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슬기로운 일상생활
나이 마흔의 혼자 사는 여자
물리적 나이와 현 상태를 기반으로 한 나의 타이틀이다. 부정할 수 없다. 내 나이 마흔이고, 나는 혼자 산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뒤 보통 이름 그리고 나이를 묻는다. 내 나이를 들으면 으레 결혼 여부는 묻지도 않는다. 난 당연히 기혼자에 아이도 한둘 있어야 한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기혼 여부는 가뿐히 패스하고 나의 거주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답하고 나면 그다음 질문은 뻔하다.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있지도 않은 남편의 직업을 묻는 질문 앞에 난색을 표하면 상대도 나도 무안해질 게 뻔하다. 그래서 아주 어색한 말투로 힘 있게 “아, 혼자 살아요.”라고 씩씩하게 답한다. 그렇게 결국, 민망함과 미안함은 상대의 몫이 되어 돌아온다. 미안하다는 상대 반응에 쿨하게, 괜찮다고 하하하 웃어버리면 상황은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좀 친해지고 나면 살며시 다가와 또 묻는다.
“식사는 어떻게 해요?”
“혼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혼자서 뭐하면서 지내요?”
“집에 돌아가서 혼자면 외롭지 않아요?”
식사는 혼자서도 잘 챙겨 먹고 되도록 배달음식이나 바깥 음식은 먹지 않으려 노력하고, 하루 종일 아이들을 상대하니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서 아무도 없는 내 집의 고요함이 반갑고, 밥을 챙겨 먹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집 주변을 만보 이상 걷거나 일주일에 서너 번 필라테스를 하러 다녀온 후 씻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면 후회 없이 알찬 하루를 보낸 셈이니 심심할 틈이 없다.
금요일은 돌아오는 주 수업 준비를 마무리하는데 마음은 마무리지만 결국 애매하게 남겨 일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고질병이라 하든 안 하든 집 안에 끌고 들어와야 마음이 편하고 토일 중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 그다음 주 준비를 마무리한다.
토요일 아침은 보통 밀린 집안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빨래를 돌려놓고 밀린 잠을 좀 더 청하다 빨래가 다 돌아갔다는 알림음이 울리면 온전히 기상한다. 아침을 챙겨 먹고 청소를 한 뒤, 간단히 집 정리를 하고 이틀의 온전한 휴식을 즐긴다. 주말 중 하루는 글쓰기 소모임 ‘사각사각’을 위해, 나머지 하루는 데이트를 위해 할애하면 주말도 그렇게 순삭이다.
‘일상’의 사전적 의미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날마다’, ‘반복’, ‘생활’ 등의 단어들은 지루하고 답답한 느낌이라 대수롭지 않거나 별다를 거 없는 식상한 것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그러나, 그런 일상들이 모여 삶이 되고 추억이 되기에 나름의 방식으로 슬기롭게 일상을 꾸려나가야 한다.
스무 살, 물리적 나이만으로 얻은 ‘어른’이라는 감투는 꽤 그럴싸한 것들을 덤으로 안겨주었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들의 순번을 정하고 주어진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밤길을 자유롭게 활보하고 진한 사랑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마냥 좋기만 했다. 그에 따르는 책임이 무거운 족쇄라는 걸 깨달은 건 한참이 지난 후였으니 후회로 가득한 순간들로 일상은 무질서한 얼룩 투성이었다. 결국 그 얼룩의 진범은 나 자신이라는 걸 실감하고 내 인생에 내린 작전명이 지금의 좌우명이 되었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만이 후회 없이 나이 먹는 법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움직이길 좋아하는 그와 나를 위해 그는 얼마 전 우리의 주말을 위한 자전거를 선물했고, 나의 주말은 좀 더 여유롭고 풍성해졌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감정과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줄 알고, 걸으며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고, 산이나 바다 보는 것을 좋아해 산이 훤히 보이는 집을 선택했다. 그거면 내 일상은 이미 혼자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하다. 난 뭐든 혼자서도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