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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Ah Nov 16. 2021

강수지 언니가 부러웠을 뿐인데

왜 우리 엄마가 속상하죠?

나는 빈혈이 있다.

어릴 땐 안 그랬는데 5년 전부터 생리할때만 되면 너무 어지럽고 심할 땐 걸을 수도 없었다. 그 때는 그냥 생리 전 증후군이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생리할때가 아닌데도 메슥거리고 티비에 나오는 것처럼 픽 쓰러지는 바람에 병원에 갔다가 알았다.

‘오 마이 갓! 내가 빈혈이라니’




 내가 어릴  드라마에 종종 빈혈인 여주인공들이 나왔었는데  언니들은 하나같이 엄청 깡말라 바람 불면  날아갈  같은 몸뚱이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체구를 자랑하던 나는 그런 언니들이 부러웠다. 나도 남부럽지 않게 하얗기는 한데 하늘하늘한 몸뚱이는 어떻게 해야 가질  있는지 부럽기만 했다. 그나마 어릴  고만고만해서 특별히 크지는 않았는데 2 성징을 거치고  후에 친구들의 키가 멈추면서 나는  여자가 돼버렸다.

 살면서 지금까지   번도 작아본 적도 말라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여리여리의 대명사인 빈혈이라고?’

 의사의 걱정 어린 표정과 말투를 뒤로하고 난 자꾸만 헤죽헤죽 웃음이 나왔다.

‘내가 빈혈이라니!’

 나는 하나도 걱정이  됐다.


그때 나는 잠깐 본가에 내려와 있었는데  신나는 마음과는 다르게 엄마 아빠는 나를  길로 자주 다니는 한의원으로 데려가 약을 맞췄다. 그때 한의사 쌤이 엄마 아빠한테 

“소고기 많이 드시게 하세요.”

하고 말을 해서 한 동안 소고기를 질리도록 먹어야 했다.



 한약도 먹고 철분 약도 꾸준히 챙겨 먹으면서 빈혈은 괜찮아진 거 같았다. 생리 전에 조금 어지럽기는 했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런데 다시 시작됐다. 며칠 전 수업하는데 아득해지더니 너무 어지러웠다. 그러더니 메슥거리고 너무 힘들었다. 생리도 끝났는데……. 혹시나 이석증이 도진 걸까 하고 겁났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빈혈이었다.


 철분제를 몇 달 동안 먹지 않았다. 철분제를 먹으면 속도 쓰리고 변비도 걸려서 너무 불편했다. 더구나 이제 어지럽지도 않은데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건방진 생각이었던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분제를 먹기 싫어서 나는

소고기를 사 먹기로 했다.

그런데 ‘헉’ 소고기가 이렇게나 비쌀 줄이야!

한우는 100그램에 15000원이나 했고, 쌀 줄 알았던 호주산도 돼지고기보다 비쌌다. 아니 돼지고기도 비싸다 비싸다 하는데 그거보다 더 비싸다니. 내 손이 오그라들었다. 그렇게 비싼 걸 내 돈 주고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참 나 20만 원짜리 목도리는 잘도사면서 2만 원도 안 하는 소고기에 벌벌 떨다니. 생각해보니 너무 웃겨서 일단 가성비 좋은 국거리를 주문했다. 미역국이든 소고기 뭇국이든 끓이려고.


 나름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역정을 낸다. 내 단점 중에 하나는 엄마한테 거짓말을 못 한다는 건데 엄마가

“어디 아픈데 없니?” 하고 묻는 말에 너무 어지럽다고 말해버렸다. 그래서 소고기를 샀다고. 소고기 사서 국 끓여 먹을 거라고. 난 정말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고 말한 건데 엄마는 그게 얼마 한다고 국거리를 사냐며 구워 먹으라고 화를 낸다. 당장 가서 구워 먹을 걸 사라고. 오늘 사 와서

오늘내일 계속 구워서 먹으라고. 강하게 말을 했다.



 전화를 끊고 수업이 다 끝난 저녁에 마트에 가서 소고기를 샀다. 분명히 구워 먹었는지 확인할 거고 난 또 과하게 솔직할 거라 일단 조금이라도 사서 구워 먹어야 했다.

그런데 진짜 소고기 너무 비싸다.

 한우는 엄두도 못 내고 호주산 와규도 너무 비싸서 그냥 호주산으로 불고기용이랑 갈빗살 이렇게 두 팩을 담았다. 300그램밖에 안되는데 만원 가까이하는 금액을 보고 이런 거에 손 떨리는 내가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거에 내가 안 어지럽기를 바랄 수밖에.

 갈빗살은 바로 와서 구워 먹고 불고기는 시판 양념을 사다가 재웠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확인 전화를 해왔다.

 고기를 먹었는지 오늘은 뭘 먹었는지 확인한 엄마는

“돈 걱정하지 말고 또 사 먹어. 왜 그것만 사와. 더 사와. 엄마가 돈 보냈어.” 하고 아프지 말란다.




 이 나이 먹고 이렇게 엄마 걱정만 끼친다. 아파서 걱정, 타지에 있어서 걱정, 혼자 살아서 걱정 난 정말 걱정 꺼리다. 이놈의 빈혈. 분명히 5년 전에는 빈혈이라는 말에 신났는데 지금은 안 좋다. 엄마 걱정만 끼치는 나쁜 것.


 학생들 많이 들어와서 돈 많이 벌게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 소고기 사주고 옷 사주고 걱정 좀 그만 하게 도와주세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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