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총량의 법칙
괜찮아?
염려와 호기심을 동시에 담은 상대의 눈빛은 괜찮지 않은 당사자보다 더 불안해, 별스럽지 않았던 마음도 별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괜찮냐고 물어오는 순간은 늘 불편하다.
괜찮대도 괜찮을 리 없다는 확신으로 물어오는 경우는 더더욱. 꼭 괜찮지 않길 바라는 사람처럼 확신에 찬 얼굴로 묻는 이들이 무례하다는 걸 알면서도 온전히 감당할 수밖에 없다. 괜찮냐는 말은 최소한의 관심을 내포하기 때문에 그 관심에 화를 내는 건 옳지 않다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의 때문일 것이다. 예의 없이 상대의 마음에 견적을 내고 흥정하듯 물어오는 몹쓸 호기심 앞에 최소한의 배려와 예의를 갖추는 당사자는 이미 괜찮을 리 없다.
괜찮아.
괜찮다 대답하는 마음은 늘 수많은 갈림길 앞에 서 있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질 거야.’
‘괜찮을 리 없지만 괜찮다 말해야 괜찮아질 걸 아니까.’
‘괜찮아. 이제 정말 괜찮아.’
‘괜찮아지고 싶어.’
‘괜찮다’는 단어를 수없이 나열하고 나니 자음과 모음의 조합부터가 이미 복잡하고 익숙지 않다. 괜찮아지는 일은 글자의 모양처럼 단순하지 않아서, 수많은 번뇌와 다짐을 반복한 후에야 조금씩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괜찮다는 말에 스스로 괜찮아지길 바라며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내는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타인의 불행이 나에게 위안이 되듯, 나의 불행이 누군가의 위안이 되었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한 순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실소하고 만다. 어디서 ‘불행 경연대회’라도 열어 성토하고 나면 괜찮아지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불행의 총량은 일정해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니 유별날 것도 없다.
그래서 결국, 지금의 나는 정말 괜찮다.
늘 밝고 당찬 나에게 불행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진심으로 다가올 때, 나의 현재는 매우 괜찮은 상태임이 입증된 셈이다. 무언가에 부딪히거나 걸려 넘어지길 자주 하는 나에게, 속상한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어오는 연인을 제외하고 이제 나에게 괜찮냐고 묻는 이는 없다.
괜찮다(형용사)
1. 별로 나쁘지 않고 보통 이상이다.
2. 탈이나 문제, 걱정이 되거나 꺼릴 것이 없다.
나쁠 것 없고 별다른 결핍 없이 이 정도면 보통 이상의 삶이지 않을까 자신하는 내 삶에 문제나 걱정거리가 끼어들 겨를이 없다. 별 일없이 사는 게 ‘괜찮은 삶’이라면 내 삶은 충분히 괜찮다 호기롭게 말하고 싶다. ‘내 삶’을 재단하는 주체는 타인이 아닌 ‘나’니까. 그러니 관심과 적당한 염려만 담뿍 담아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 지금 괜찮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