로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한심해 보였다. 그랬던 내가 아무 생각없이 누워있는걸 즐길 수 있게 바뀌었다는 건 참 큰 변화다. 사람만나러 방방곳곳에 다니며, 어떻게든 교류하고 싶어 안달난 나였는데, 지금은 혼자있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 혼자서 생각에 잠기고, 사색하는 건 마약에 가깝다. 혼자만의 몰입에 취해본 뒤부터는, 어떻게든 그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이 없으면 나는 피폐해져 사람 형태를 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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