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국어교사 생존기
특성화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한 경력이 어느새 6년 차에 접어든다. 교사 경력 총 12년이니 절반을 특성화고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셈이다.
특성화고등학교란, ‘특정 분야의 인재와 전문 직업인 양성을 위한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등학교(네이버 지식백과 발췌)’를 말한다. 즉,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일명 주요 과목인 ‘국어’는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비주류’로 인식된다. 전문교과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건 특성화고등학교의 특성상 당연한 일이다. 전공을 미리 선택하고 들어온 아이들인만큼 보통교과에 마음을 줄 리 만무하다. 대부분은 심드렁하기 일쑤고, 그래서 인문계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온 직후에 3학년 전담을 맡게 된 난 아이들에게 서운했다.
졸업을 앞둔 아이들은 취업과 대학 진학 사이에서 고민했고,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의욕적이었으나 취업을 결정한 아이들은 대놓고 국어 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여겼다. 아니면 몰래 숨어서 혹은 아예 교과서도 없이 대놓고 그림을 그리거나 자기 전공과 관련한 활동을 대차게 해나가기도 했다. 하필 직전에 근무한 학교가 공부 잘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던지라 그 서운함과 이질감은 배가 되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개학하고 일주일, 아이들을 관찰했다. 어김없이 아이들의 각자 활동은 시작되었고 그런 아이들에게 말없이 다가갔다. 그림 그리는 아이들은 제 그림을 숨겼고, 교과서 소지 여부를 묻는 내 물음에 퉁명스러웠다. 아이가 그리던 그림의 한 귀퉁이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애정과 노력을 기울이며 그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림 참 좋다.
교과서가 없다는 말에 경고나 꾸짖음이 돌아와야 정상인데, 그림이 좋다니.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림을 가리느라 한껏 힘이 들어간 두 팔의 힘도 스르르 풀렸다.
제출해야 할 시일이 급한 거니? 그런 거면 수업 전에 미리 선생님한테 와서 말해줄래? 미리 양해를 구해준다면 너도 마음 편히 그리고, 선생님도 네 그림을 마음 놓고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아이의 사과는 친절하고 정중했다. 그리고 교탁으로 돌아와 너희들의 꿈과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할 테니, 수업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예의만은 잊지 말자고 말한 후 아이들의 진로에 맞는 시간 활용을 공개적으로 허용했다. 그리고, 국어라는 과목이 꼭 입시에만 필요한 과목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그 어떤 분야에도 도움이 될 만한 교양과목과도 같은 존재이니 너무 미워 말아달라는 조금 가벼운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 후,
아이들이 나와 수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졸업 작품을 앞두었거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거나, 급하게 제출해야 할 대회의 공모작을 위해 급하게 시간이 필요해지면 수업 전 내게 찾아와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에는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연스레 아이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내 주특기지만 말하지 않으면 쉽게 드러나지 않는 ‘글쓰기 신공’을 아이들을 위해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고 싶어 대학 시절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문예창작’을 무기로 꺼내 들었다.
얘들아, 선생님 문예창작도 전공했어.
언제든 활용해.
영화를 전공하는 아이들 반에서는 시나리오 쓰고 영화 찍는 일에 고심하는 아이들을 위해 시나리오 첨삭을 도와주었다. 만화를 그리거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반에서는 아이들 그림에 들어갈 스크립트나 대사의 문맥을 만지는 일을 도왔다. 게임을 만드는 반에서는 캐릭터를 설정하거나 스토리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도울 수 있는 건 없는지 살폈다. 자연스레 아이들의 전공에 대한 이해도가 넓어졌고, 아이들의 꿈을 내가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난 ‘유별난 국어 교사’가 되었다. 5년간 재직한 내 첫 특성화고에서 난 5년 내내 3학년 아이들을 맡았고, 아이들의 자기소개서도 내 차지였다. 이에 더해,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첨삭을 바랄 때는 퇴근 후에도 아이들 글을 읽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 무렵이면, 아이들 글과 아이들 꿈에 파묻혀 보내길 자주 했다.
선생님 덕분에 글을 그리는 게 즐거워졌습니다.
애정 하는 나의 애제자들이 졸업을 하고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회사에 취직하는 걸 보는 낙으로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익명의 한 제자(누군지 뻔히 알 만한)로부터 오래도록 새겨두고 싶은 마음을 선물 받았다.
그림을 못 그리는 나는 글을 쓰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제자는 글까지 그릴 수 있게 되었다니, 그리고 그 과정이 즐거워진 게 내 덕이라니 이보다 더한 선물이 또 있을까.
선생님, 왜 이렇게 열심히 사세요?
얼마 전, 신나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만들어 낸 수업자료에 대해 아이들에게 자기 PR을 하던 와중에 그 반에서 가장 열심히 수업을 듣는 아이가 물었다. 어차피 절반이나 들을까 싶은 국어 수업에 그 어떤 국어 선생님도 자기네들을 위해 이렇게 수업하진 않았다며 돌려 말한 칭찬이었다.
너희들이 열심히 듣잖아.
그리고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면 좋잖아.
안 그래?
첫 담임을 맡은 해였나.
아이들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는 내게 어느 날 아빠가 물었다. 한 해 머물다 가는 아이들인데 그렇게까지 할 거 있냐고. 그 아이들에게 한 해지만 그 한 해가 아이들의 삶의 지표가 될 수도,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답하고 적잖은 시간이 흘렀으나 여전하려고 노력하는 난 변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필요충분조건이기 위해 오늘도 잊지 않고 한 아이의 울림을, 지나간 아이들의 마음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