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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Ah Nov 20. 2021

설명서는 글이 아니잖아!

뼛속까지 공돌이 & 타고나길 글쟁이

 오빠랑 나는 어릴 때부터 달랐다. 엄마 말에 의하면 태생부터가 달랐단다. 아주 어릴 때부터 오빠는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다가도 그걸 분해해달라고 가지고 왔고 나는 글씨도 모르면서 책을 꺼내 읽었단다. 글씨를 모르니 당연히 그림만 봤겠지만 그렇게 어릴 때부터 책을 읽었다고 했다. 한 번은 다 같이 어디를 가는데 나는 너무 애기였고 오빠가 5살쯤? 그런데 오빠가 앞에 가는 프라이드 (그 당시 소형차 시장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했다)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아빠. 나 저거 사줘.”

라고 하더란다. 엄마랑 아빠가 너무 웃기면서도 놀랍고 궁금해서 뭐 하려고 그러냐니까

 “가지고 놀게.”라고 해서 엄청 웃었다고 했다. 그게 너무 인상 깊어 지금도 가끔 아빠는 웃으며 말한다. 아빠 말로는 자기가 가지고 노는 자동차는 너무 작아서 성에 안차는데 비슷하게 생긴 작은 자동차가 앞에 있으니까 딱 맘에 들었던 거 같단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 번은 멀쩡한 라디오를 어떻게 분해했는지 다 분해해놓고 조립을 하려다 뜻대로 안 되니까 아빠한테 가져와서 이것 좀 해달라고 했단다. 아빠는 하나하나 다 뜯어져 나뒹굴고 있는 라디오를 보면서 식은땀이 났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건 삼촌이 산지 얼마 안 된 새 라디오였다. 대체 그 어린애가 그걸 어떻게 뜯었는지도 궁금했고 왜 뜯었는지도 궁금했지만 일단 원상복구 시키는 게 먼저라 물어보지 못해서 아쉬웠다고 했다.

 오빠는 그 이후에도 무언갈 보면 (특히 전자제품) 하나하나 분해해서 다시 조립을 했다. 그리고 모형 오토바이, 모형 비행기, RC car까지 조립할 수 있는 것들을 난이도를 높여가며 실행에 옮겼다.

 지금도 오빠네 집엔 건담 친구들과 RC car들이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방 하나엔 자전거들이 있음. 미친놈ㅋㅋ)

 오빠는 그렇게 자라 공대를 졸업했다.




 나는 달랐다.

 나는 친구들과 인형 놀이를 해도 각 인물들의 성격이며 배경을 설정했고 친구들의 대사를 정해줬다. 일기도 그냥 쓰지 않았다. 뭔가 극적인 상황을 만들고 싶어서 살을 붙이고 설정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해였나? 내가 초등학교 때 쓴 일기를 봤는데, 와 나는 그때부터 작가였다. 무슨 일기를 연출을 해?ㅋㅋㅋ

 나는 취미로 글을 썼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내 일기를 썼다. 친구들이 내 편지를 받아보고 마음이 움직였다는 말은 해줬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뿐 잘 쓴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건 고등학교 담임선생님 때문이었다. 국어 선생님인 담임 선생님은 과제로 낸 내 글을 보고 작가를 해도 되겠다며 칭찬을 해주셨고 진지하게 진로를 생각해보라며 여러 길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문예창작과를 진학했고 작가가 됐다.




 어릴 때부터 글을 읽던 내가 유일하게 읽지 않는 글이 제품 설명서인데 공교롭게도 오빠가 읽는 글은 설명서가 거의 유일하다. 나는 뭔가 새 제품을 샀는데 작동이 안 되거나 잘 모르겠으면 오빠한테 물어본다. 내가 물어보면 오빠는 ‘네가 찾아봐’라고 하거나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최근에는 ‘제발 설명서 좀 읽으라’면서 농담처럼 타박을 한다.

 이게 내가 책을 너무 안 읽는 오빠한테 ‘제발 책 좀 읽으라고, 왜 이렇게 글을 안 읽는 거냐’고 타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거에 대한 복수다.


 오늘도 화장실이 좀 어두워져서 미리 전구를 사두려고 전구 사진을 보내서 이게 맞느냐고 물었더니

“거기 보면 다 나와있잖아. 책만 보지 말고 설명서 좀 읽어. 넌 왜 그렇게 글을 안 읽냐?” 고 되지도 않는 타박을 한다.

 그 때문에 우린 전화로 너나 읽으라며 한 참을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가끔 학부모들이

 “우리 애가 자기감정 표현을 잘 못해요.” 하거나

 “우리 애는 수학도 잘 못하고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해요.” 하며 고민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내 생각에 이건 타고나는 거 같다. 우리처럼.

 그런데 모두 다 감성적이거나 모두 다 너무 이성적이면 너무 혼란스럽거나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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