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보통명사 김지영

by Carpe diem



얘들아, 안녕! 선생님 이름은 ‘김지영’이야.
보통명사 같은 이름이지?


참 예쁜 아이들과의 작별은 늘 낯설고 아프다.


3월,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 나를 소개한다. 흔하디 흔한 이름이라 스스로를 ‘보통명사’라 칭하면서 자연스레 내가 태어나던 해에 유행하던 이름이라 수많은 ‘김지영’이 존재하더란 이야기로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한 때 유행하던 ‘싸이월드’에서 ‘김지영 모여라’라는 클럽에 초대된 이야기, 그 클럽에 온갖 김지영이 모여 ‘글쓴이’가 전부 ‘김지영’인 진기한 경험을 했단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 머리에 내 이름은 금세 각인된다.

앞에서도 말했듯 내 이름은 ‘김지영’이다. 지혜 지, 꽃부리 영. ‘지혜로운 꽃’이란 의미를 지닌 내 이름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자’의 이름으로 손색이 없다.


남녀의 성 역할이 분명했고 그 구분이 상식처럼 여겨져 남녀 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를 살아온 나는 아이들에게 ‘차이’를 인정하고 건강한 자의식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차별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난 지금은, ‘존중’과 ‘배려’를 기반으로 건강한 비판 의식을 갖춘 어른으로 성장하라고 자주 말하곤 한다. 아이들에게 향한 이 말은 곧 나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설로도 출간되고 영화로도 개봉한 ‘82년생 김지영’은 작년 한 해 내게 숙제와도 같았다. 그 소설 혹은 그 영화 봤냐는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백 번 이상 들은 후에야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봤다. 결론은. 예상했던 대로 ‘오열’이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하며 지내는 여성의 삶이 지배적이던 80년대에 태어나 여자도 공부를 하고 자신의 경력을 쌓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어른이 된 세대. 결혼도 당연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당연하나 그렇다고 본인의 일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중고 삼중고도 아닌 ‘N중고’를 겪고 있는 그런 세대로 작품 속 ‘김지영’의 버거움에 오롯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강요된 수많은 역할들 속에 본인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순간들 앞에 맥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당시 온갖 논쟁의 단두대에 오른 작품이라 남녀 간의 갈등이 아닌 제도와 관습의 문제라는 전제 하에 진중하게 바라봐 주길 바란다는 당부를 인스타그램에 적었고 내 말에 공감해 주는 제자들의 댓글을 보며 내 숙제의 결과는 성공적이었음을 실감했다.


이렇듯 ‘김지영’이란 이름은 시대를 대변하기에 충분한 이름인 만큼, 어디든 새로운 곳에서 묻히기 참 좋았다.


너무 개성이 없고 흔해서 싫지 않냐고 묻는 이들도 있으나 한 반에 두세 명씩 있어 내가 내 이름을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이름이라 되려 나는 좋았다. 이름이 무난하니 특정 이미지로 규정될 리 없어 좋고, 적당히 부드러운 이름의 어감이 유한 인상을 줘서 좋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올 봄, 아이들이 채우기도 전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벗꽃.


오랜만에 아이들이 등교를 했고 교실에서 대면 수업을 진행하며 가을이 되도록 아이들 이름조차 제대로 모르는 나를 보고 마스크로 가린 아이들의 얼굴만 기억한 채 저물어 가는 2020년을 원망했다. 온전히 아이들 이름을 불러줄 기회가 거의 없어 기억하는 몇몇 아이들에게 나도 모르게 더 눈길이 머물고 이름을 자주 부르고 있음에 미안해져 사진 명렬표를 꺼내놓고 가물가물한 아이들을 어림짐작으로 불러보았다. 필기하다 화들짝 놀라는 아이, 조용히 졸다 눈 비비며 나른하게 답하는 아이, 한껏 늘어져 있던 아이까지 괜히 한 번씩 싱겁게 불러 놓고 씩 웃어주니 지들도 따라 어색한 듯 씽긋 웃는다.


칠판 위 분필로 끄적끄적 한 글자 한 글자 채워나가는 일상이 계속될 수 있길



나는 지혜로운 꽃이니 예쁜 꽃 하나하나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 목청 높여 수업한 오늘, 나직이 장난스레 불러본 아이들 이름의 의미를 내일은 한 번씩 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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