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조회수가 4000을 돌파했습니다.

대체 글쓰기가 뭐라고

by Carpe diem

엄마와 가까이 살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문턱이 닳도록 엄마 집에 드나들었다. 무려 30km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온 지 보름째, 필라테스 이용권이 남아 퇴근 후 예전 동네에 들러 운동만 하고 집으로 돌아오길 반복하는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어차피 운동 갈 거면, 저녁 한 끼 먹으러 와. 밥 해준대도 통사정을 해야 온다니 넌.”


나이 마흔에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늘상 고프지만, 어쩐지 쑥스럽고 미안해져 자꾸만 피하게 된다. 잠깐이지만 한두 번 피하고 나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인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는 걸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는 엄마와의 전화 한 통으로 실감한다.


그렇게 엄마 집으로 가기로 한 날, 때마침 엄마에게 헌정하기 위해 썼던 시 한 편이 떠올라 브런치에 게재한 후 남은 업무를 처리했다. 그렇게 20분 정도 지났나 브런치 알림이 울렸다.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


갑자기 조회수가 1000을 돌파하다니. 결국,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 내게도 도래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글쓰기는 유년의 일기쓰기에서 끝났다(매거진 ‘삶을 논하다’ 중 ‘EP1. 일기에 대한 고찰’ 참고) 생각했는데 난 끊임없이 인정을 갈망하고 있었나 보다. 역시 본능과 욕망 앞에 애써 다져둔 내 다짐과 이성은 보기 좋게 패배했다.

원래 내 꿈은 ‘방송작가’였다.

방송작가가 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해 시작한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로 내 진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난 원래 글을 쓰면서 살고 싶었다. 자기 합리화에 능한 내 특기를 십분 발휘해 ‘밥벌이를 위한 글’이 얼마나 고된지 아느냐 스스로 세뇌하며 ‘글쓰기’는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나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글쓰기만큼이나 설레는 일이라 단순 생업이었다 말할 수 없으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글쓰기에 대한 책임감이 묵직하게 남아 가끔 SNS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으로 조금씩 부채의식을 덜어내곤 했다.

그러다, 내 서른아홉 인생 최대의 위기와 터닝포인트를 앞에 두고, 망가진 심신을 회복해야만 했다. 갑자기 불어버린 몸은 혹사시키면 그만이고,


떨어진 자존감은 어떻게 회복할까
고심하던 차에 떠오른 건
다름 아닌 ‘글’이었다.


“머리도 복잡하고 마음도 시끄러운데 글을 쓴다고?”
“일단 떠오른 게 글이니 시작은 해봐야지.”


이해할 수 없다는 친구에게 준 대답은 단순 명료했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미뤄뒀던 글쓰기를 시작해야만 했다. 글에 강제성을 두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고, 그렇게 글쓰기 소모임 ‘사각사각’에 가입하게 되었다.

모임의 진행자가 그 날의 주제를 공지하고 글을 쓴 후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글쓰기 모임에 처음 참석하는 날의 주제는 ‘인물’이었다. 광범위한 주제로 글쓰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을 오래도록 바라보다 ‘화제의 인물’이 떠올랐고, 내 지난 시간 속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옛 연인을 허구적 인물로 설정한 소설 쓰기를 시작했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라는 제목의 짤막한 소설에 대해 인물의 내면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한 글이 인상적이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특별할 거 없는 잔재주지만 역시 애착과 진심은 사람의 마음을 관통하는 힘이 있음을 확신하고 꾸준한 글쓰기를 이어갔다. 매주 글쓰기 주제를 기다리며 설레고 어떤 글을 쓸까 고심하며 보내는 순간들에 몰입하면서 나의 자존감은 평정심을 되찾았다.

“언니는 글 쓰는 게 그렇게 좋아?”

소모임 사람들 이야기와 글에 대한 이야기와 브런치 작가가 된 것에 대한 성취감에 쉼 없이 몰입하며 글쓰기를 지속하는 나에게 동생이 물었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 명예가 주어지는 것도 아닌 일에 애쓰는 나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으니 물을 법도 하다.


“응, 좋아. 행복해.”


내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으니 길게 말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역시 내 대답은 간결했다.


적절한 타이밍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나 타이밍을 잡을 줄 아는 생의 감각을 익히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어쩌면 그 ‘감각’이란 게 지극히 주관적이라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힘든 시기에 오래도록 던져뒀던 꿈이 떠올라 글을 썼고,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 한동안 마음 쓰지 못했던 엄마가 마음에 걸려 또 글을 썼다.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바로 지금’에 집중하고 글을 쓰는 나의 최종 꿈은 내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의미없이 치솟기만 한 숫자일지라도 내겐 의미있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글쓰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래서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에 선정된 어제의 나를 자축하며 쉼 없이 글쓰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대체 글쓰기가 뭐냐고?
그렇게 궁금하면 시작해 보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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