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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pe diem Feb 20. 2021

EP11. 서로의 잠을 지키는 사이

 내 나이 열아홉이었나. 어쩌면 그 이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한 건 고3 때 불면증에 허덕이며 그 괴로움을 일기에 적었다는 기억만 뚜렷하게 남아, 내 편두통과 불면증의 시작은 열아홉이라고 단정 짓기 시작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밤도깨비로 지냈고, 몸은 피곤한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괴롭고 힘들었다. 한 달에 4분의 1은 편두통을 앓곤 했는데, 밤새 뒤척이다 바깥 날씨가 어떻든 개의치 않고 한밤에도 창문을 열어 창밖으로 머리를 떨구곤 했다. 찬바람이라도 쐬면 무거운 머리가 좀 가벼워져 잠을 청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심한 날은 먹은 걸 다 게우기까지 했다. 속을 비우니 이상하게 머리가 좀 개운해지는 듯한 경험을 한 이후로 구토 증상은 심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뇌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자세가 불균형하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성 두통일 거라는 두루뭉술한 진단이 전부였다. 결국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내 두통과 불면증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이런 내가 누군가와 한 침대에서 잠을 공유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귀도 밝아서 옆에 있는 누군가가 먼저 잠들어 숨소리를 크게 내거나 코를 골기라도 한다면 그날 밤 풋잠도 내 몫이 아닌 게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친구 집에 놀러 가도 잠은 집, 정확히는 내 방에서 자야 했고, 여행을 가서도 한 침대에서 자거나 한 공간에서 자야 할 땐 귀마개나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했다. 이렇게 감각에 민감하고 까탈스러운 나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남편과 처음으로 밤을 함께 한 날, 불면증이 있다고 선전포고를 했던 내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난 숙면을 취했다. 내 키와 나란할 만큼 아담한 신랑의 품은 의외로 널찍하니 따스했고 세탁기에서 갓 꺼낸 빨래 향을 머금은 채취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먼저 잠들면 안 된다는 당부에 내 의식이 남아있던 그 순간까지 그의 일정한 토닥임도 계속되었다. 기분 좋게 안긴 채 이야기를 나누다 눈이 감겼고, 그토록 편안하고 깊은 잠은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서로의 잠을 지키는 사이가 되었다.


 임신을 한 탓에 애써 잠을 청하지 않아도 먼저 잠이 드는 나는 신랑 앞에 한 번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렇게 난 거짓말쟁이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쉽지 않았던 게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능한 게 되어버렸으니 신기하고 마냥 좋기만 하다. 거의 대부분 나보다 늦게 잠이 드는 신랑에게 잠든 후 내 숨소리나 잠꼬대 간혹 코 고는 소리를 들키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밤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는 건 묘한 동질감을 안겨준다.

“나랑 결혼하니까 뭐가 제일 좋아?”
“헤어지지 않고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잖아.”


 가끔 뜬금없이 마음을 확인하는 나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신랑과의 대화가 나는  좋다.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기분 좋은 수다로 남은 에너지를 모두 비운  스르르 잠드는  순간의 안락함을 함께 하는 우린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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