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아홉이었나. 어쩌면 그 이전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확한 건 고3 때 불면증에 허덕이며 그 괴로움을 일기에 적었다는 기억만 뚜렷하게 남아, 내 편두통과 불면증의 시작은 열아홉이라고 단정 짓기 시작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밤도깨비로 지냈고, 몸은 피곤한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괴롭고 힘들었다. 한 달에 4분의 1은 편두통을 앓곤 했는데, 밤새 뒤척이다 바깥 날씨가 어떻든 개의치 않고 한밤에도 창문을 열어 창밖으로 머리를 떨구곤 했다. 찬바람이라도 쐬면 무거운 머리가 좀 가벼워져 잠을 청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심한 날은 먹은 걸 다 게우기까지 했다. 속을 비우니 이상하게 머리가 좀 개운해지는 듯한 경험을 한 이후로 구토 증상은 심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뇌 정밀 검사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자세가 불균형하거나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성 두통일 거라는 두루뭉술한 진단이 전부였다. 결국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내 두통과 불면증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이런 내가 누군가와 한 침대에서 잠을 공유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귀도 밝아서 옆에 있는 누군가가 먼저 잠들어 숨소리를 크게 내거나 코를 골기라도 한다면 그날 밤 풋잠도 내 몫이 아닌 게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친구 집에 놀러 가도 잠은 집, 정확히는 내 방에서 자야 했고, 여행을 가서도 한 침대에서 자거나 한 공간에서 자야 할 땐 귀마개나 이어폰을 꽂고 잠을 청했다. 이렇게 감각에 민감하고 까탈스러운 나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남편과 처음으로 밤을 함께 한 날, 불면증이 있다고 선전포고를 했던 내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난 숙면을 취했다. 내 키와 나란할 만큼 아담한 신랑의 품은 의외로 널찍하니 따스했고 세탁기에서 갓 꺼낸 빨래 향을 머금은 채취가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먼저 잠들면 안 된다는 당부에 내 의식이 남아있던 그 순간까지 그의 일정한 토닥임도 계속되었다. 기분 좋게 안긴 채 이야기를 나누다 눈이 감겼고, 그토록 편안하고 깊은 잠은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서로의 잠을 지키는 사이가 되었다.
임신을 한 탓에 애써 잠을 청하지 않아도 먼저 잠이 드는 나는 신랑 앞에 한 번도 불면증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렇게 난 거짓말쟁이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쉽지 않았던 게 별다른 노력 없이도 가능한 게 되어버렸으니 신기하고 마냥 좋기만 하다. 거의 대부분 나보다 늦게 잠이 드는 신랑에게 잠든 후 내 숨소리나 잠꼬대 간혹 코 고는 소리를 들키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밤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는 건 묘한 동질감을 안겨준다.
“나랑 결혼하니까 뭐가 제일 좋아?”
“헤어지지 않고 계속 같이 있을 수 있잖아.”
가끔 뜬금없이 마음을 확인하는 나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신랑과의 대화가 나는 참 좋다.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기 전 기분 좋은 수다로 남은 에너지를 모두 비운 후 스르르 잠드는 그 순간의 안락함을 함께 하는 우린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