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엄마가 속상하죠?
나는 빈혈이 있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5년 전부터 생리할때만 되면 너무 어지럽고 심할 땐 걸을 수도 없었다. 그 때는 그냥 생리 전 증후군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생리할때가 아닌데도 메슥거리고 티비에 나오는 것처럼 픽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에 갔다가 알았다.
‘오 마이 갓! 내가 빈혈이라니’
내가 어릴 땐 드라마에 종종 빈혈인 여주인공들이 나왔었는데 그 언니들은 하나같이 엄청 깡말라 바람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몸뚱이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체구를 자랑하던 나는 그런 언니들이 부러웠다. 나도 남부럽지 않게 하얗기는 한데 하늘하늘한 몸뚱이는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지 부럽기만 했다. 그나마 어릴 땐 고만고만해서 특별히 크지는 않았는데 2차 성징을 거치고 난 후에 친구들의 키가 멈추면서 나는 큰 여자가 돼버렸다.
살면서 지금까지 난 한 번도 작아본 적도 말라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여리여리의 대명사인 빈혈이라고?’
의사의 걱정 어린 표정과 말투를 뒤로하고 난 자꾸만 헤죽헤죽 웃음이 나왔다.
‘내가 빈혈이라니!’
나는 하나도 걱정이 안 됐다.
그때 나는 잠깐 본가에 내려와 있었는데 내 신나는 마음과는 다르게 엄마 아빠는 나를 그 길로 자주 다니는 한의원으로 데려가 약을 맞췄다. 그때 한의사 쌤이 엄마 아빠한테
“소고기 많이 드시게 하세요.”
하고 말을 해서 한 동안 소고기를 질리도록 먹어야 했다.
한약도 먹고 철분 약도 꾸준히 챙겨 먹으면서 빈혈은 괜찮아진 거 같았다. 생리 전에 조금 어지럽기는 했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다시 시작됐다. 며칠 전 수업하는데 아득해지더니 너무 어지러웠다. 그러더니 메슥거리고 너무 힘들었다. 생리도 끝났는데……. 혹시나 이석증이 도진 걸까 하고 겁났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빈혈이었다.
철분제를 몇 달 동안 먹지 않았다. 철분제를 먹으면 속도 쓰리고 변비도 걸려서 너무 불편했다. 더구나 이제 어지럽지도 않은데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건방진 생각이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분제를 먹기 싫어서 나는
소고기를 사 먹기로 했다.
그런데 ‘헉’ 소고기가 이렇게나 비쌀 줄이야!
한우는 100그램에 15000원이나 했고, 쌀 줄 알았던 호주산도 돼지고기보다 비쌌다. 아니 돼지고기도 비싸다 비싸다 하는데 그거보다 더 비싸다니. 내 손이 오그라들었다. 그렇게 비싼 걸 내 돈 주고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참 나 20만 원짜리 목도리는 잘도사면서 2만 원도 안 하는 소고기에 벌벌 떨다니. 생각해보니 너무 웃겨서 일단 가성비 좋은 국거리를 주문했다. 미역국이든 소고기 뭇국이든 끓이려고.
나름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역정을 낸다. 내 단점 중에 하나는 엄마한테 거짓말을 못 한다는 건데 엄마가
“어디 아픈데 없니?” 하고 묻는 말에 너무 어지럽다고 말해버렸다. 그래서 소고기를 샀다고. 소고기 사서 국 끓여 먹을 거라고. 난 정말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고 말한 건데 엄마는 그게 얼마 한다고 국거리를 사냐며 구워 먹으라고 화를 낸다. 당장 가서 구워 먹을 걸 사라고. 오늘 사 와서
오늘내일 계속 구워서 먹으라고. 강하게 말을 했다.
전화를 끊고 수업이 다 끝난 저녁에 마트에 가서 소고기를 샀다. 분명히 구워 먹었는지 확인할 거고 난 또 과하게 솔직할 거라 일단 조금이라도 사서 구워 먹어야 했다.
그런데 진짜 소고기 너무 비싸다.
한우는 엄두도 못 내고 호주산 와규도 너무 비싸서 그냥 호주산으로 불고기용이랑 갈빗살 이렇게 두 팩을 담았다. 300그램밖에 안되는데 만원 가까이하는 금액을 보고 이런 거에 손 떨리는 내가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거에 내가 안 어지럽기를 바랄 수밖에.
갈빗살은 바로 와서 구워 먹고 불고기는 시판 양념을 사다가 재웠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확인 전화를 해왔다.
고기를 먹었는지 오늘은 뭘 먹었는지 확인한 엄마는
“돈 걱정하지 말고 또 사 먹어. 왜 그것만 사와. 더 사와. 엄마가 돈 보냈어.” 하고 아프지 말란다.
이 나이 먹고 이렇게 엄마 걱정만 끼친다. 아파서 걱정, 타지에 있어서 걱정, 혼자 살아서 걱정 난 정말 걱정 꺼리다. 이놈의 빈혈. 분명히 5년 전에는 빈혈이라는 말에 신났는데 지금은 안 좋다. 엄마 걱정만 끼치는 나쁜 것.
학생들 많이 들어와서 돈 많이 벌게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 소고기 사주고 옷 사주고 걱정 좀 그만 하게 도와주세요.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