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두려운 건 방송 때문이 아니었던 건가?
방송을 그만두고 가장 좋았던 일은 공휴일과 주말에 쉴 수 있다는 거였다. 방송을 하던 시절의 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휴가를 즐길 수 없었다. 놀러 가는 사람들 틈에 끼여서 출근을 해야 했고 친구들의 휴가 후일담을 들으며 자료를 찾고 섭외를 하고 원고를 써야 했다. 가끔 너무 따분해서 촬영가는 피디를 따라가거나 가까운 곳으로 바람을 쐬러 가기는 했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항상 일을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서 내 핸드폰은 언제나 꺼질 수 없었고 나의 신경 역시 핸드폰에 가있었다. 언제든 벨소리가 울리면 받아야 했으니까. 때로는 그 자리에서 섭외 전화를 하기도 하고 피디와 촬영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편 본도 그 자리에서 확인했다. ‘파인도 핸드폰으로 하면 참 좋겠다’ 고 생각하던 나는 이제 가끔은 핸드폰을 꺼둘 정도로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분리할 수 있게 됐다. 아이들이 오는 주중에도 수업 중에는 무음으로 설정하며 전화나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해도 누구 하나 탓하는 사람이 없었다.
방송을 그만두고 내가 제일 먼저 한 건 휴가철에 친구와 강원도 속초로 여행을 간 것이다. 사람들 틈에 끼여서 줄을 서고 몸을 부딪치며 걷는데도 나는 즐거웠다.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걷는 것도 카페에 발 디딜 틈이 없어 여기저기 기웃 거리는 것도 즐거웠다. 그렇게 2박 3일을 난생처음 즐기듯이 놀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는 휴가를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내가 원장이니까 내 마음대로 방학을 정했고 미리 계획을 잡을 수도 있었다. 물론 여름방학기간 중이어야 했지만 조금 늦거나 빠르다고 해서 뭐라 하는 학부모들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계획을 미리 잡고 방학 일정을 통보했다. 그 일정에는 내가 갖고 싶었던 여행지와 함께 휴가를 즐길 친구의 휴가 계획을 고려한 것이다. 꼭 휴가가 아니더라도 공휴일이나 이럴 때도 나는 놀 수 있었다. 내가 방송을 할 때는 명절에도 쉴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명절에도 무조건 다 쉰다. 내가 안 쉬고 싶어도 아이들이 쉬고 싶어 하기 때문에 꼭 쉬어야 한다. (사실 내가 제일 쉬고 싶다) 학업에 피곤한 아이들을 쉬게 해 준다는 명목 하에 나는 몇 달 전부터 공휴일에 무얼 해야 할지 계획을 잡았다. 물론 작년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딱히 계획을 세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공휴일이 있는 달에는 그 날만 보면서 힘든 걸 참을 수 있었다.
엄마는 항상 방송 작가인 나를 보면서 ‘사람은 남들하고 똑같이 살아야 해. 똑같지는 못해도 비슷은 해야지.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잘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자는 삶이 뭐가 행복하겠니.’라고 말을 했었다. 사실 나는 그런 내가 멋있어 보여서 좋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멋진 커리어 우먼들이 대부분 밤 낮 없이 일을 했고 일과 여가시간을 구분 짓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나는 콧방귀를 뀌며 ‘난 정말 멋있어’라는 생각에 도취되고는 했다. 그런데 그건 길게 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여름휴가를 떠나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주말에 가족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점점 주말도 휴가도 없이 일 하는 내가 안쓰럽다 못해 화가 났다. 더구나 아이템이 ‘휴가’ 나 ‘여행’에 관련된 거를 할 때면 더 그랬다. 방송일을 할 때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1월부터 12월까지 1년 365일을 방송 생각만 하며 살아야 했다. 그 시간이 언제든 나는 나보다 방송을 우선시하며 살았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내가 그곳을 떠난 지 5년이 됐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불쌍하게 살았는지 어제 텔레비전을 보면서 알았다. 방송에 나온 피디는 방송이 없는 날 쉬다가도 가편 본을 받아서 피드백을 해줘야 했고, 바로 회사로 달려가서 편집을 해야 했다. 방송이 나가고 쉬는 시간에 갑자기 다음 주 아이템 회의를 하러 출근해야 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와서 억지로 씻고 밥을 먹고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몇 시간 자지도 못 하고 다시 일어나서 회사로 가는 발걸음에 나는 안도했다.
‘아 저렇게 살았구나 내가’
‘이제는 저렇게 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나는 이제 정해진 수업이 끝나면 정리를 하고 밥을 먹고 씻고 밤에 잠을 잔다. 내가 자는 시간에는 누구도 나를 깨우지 않고 별다른 일이 없으면 나는 적어도 하루에 7시간을 자려고 노력한다. 물론 내 개인적인 문제로 7시간을 못 자는 날도 많지만 그건 나 때문이지 다른 요인 때문이 아니다. 수업이 끝나고 가끔 학부모들에게 전화가 오거나 내가 챙길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정확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쉬다가 갑자기, 어딜 가다가 갑자기 이런 일들은 거의 없다. 혹시 밤 10시가 넘어서 전화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다들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하고 먼저 내 상황을 살폈고 나는 ‘내일 전화드릴게요’라고 융통성을 발휘해도 됐다.
달콤한 잠에 빠져있을 때 울리는 벨소리가 트라우마였다. 그래서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난 그 벨소리만 울리면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전화가 온다는 건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일 테니까. 아무리 계획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방송 일이라도 기본적인 스케줄이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온다거나 나를 찾는다는 건 촬영에 문제가 생겼거나 편집에 문제가 생겼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편집에 문제가 생겼는데 설상가상 다음 주 아이템에도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벨소리만 울리면 짜증이 나고 불안했다. 진동으로 해놓으면 되지 않냐고 친구가 물은 적이 있는데 그럼 벨소리를 듣지 못해 방송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밤 12시 이후에는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다. 전화도 오지 못하게 설정해 놓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에 혹시 중요한 일이 있을 수 있어서 그 전화들은 벨소리도 다르게 해 놓았고 언제든 울리게 해 놓았다. 그 전화 빼고는 나는 그 어떤 연락에서도 이제 자유로울 수 있다.
설, 추석에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는 나는 이제 명절에는 언제 집에 갈지를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이 됐다. 공휴일에는 멀리 있는 친구들과 만나고 싶어 약속을 잡으려고 연락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 올 해는 언제 여름휴가를 떠날지 달력을 쳐다보는 일이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코로나가 얼른 진정돼서 올 해는 꼭 동남아라도 가고 싶다며 바람을 이야기해본다.
엄마는 내가 항상 평범하게 살기를 원했다. 물론 지금도 엄마의 기준에 나는 평범한 삶을 사는 딸은 아니다. 남들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에 갔다가 저녁 6시에 퇴근하는 게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아침 11시에 일어나서 2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고 10시에 마무리하는 나의 생활은 평범하지 않다. 따박따박 고정적으로 월급이 들어오지도 않고 보너스 같은 건 더더욱 없다. 오히려 이번 달과 다음 달 수익이 계속 둘쑥 날쑥 하고 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니까.
이 와중에 여름휴가 생각하는 거 보니까 정신도 보통은 아닌 듯.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