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잘해 먹고 있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 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어찌 보면 나는 타고나길 작가였고 그중에도 방송작가를 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엄마도 아빠도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끼고 산다. 특히 아빠는 나처럼 다른 일을 할 때도 텔레비전을 켜 둔다. 할아버지랑 고모할머니가 날 보면서
“너는 친탁이야 친탁.” 하셨는데 이런 거 보면 진짜 친탁이 맞는 거 같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두 분 모두 나 같다. 우리는 앉아서 수다를 떨어도 고스톱을 쳐도 텔레비전은 틀어둔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집에 친구들이 놀러 오기도 하고 그때 만나던 남자 친구가 놀러 오기도 했는데 하나같이
“너는 왜 오자마자 티브이를 틀어?”였다.
난 그제야 내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집에 오면 옷을 갈아입거나 손을 씻거나 한 후에 텔레비전을 켜야 하면 켜고 그러지 않으면 자기가 할 일을 한다고 했다.
아무튼 그렇게 텔레비전을 좋아하고 방송을 일로 했던 나는 지금도 여전히 텔레비전 보는 걸 좋아한다. 작년에도 올 해도 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을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나는 삼시 세 끼도 참 좋아한다. 그런데 슬의 멤버들이 나오는 삼시 세 끼라니 10번 플레이 예약이다. (난 뭔가에 꽂히면 거의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보는 습관이 있다.)
슬기로운 산촌생활(이하 슬산)이 시작되고 몇 번씩 반복해보면서 나의 식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슬산에서 볶음밥을 해 먹으면 나도 해 먹고,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나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비빔국수도 해 먹고 카레도 해 먹고 오징어 볶음도 해 먹었다.
혼자 살면서 가장 힘든 게 끼니를 챙기는 건데 밥을 해서 차려먹고 치우는 것도 일이지만 메뉴를 정하는 것도 엄청난 일이다. 엄마들이 아침 해 먹고
“점심엔 뭐 먹지?”하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오죽하면
‘오늘 뭐 먹지?’라는 프로그램까지 나왔을까.
주중에는 사실 밥을 차려먹는 것만도 기특하지만 주말에는 시간이 많아서 웬만하면 직접 해 먹으려고 하는데 메뉴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슬산이 시작하고는 고민하지 않았다. 언제 뭐 먹을지 계산해서 장만 보면 됐다. 장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필요한 걸 살 수도 있고 마트별로 도착시간 물건 종류, 물건 값까지 비교해서 살 수 있으니 어려운 게 없었다.
음식하고 치우는 게 좀 귀찮았지만 어차피 내가 할 일이니까 눈 딱 감고 후다닥 해치우면 됐다.
빈혈이 도지고 난 이번 일주일 동안 소고기를 매일매일 먹어서 좀 지겨운 내 식단에 변화가 생긴 것도 정말 좋았다. 이번 주말에는 토요일 점심에만 고기를 구워 먹고 저녁엔 탕수육, 오늘 점심엔 콩나물 밥, 저녁엔 청경채 소고기 볶음을 해먹었다. 이게 다 슬산의 메뉴들이다: 지난 회에 탕수육을 해먹었고 이번 회에는 콩나물밥이랑 소고기 청경채 볶음을 해먹었다.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밥해먹고 산게 무색하게 여기 와서는 밥 하는 걸 잊었는지 새삼 해 먹을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아서 놀랐고 내가 다 잘해서 기특했다.ㅋㅋㅋ (나 원래 음식 잘 하는데?)
그런데 탕수육은 전분가루가 없어서 망했다. 튀김 가루라도 있었으면 달랐을 텐데 부침가루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니까 난 여기 와서 튀김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튀김가루가 있을 리가…. 전분가루가 없으니 소스도 묽었고 뭔가 태는 안 났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콩나물 밥은 이미 밥 해둔 게 있어서 콩나물을 데쳐서 올리고 양념장을 만들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콩나물을 좋아해서 국도 자주 끓여먹고 무침도 자주 해 먹었는데 이젠 종종 콩나물밥도 해 먹어야겠다.
아 슬산 계속해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