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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Ah Oct 18. 2021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다.

미안해 엄마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다. 거의 한 달을 병원에 계시다가 집으로 모시고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시다. 다치신 건 아니고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되셨다. 그래서 몇 해전 전동 휠체어를 사드렸다. (내가 사드린 건 아니고 어른들이..) 다치시던 그날도 집에 혼자 있는 게 답답해서 혼자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다가 큰 차에 놀라 핸들을 급하게 꺾는 바람에 넘어지셨단다. 그 일에 많이 놀라셨는지 할머니는 섬망 증세를 보이셨다. 그나마 낮에는 괜찮으신데 밤만 되면 모든 사람들 힘들게 하셨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집에 가시겠다고 하시는 말에 작은 고모가 의사랑 상의해서 집으로 퇴원을 시킨 것이다, 다행히 할머니는 집에 오셔서 섬망 증세가 아예 사라졌다.


 할머니는 넘어지시면서 엉덩이 뼈에 금이 갔고, 섬망 증세 때문에 난동을 부리시다가 넘어지셔서 무릎인대가 늘어났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옆에 누군가가 있어줘야 했지만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할머니를 간호할 수 있는 사람이 엄마밖에 없었다.


 엄마는 병원에서부터 큰고모와 번갈아가며 할머니를 간호했는데 할머니보다도 체구가 작고 말라서 안 그래도 할머니를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었다. 그래도 엄마는 ‘그동안에 잘 못 해 드렸으니까 지금이라도 잘해 드려야지.’라고 했었는데 엊그제는 그 말이 무색하게 짜증을 냈다.



 할머니에게는 자식이 넷 있다. 그중 첫째가 우리 아빠 고 밑에 고모 둘 그리고 삼촌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할머니는 삼촌과 같이 산다. 그러니 당연히 퇴원도 삼촌이랑 같이 사는 할머니 댁으로 했다. 할머니 댁은 우리 집에서 차로는 15분 버스로는 한 시간이 걸린다.

 엄마는 그 길을 아침에는 아빠 차로 빠르게 가고 올 때는 러시아워에 시달리며 한 시간을 넘게 버스로 오갔다.

 무보수로 시간 쓰고 마음 써가며 할머니가 얼른 낫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기는 하지만 남들은 다 자기 살 궁리 찾아서 일도 하고 자기 자식도 돌보는데 엄마만 혼자 매달리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거기다 아빠는 그런 엄마 속도 모르고 자꾸만 엄마를 화나게 해서 그 짜증이 터진 것이리라.




 엄마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게 무슨 일이든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 우리한테 짐이 안되게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일자리를 찾으러 고용노동부에도 가서 알아보고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 일을 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입원하셨고 섬망 증세 때문에 간병인도 쓸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일을 포기하고 할머니한테 간 것이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다른 자식들은 자기 살 궁리를 다 하고 있었다. 정작 자식들은 자기 사정 다 보면서 할머니를 간호하는데 며느리인 엄마만 자기 자식도, 자기 일도 돌보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오른손을 다쳐서 손을 제대로 못 쓰는 내가 신경이 쓰이는데도 맘 놓고 걱정도 못하고 전화도 못한다. 거기다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몇 날 며칠을 앓았다는 소리에 짜증이 난다고 했다. 내가 나는 괜찮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도 그게 그렇게 신경이 쓰이나 보다.

그렇다고 올 것도 아니면서 ㅋㅋㅋ 올 거였나?




 엄마는 면허증은 있지만 운전은 못한다. 엄마는 그 이유를 항상 나 때문이라고 하는데 사실 내가 아니었어도 엄마는 운전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최고속도가 40 임ㅋㅋㅋ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에 올라가면서부터 엄마는 내 뒷바라지를 했다. 반찬을 만들어서 보내지는 않아도 10년 동안 생활비를 보태줬다. 엄마는 내 생활비를 보내지 않았으면 차를 샀을 거라며 운전 못 하는 이유로 나를 지목하는 것이다.

 엄마는 지금도 나를 뒷바라지한다. 서울에 있을 때처럼은 아니어도 가끔 돈이 필요하면 돈을 보태주기도 하고 용돈을 주기도 한다. 집에 가면 필요한 걸 고르라며 사주기도 하고. 엄마가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이런 거라고 했다.

자식들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집에 오면 밥도 사주고 생일엔 용돈도 주고.

그리고 돈이 필요하면 돈도 좀 해주고.

 

 코로나가 다시 심해졌고 나는 정말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하루에 천 명 넘게 확진자가 나오고 부산도 백 명을 육박하면서 정말 많이도 그만뒀다. 그래서 엄마를 붙들고 참 많이 징징거렸는데 거기다 다쳐서 깁스까지 했으니 아파서 거동이 힘든 할머니를 탓하고 싶었겠지. 엄마한테만 할머니를 맡겨두고 자기들 자식 챙기고 자기들 일 할거 다 하는 아빠의 형제들이 미웠겠지. 그런 엄마 마음도 모르고 별거 아닌 걸로 투정 부리는 아빠가 제일 미웠겠지. 그런데 그 짜증을 어디 낼 수도 없고 혼자 끙끙 앓다가 터져버린거겠지. 하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나 때문인 거 같아서.


나는 엄마가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행복하면 좋겠다.

이제 나 때문에 그만 속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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