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5월 어느 집 옥상에서 새끼 고양이 제니와 루비가 태어났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귀여워서 쳐다보기만 하다, 어미가 이소를 위해 주차장 구석진 곳에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내려온 이후로 인연이 시작되었다. 어느샌가 어미는 떠나고 이 아이들을 돌보는 캣맘이 되어 있었다.
우리 동네는 시장통인 터라, 냄새도 날뿐더러 골목 위생이 좋지 않다. 이 길바닥 위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나포함 여럿 있다. 얼굴을 대면한 사람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챙겨주는 사람들이 여럿인걸 아는 이유는, 계속 놓여지는 사료통과 츄르 흔적, 그리고 길고양이 중성수술 사업인 tnr 포획틀을 봤을 때다. 이 정도면 얼굴도 모른 채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약도 챙겨주고, 좋은 사료도 챙겨주고, 간식도 매번 바꿔가며 새로운 도파민을 선사해주고 있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총과 잔소리를 몇 번 받다 보니, 눈치를 보며 다니고, 소리가 나면 괜히 얼음이 된다. 마치 루비와 제니처럼. 매일 똑같은 회색 롱패딩을 입고 다니니 이 골목 알사람들은 다 알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모성애가 꿈틀거려서일까, 걱정되고 궁금하다.
나와 이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제니와 루비는 퇴근시간이 되면 우리 집 골목, 차 밑에서 나를 기다린다. 밤이라 잘 보이진 않지만 하얀 두 덩이가 겨울 추위로 부풀어진 털뭉텅이를 들고 동그랗게 앉아 나와 마주친다. 그 두 마리가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그 아이들의 세상이 된다.
그냥 어느 옥상에서 태어났을 뿐인데 어느 한 인간이 찾아와 계속 맛있는 걸 갖다주고, 희한한 낚싯대를 들고 와서 자기 앞에서 흔들어대니 도파민까지 충족된다. 추울 때 핫팩을 깔아주고, 입이 심심하면 츄르를 들이밀고, 심심하면 사냥본능까지 키워준다. 거기다가 중성화까지 시켜줘서 아파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고, 필요한지 몰랐지만 이끌어줬다.
아이들이 나라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만난 것처럼, 나 또한 세상이 있지 않을까. 길이 안 보이면 자연스럽게 길이 나타나고, 골몰하고 있으면 해결책이 나타났다. 아파하던 날들에도 도움이 나타났고, 고립되어 있으면 동사무소에서 편지 한 통이 낳아왔다. 혼자인 줄 알았고, 혼자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날 찾아주었고, 누군가는 날 지켜보고 있었다.
나에게도 조건 없는 사랑으로 항상 보살펴주고 있는 세상이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그렇게 하니, 그것이 느껴졌다. 포획틀에 잡혀가서 죽는 줄 알았지만 도움의 손길인 것처럼, 단순히 지금은 괴롭지만 지나 보니 해결책이던 순간도 있었다. 보고 있을 때나 보지 않고 있을 때나 어디에나 함께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며, 나를 관심 있게 쳐다봐주는 세상이 분명히 있다는 느낌. 그 따뜻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루비와 제니는 날 움직이는 먹이통쯤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싶지만은 그래도 보면 쪼르르 달려오고, 최근엔 눈키스까지 받으니 날 인간으로 인정해 준 것 같아서 기쁘다. 천하의 오지윤이 감히 동물 따위에 인정받았다고 기뻐할 일인가 싶지만 너무너무 기쁘다. 먹이통이든 낚싯줄이든 방실방실 웃는 이상한 닝겐이든, 그들에게 하나의 세상이 되었음을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