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회고
2019년 7월, 심신이 모두 망가진 채 자존감마저 바닥을 쳐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를 만큼 절망적이었다. 내 인생 최고의 패배라고 단정 지을 수 있었던 그 순간 내가 찾은 돌파구는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힘든 순간에 글을 써나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혼자 쓰는 글은 무책임하고 소극적이라 강제적이고 적극적인 글쓰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내가 찾은 건 글쓰기 소모임 ‘사각사각’이었다.
소모임 ‘사각사각’ URL :
http://somoim.friendscube.com/g/8a780cd2-6d4e-11e8-94b8-0a2ee3a3a8541
대여섯 명이 모여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으며 느낀 점을 자유롭게 이야기한다는 사각사각의 취지가 마냥 따뜻했다. 강제적, 적극적 글쓰기를 바랐던 내가 따스함에 끌려 모임을 선택했다는 건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생채기를 내가며 상대의 글을 비평하고 채찍질하는 글쓰기를 바란 건 아니었다.
나는 글로 나를 위로해야 했고,
치유되어야만 했다.
모임 첫 참석 날, ‘인물’이라는 주제가 던져졌고, 일주일간 ‘인물’이라는 단어를 끌어안고 끙끙 앓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른 채 처음부터 내 이야기를 쏟아내긴 싫었고 시를 쓰기엔 어색했다. 그래서 선택한 건 내 경험을 허구화해 쓴 소설이었다. 글 뒤로 숨어 행복하면서도 아팠던, 꽤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낸 내 첫 공식적 글쓰기는 나쁘지 않았다. 만약 그날의 기억이 부끄러웠다면 나의 치유책은 글쓰기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나는 늘 사각사각이 고맙다. 그 후에도 거의 매주 모임에 참석하며 글을 썼다. 글을 쓸 여력도 없이 바닥으로 내닫기만 했던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묵힌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어떤 주제를 받아도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잠재되어 있던 묵직한 마음의 짐들을 하나둘 글에 담아 내려놓으며 나는 서서히 괜찮아졌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나날들이 늘어가며 습관적 글쓰기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이 넘게 지금까지 내 글쓰기는 꾸준하며 성실하다.
그렇게 지난 글들을 다시 읽다가 내 글의 주된 원천은 늘 ‘아픔’이었음을 깨달았다. 행복한 일상만 공유하기 급급한 SNS에 환멸을 느낀 탓에,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면 팔로우도 하지 않는 폐쇄적인 인간이라선지 의무적으로 아프고 무거운 주제들만 글로 담아냈던 걸까. 어쩌면 마음껏 불행할 자신은 있지만, 대놓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어쩐지 낯간지럽고 쑥스러워 피하기만 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아픈 일들을 떠올릴 겨를 없이 행복한 요즘, 나는 글쓰기를 중단해야 하는 걸까. 수많은 잡념으로 망설이느라 한동안 브런치에도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러다 내가 남긴 흔적들이 모두 상처와 무거운 아픔들뿐이라면 행복했던 내 순간들이 너무 가여운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선택한 사람에게 양껏 사랑을 표현하고, 현재의 나는 원 없이 행복하다는 걸 가감 없이 글로 담아내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이제부터는 ‘행복한 글을 쓰는 일’에 익숙해져야겠다.
모임에서는 오롯이 글만 쓰겠다고 다짐한 나는 글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그렇게 어설픈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나 기록하지 않으면 쉽게 잊기 때문에, 행복한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기록할 것이다. 또 한 번의 인생 전환점에서 내 삶의 ‘새로 고침’이란 전혀 다른 것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나를 굳건히 지키되 솔직하게 행복함을 즐길 줄 아는 나로 성장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