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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Dec 29. 2021

내가 살아온 글쓰기 연대기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사춘기 무렵부터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엄마에게 상처를 받고, 싸우고, 내 감정이 주체가 안돼서 매일 밤 눈물을 흘리던 시기가 있었다.

일기장이라기보다는 엄마 욕하는 노트를 만들었더랬다.

신기하게 엄마랑 다투고만 나면 공책을 가로로 반 잘라서 놔둔 조그마한 노트와 연필을 꺼내들게 됐다.

처음 글은 어떻게 쓰게 됐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습관처럼 찾아 썼던 거 같다.

아마도 쓰면서 위로받는 느낌, 쓰고나서 편해진 느낌이 중독 같아서 계속 찾지 않았을까 싶다.


화가 나서 씩씩 거리며 쓰기도 했고,

울면서 쓰기도 했고,

죄책감에 쓰기도 했고,

우울한 마음으로 쓰기도 했다.


 그 공책을 엄마에게 들키는 바람에 나는 못된 아이라면서, 이딴 짓을 왜 했을까, 나쁜 공책이라며 공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려 아쉽게도 이제는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

 그때는 내 마음을 부정했지만, 지금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내 마음이 그런데 무슨 상관이냐며 오히려 공책을 변호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 이후로 연필이라면 공부할 때만 잡았다. 중고등학생 시절 동안 일기장, 감정노트를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도 싶다.

 대학생이 돼서 공부에 맛이 들려져 버렸다. 전공이 내 분야와 맞기도 했고, 외우고 이해하는 과정들이 참 재밌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를 의자에서 엉덩이를 계속 붙이게 만든 건 '글쓰기'였다. 공부하다가 집중이 잘 안 될 때면 옆 책장에서 노트를 꺼내 들어, 무엇인가를 끄적였다. 그때부터 살짝 에세이스트의 기질이 있지 않았나 싶다. 주로 썼던 글은 '인생은 책과 같다. 한장한장 넘기다 보면 책이 끝나고, 공부가 끝나듯이,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인생도 완성된다. 그저 오늘을 잘 살아보자.' 같은 류의 나만의 인생철학이 담긴 글들이었다.

 그렇게 머리에 생각들을 펜으로 휘갈기다 보면 정신이 맑아져서 공부가 잘 됐다.


 대학생활 이후 회사생활로 들어서는, 인스타에 올릴 감성글을 쓰느라 바빴다. 한창 인스타에 빠져서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올리기에 바빴다. 그치만 아무래도 남에게 보여지는 글이다보니 솔직하지 못했고, 글을 꾸며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그래서 감정일기... 날 위한 글이기보다는 보여지는 글을 많이 썼다.


 그리고 다시 일기장을 들게 된 건 여행을 시작하고 부터다. 여행에서 느끼는 것들이 너무 소중했고,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비행기 안에서, 버스 안에서, 기차 안에서, 시간이 남을 때면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인터넷이 빠르지 않은 곳도 많고, 데이터나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없이, 그저 정말. 오프라인.으로 다녔던 적이 많기 때문에, 나와의 소통이 가장 많이 이루어졌다.


 또 힘든 시간들이 찾아올 때면, 자석이라도 붙여놓은 것 마냥 펜과 공책을 든다. 수두룩히 쌓여진 일기장을 다시 들쳐보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기록들이, 또 감정들이 그곳에 적혀질때마다 그것으로 편해진다.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에게 정신과 의사들이 권유하는 방법으로 감정일기를 꼽을 때가 많다. 신기하게도 나는 어떤 방법을 듣지는 않았어도 힘들 때면 일기를 썼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라고 한다. 여정이 즐거워야 결과도 좋을뿐더러, 행복도가 올라간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어쩌다보니 글쓰기가 나에게 그런 행위가 돼버렸다.

 분명 누군가가 즐겁게 읽어서 피드백을 주면 좋지만, 그냥 쓰는 것만으로 편안해지고 보이지도 않는 도파민이 뿜뿜해지는 그런 기분. 그게 나에게 글쓰기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나는 평생 글을 쓸 것 같다. 어쩌면 이게 나의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 연필을 잡고 감정을 공유해준 나, 가끔은 일기장을 내 친구라고 이름도 붙여주던 그때. 


이렇게 좋은 습관을 만들어준 과거의 지윤이들에게,
외로운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 일기장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지금 나와 함께하는 일기장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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