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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Jan 19. 2020

역마살이 낀 나에게

몸은 미친듯이 근질거리는데, 이제는 기대도 설렘도 느끼지 않는 나에게

 역마살이 끼기 시작한 적은 역마살이라는 단어도 모를때로 거슬러 간다. 스무살이 되고, 내 몸은 한시도 집에 붙어있지 않았다. 새로 맛보는 세상. 좁은 서울이지만 구석구석 어디든 다 가보겠다는 호기심과 몸의 근질거림.

 수능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고 모은 돈은 대부분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데 맘껏 썼다. 부유한 집에서 자란게 아니라 처음 갖는 돈으로 FLEX하는 인생은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다. 친구들이랑 술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혼자서 서울에 깔린 전시회, 박물관, 궁, 힙합 공연, 페스티벌, 내일로 어디든 다녔다. 그 중 제일 많이 가던 곳은 광화문 일대였다. 서울의 중심, 많은 역사가 시작되고, 과거 많은 사람들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그 공간이 참 좋았다.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데려다 주는 지하철과 버스를 탈 수 있는 특권은 언제나 감사했다.


 같이 성인이 된 친구들 중에는 이런 친구들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다닐때는 하라는대로 해서 좋았는데, 지금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더 힘든거 같아."

 난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일말의 불안함도 없었다. 오히려 더 자유롭기에 더 행복했기 때문이다. 누가 뭐 해라 하는 거 없이, 애초에 내 인생은 나 혼자 잘 살텐데 굳이 규율이라는 명목하에 날 가둬놨던 시간 자체가 더 싫증났다.

 엄마는 집에 붙어있지 않는 날 너무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께, 맞지도 않는 옷에 날 껴놨으니 몸은 경직되고 자연스레 생각도 경직됐을터. 중고등학생 때의 나는 매우 우울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방에서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의 스무살은 희망과 밝음으로 가득찼던 아주 찬란한 시기였다. 미래에 대한 꿈과 현재를 충실한 날들이였다. 대학교에 입학했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고,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 언제나 새로워서 참 좋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익숙해진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조금씩 그 생기를 잃어갔다. 대학은 더이상 새로운 곳이 아니라, 억지로 내 몸을 꾸겨 넣는 공간이 됐고, 알바는 그저 돈을 버는 용도로만 생각되니 재미가 없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점점 줄어갔다.


 취업을 하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인 모임에 나가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진이라는 새로운 취미에 발을 디뎠다. 사진은 힘든 직장생활에 유일한 출구였다. 익숙했던 주변의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도구였으므로.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이리저리 익숙했던 서울을 돌아다녔다. 오래되서 흐려진 그림에 다시 수채화 물감을 덧입히듯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리고 2년 후, 세계일주를 떠났다. 새로운걸 보고 경험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일찍히 간파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였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게 사실은 꽤나 귀찮고, 힘든 일이라는걸 안건 1주일도 안됐을 때였던거 같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맞닥트렸을 때,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면, 난 대체 어디서 안도를 느껴야 하고, 어디서 안식을 취해야 할지 불안해진다.


 1년간 무던히도 새로운 생활을 했다. 계속 도시를 이동하고, 나라를 이동하고, 대륙, 익숙했던 사람들을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고난을 겪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을 만나는 경험들을 했다. 여기서 너무 웃긴게 뭔지 아나? 그렇게 경험하고 나니 점점 새로움에 무뎌졌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문화, 새로운 환경에 무더졌다는게 아니라, '새로움''처음' 자체에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험해보지 않은거에 대한 갈망과 자극을 필요로 하던 나였는데, 기대가 줄어들고, 모든거에 익숙하다. 이제는 낯섬이 그립다. 낯섬에 따라오는 불안함도 그리울 지경이다. 이제 머무를 때도 됐다 싶은데, 이미 역마살이 껴버렸기 때문에, 몸은 근질거리지만, 딱히 어딜가도 처음만큼의 두근거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행 후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호주에 와있는 지금도, 모든게 익숙하다. 분명 처음 밟아보는 땅인데, 참 익숙하다. 평생을 살았던 서울처럼. 여행을 만난 오빠와 같은 날짜에 맞춰서 호주로 들어왔는데, 그 오빠는 이런 말을 했다. 여행했던 기억을 모두 리셋하고 싶다고.


 새로운 곳에 왔음에도 다시 무뎌진 감정에 실망한다. 그렇게 설렘을 찾던 나는 설레는 감정을 너무 많이 봤나보다.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가도 어차피 똑같을거라는 생각이 기대를 가려버린다.

좋아하던 거에 시들해져버린 감정.
난 대체 어디서 설렘을 느낄 수 있을까.
더이상 새로움에 설레지 않는다면 난 계속 행복하지 않을까?
내 행복은 꼭 새로움에서만 나오는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행복은 정말 나와 멀어져있는 것 같아 우울해졌다.

 이런 고민에, 무기력함에 계속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있을때, 다른 자아는 반문했다.


꼭 설렘이 좋은걸까?

꼭 설레야만 행복한걸까?

내가 너무 설렘에 집착하고 있는게 아닐까?


 사람의 감정은 반작용과 함께 나타난다. 어딘가에 집착을 만들어내면, 반드시 반대되는 감정도 따라오게 되고, 바로 현실로 창조된다.


만약 새로운게 정말 새로운게 아니라면?
익숙했던게 익숙한게 아니라면?


 역마살이 낀 나는 아직도 미친듯이 새로움에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새롭게 깨달아 가고 있는건 다음과 같다.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계속 자극해왔다면, 올라간 역치에서 행복을 찾는게 어쩌면 내게 주어진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을 좋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
 어떤 편견도,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 고요함을 유지하는게 내가 앞으로 깨우쳐야할 새로움일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새로운 것에 설레지 않는 이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설렘을 느껴야 하는게, 지금 내가 서있는 계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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