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없이 결혼했습니다
잠잠해질 줄 모르는 코로나로 결혼식들이 취소되고 무기한 연장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요즘, 아이까지 생긴 우린 결혼식도 신혼여행도 없이 결혼하기로 했다.
가족끼리 조촐하게 식사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대신하기로 했으니 당연히 주변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 초대하지 않는 결혼식이라 딱히 알리기도 어색하고 축하받기도 애매하니 우리끼리 축하하고 혼인신고하는 날을 결혼기념일로 하자 약속한 우리는 11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가족 식사를 하고 12월 3일에 혼인신고를 한 후 부부가 되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하던 어느 날, 학교에서 온 한 통의 문자로 조용히 지나가려던 내 결혼이 시끌시끌해졌다. 상조회를 담당하는 선생님이 내 결혼 사실을 알고 계신 몇 분 중 한 분에게 전해 들었고, 마땅히 축하받을 일이니 모든 선생님들에게 문자를 돌렸다는 내용의 짧은 통화 후 당혹스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졸지에 남몰래 결혼한 꼴이 되어 버렸으니 난감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축하해 주시려는 선생님들의 마음에 죄송하면서도 감사해 만감이 교차했다. 올해 학교를 옮기자마자 결혼에 이어 내년에 아이까지 출산해야 하는 난 곧 휴직해야 하는 처지라 더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이미 알려진 거 민망한 박수라도 감사히 받자 마음먹었다.
다음 날도 재택 근무일이었으나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어 학교에 들렀다. 여기저기 붙잡혀 축하를 받고 왜 숨기고 결혼을 했냐며 남편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람인지 질문들이 이어졌다. 결혼을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계획에 없던 짧은 주례사를 들려주시는 선생님들까지 이어지는 관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아니, 왜 도둑 결혼을 했어요?ㅎㅎ”
축하해 주러 다가오신 한 선생님의 짓궂은 질문에 몰래 한 결혼이니 도둑 결혼이 맞긴 맞지 싶어 같이 웃었다. 초대하지 못하는 결혼이라 말씀드리기도 민망했다고 답한 뒤 기분 좋은 축하를 양껏 받고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핸드폰 바탕화면에 저장되어 있는 우리의 간소한 웨딩 사진을 바라보며 촬영한 날 드레스 입은 나를 보고 생각보다 담담하게 반응하던 그가 떠올랐다. 드레스 입은 신부에게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핀잔을 주었더니 그는 또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너무 예뻐서 마음이 썩 좋지가 않아.”
“그게 무슨 말이야?”
“이렇게 예쁜 모습 나만 보긴 아까워서.
많은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마음껏 박수받으면서
남들처럼 그렇게 결혼하면 좋을 텐데.”
그의 마음도 그의 반응도 늘 예상한 것 이상으로 옳았으나 이건 생각보다 묵직해서 마음이 찡했다. 그런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다 결심한 결혼이니 그의 끝없는 지지와 박수면 내 결혼의 의미와 가치는 이미 충족된 셈이었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아이, 예쁘게 봐주세요.”
“예쁘죠. 딱 봐도 예쁘잖아요.”
가족끼리 식사하는 자리에서 우리 부모님에게 건넨 어머님의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 우리 아빠는 망설임 없이 짧게 화답했다. 나보다 나이 어린 남자와 연애한다는 말을 듣고 철이 없다며 나를 나무라던 우리 아빠는 그를 인사시키던 날 진중하게 경청하는 그의 모습과 진심 어린 그의 편지를 읽고 심성이 곱고 똑똑해 괜찮은 녀석 같다고 말해주셨고 날 믿어주는 아빠에게, 노력한 그에게 감사했다. 무엇보다, 행복해하는 그와 나를 보면서 엄마도 아빠도 어머님도 마음을 놓고 두 팔 벌려 가족으로 맞아주셨으니 우린 수많은 이들의 축하보다 더 열렬한 박수를 받은 행복한 부부다.
갑자기 찾아온 축복이와 장기전으로 치달은 코로나로 몰래 치른 도둑 결혼이지만, 그래서 불필요한 소모전 없이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며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타인에서 지인으로, 지인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짧은 시간 폭풍처럼 변화된 우리 관계의 진전이 생각보다 잔잔했던 건 각자가 지키고 있는 마음자리가 견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우린 서로를 향해 아낌없이 박수쳐 주고 쉼 없이 어루만지며 따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