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마음이 하는 일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by Carpe diem

문득 / 김지영

겨울이라
무릎 위 습관처럼 얹어둔 담요
무심코 바라보다
불현듯 떠오른 네가 생각나
서글픔이 툭
담요 위로 떨어져
코끝이 시큰거렸다

뒤축이 다 닳은 구두 한 켤레
버릴 때가 되었구나 반가운 마음에
미련이 버거워 함께 내다 버리려다
두 발을 쑤욱 밀어 넣어 보았다
여전히 잘 맞아 편안한 두 발
불편한 마음만 덩그러니 가여워
둥글게 웅크려 바라보았다

서른둘 운전대를 처음 잡던 어느 날
서른이 되도록 방치한 너의 과잉보호가
그립고 미안해 나직이 읊조렸다
늦은 저녁 마중 온 너에게
하찮은 일로 소리친 나의 철없음을
아주 가끔 너를 소환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나의 이기심을
이해해주길


둥글던 마음을 조각내고 어루만져 깎아내는 게 사랑이 아닐까


내 사람이라 믿었던 누군가가 일순간에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는 건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사랑으로 가득 채운 마음은 이방인이 되어 떠나 버린 이의 빈자리로 공허함만 가득하다 함께 하던 사랑은 방향을 잃고 헤매기 마련이다. 그러다 미련과 집착이 그 공간을 채우게 되고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좋았던 기억들은 수없이 각인하고 아픈 시간들은 조용히 침잠하거나 그마저도 미화하어 추억이라는 명목으로 굳게 자리매김하며 빈틈을 조심스레 메꿔나간다.

시간이라는 묘약이 투여되고, 난 자리의 헛헛함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작아지고 나면 또 다른 누군가를 그 자리에 초대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초대장은 언제든 입장 가능한 입주권이 되어 새롭게 마음을 헤집고 돌아다닌다.



사람은 망각과 착각, 자기 합리화에 능하기 때문에 곧잘 사랑과 이별을 반복한다. 그러나,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간혹 지난 사랑이 떠오르는 날이 있었다. 힘들게 정리해 깊숙이 처박아 둔 추억이 불쑥 마음을 건드리는 날이나 갑자기 뒤숭숭한 꿈자리에 불청객처럼 등장하는 날이 그렇다.


처음엔 막연히 서럽고 그리워하는 내가 한심했다.

그런데 지나간 추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 그 어느 날, 그리움의 대상은 그 사람 자체가 아닌 그 시절 내 모습과 감정이라는 걸 명확히 알게 되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일이며 내 감정을 애무하는 것이 그리움이니 청승맞을 것도 서러울 것도 없다.

어쩌면 실체는 중요한 게 아닌지도 모른다.


영화 ‘클로저’의 한 장면


사랑? 그게 뭔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것 때문에 내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게 말이나 돼?


어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포효하듯 외치는 장면을 보고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말이 된다. 희한하게도 말이 되더라.
말이 되던 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되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되는 것처럼 둔갑하는 게 삶이더라. 하물며 본능과도 같은 사랑을 가지고 말이 되니 안 되니 논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말로 되는 건 머리로 하는 일들을 논하는 것 아닌가?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