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믿어 벌어진 일
해당 글(교사도 결국 직장인입니다) 링크 :
https://brunch.co.kr/@jiyung81/36
9월 28일, 10월 5일에 카카오톡 채널 메시지를 통해 내 글이 소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이미 다음 직장 IN 메인과 브런치 홈에 공개가 된 글이고 요즘 시국에 맞는 소재로 쓴 글이니 한 번 더 소개되는 거겠지 덤덤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브런치 카카오톡 채널 구독자가 무려 52만 명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달라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눌러보진 않겠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할 거고, 혹여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누군가의 오해와 미움, 편견으로 인한 화살이 나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오진 않을까 염려되었다. 이미 달린 댓글들에도 교사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코로나로 인해 힘겨워하는 학부모들의 고충이 묵직하게 담겨있어 그 걱정은 더 깊어졌다.
브런치에 연락해 채널 소개는 막아달라고 말해야 하나 잠깐이나마 고민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건 아이들이기에 학교에서 열심히 일하는 교사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조금만 너그럽게 이해해 달라는 게 본 취지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읽는 것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에 조용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10월 5일 아침 8시, 카카오톡 채널 메시지가 오고 1초도 되지 않아 브런치 알림이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라이킷과 댓글과 구독이 쏟아지고 내 덤덤함은 무지가 빚어낸 것이었음을 단박에 깨달았다. 일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울려대는 통에 결국 알림을 끄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확인하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댓글 허용 끄는 게 좋지 않을까?
댓글들이 과해져서 상처 받을 것 같은데.
잠깐 들어가 댓글을 확인했다. 시국이 이러니 어디든 마음을 풀 곳이 필요할 거란 내 마음을 넘어선 말들로 얼룩진 공간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들이 무색할 만큼, 글조차 제대로 읽지 않고 무조건적인 비판과 편견으로 가득한 댓글들이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교육과 학교, 교사, 공무원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팽배한 말들을 넘어 무조건적인 비난까지, 내가 받을 상처를 넘어 이 글에 힘을 얻고 간 사람들까지 맥이 풀리고 상처가 될 만한 댓글들을 마주하며 ‘댓글 허용 금지’를 해야 하나 망설인 것도 잠시, 바로 ‘새 댓글을 쓸 수 없는 글입니다.’ 문구가 뜨도록 설정하였다.
댓글을 허용한 상태에서 이 글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브런치였기 때문이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니 최소한 정독하고 댓글을 달 거란 기대감으로, 그에 적합한 비판이라면 더 겸허히 묵직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런데 결국 나의 믿음은 ‘감성 넘치는 착각’이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감정 소모전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본인 기사에 달리는 수많은 악성 댓글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연예인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주 잠시나마 격하게 공감했다.
나도, 이 글을 읽고 공감하거나
힘을 얻는 사람들도 감정 쓰레기통은 아니다.
글에는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다.
그걸 믿기 때문에 난 담임을 맡으면 반 아이들에게 학급 편지를 쓴다. 내 편지를 받고 차분하게 읽는 종례 시간과 차곡차곡 그 편지를 모아 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지나친 감성주의에 빠진 몇 안 되는 교사라 폄하할지라도 내가 꿈꾸는 학교는 아이들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며, 나라도 잘해서 내 주변 아이들에게라도 함께 꿈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자는 게 내 소명 의식이다. 그런 내 마음만 잊지 않으면 된다.
댓글을 막아두고 마음을 다스리며 일상을 이어갈 즈음, ‘브런치의 기타 제안’ 이메일이 도착했다. 기타 제안은 뭘까 궁금해하며 열어 본 메일에는 마음을 가득 담은 글이 적혀있었다. 일면식조차 없는 한 작가님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이란 단어를 선물 받고, 한동안 먹먹해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텍스트 뒤에는 사람이 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는 사람들에게 받을 뻔한 상처가, 그 당연한 사실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고 수고스러움까지 더해 글 뒤에 숨은 ‘글 쓴 이’에게 전해 준 그 마음으로 위로받았다. 글 하나에 마음이 열천 번도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의 일상이 오래도록 유지되길 바라며, 글의 영향력을 믿고 꾸준한 글쓰기를 이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