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단어를 어디서 봤을까?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하는 중병의 환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들렸던 단어로 기억한다. 이 단어를 우리 집에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구십에 가까운 나이에도 지하철 택배일을 하시며 연세 대비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했던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서 제일 불편한 곳이라고 짚으신 곳은
병원에 입원하게 된 원인인 심장도 아니고, 엉덩이. 바로 욕창이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 나도 그냥 엉덩이에 뾰루지가 난 것으로 생각했다. 뾰루지가 커진게 종기가 되거나 욕창이 되는 건 줄은 몰랐지.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생겨서 참 성가시게 하는 작은 붉은 뿔 악마. 그 놈이 욕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사실 욕창이란 게 노인에게서 주로 발생하는 이유는 거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한자세로 오래 있다보니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는 부분에서 주로 발생한다고 한다. 물론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이고. 그러다 보니 자주 생기는 부위가 거의 정해져 있는 듯 하다. 등이나 엉덩이 등 주로 한 자세로 오래 눌릴 수 있는 부위이다. 우리 할아버지의 엉덩이에도 솟아난 그것이 뾰루지가 아니라 욕창이었던 것이다.
“환자분 혹시 지금 제~일 불편하신 곳이 어디에요?” 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물음에 나와 할아버지는 엉덩이에 난 뾰루지를 별거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어랏? 간호사선생님은 뾰루지를 보자마자 바로 주치의선생님을 부르신다고 하셨다. “이거 일단 주치의선생님께 말씀드리긴 할건데 이거 저희 욕창관리 전문가가 있어서 그분이 보셔야 될 거 같기도 하거든요? 일단 잠깐 그대로 계셔보세요”
욕창..이라고? 우리 할아버지 이제 입원한지 이틀정도 밖에 안됬는데? 너무 생소한 단어였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로 치료가 진행되었다. 알고보니 이 병원에는 욕창관리팀이라는 전문가 팀이 있었고 욕창이 생긴 환자들을 각 병상마다 돌아다니면서 맞는 치료를 해주시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뾰루지는 한 개가 아니라서 욕창관리팀의 치료 뿐 아니라 외과적 치료도 필요했다. 바로 외과 협진을 통해 이에 맞는 치료도 진행되었다.
매번 할아버지를 성가시게 하다가도 그러려니 했던 뽀드락지는 아픔과 불편을 주다가도 사라지기가 반복이라 신경쓰지 않았었는데 욕창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받는 이런 치료는 정말이지 어색했다.
지금 당장 우리 앞에 닥쳐오는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으레 작게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들에는 신경을 거의 안쓰게 된다. 뽀드락지가 욕창이 되듯이 그 존재감이 예기치 못하게 커지는 순간 당황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 같다.
몇 달전 내 고양이도 그러했다. 자기 털정리를 꽤나 꼼꼼하게 하던 녀석이라 유난히 자주 토했던 녀석. 결국 그걸 주 증상으로 밥을 먹지 않더니 열흘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너 떠나버렸다. 크게 신경쓰지 않던 행동이 결국 장례식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아 가족들 모두가 슬프면서도 얼떨떨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모 관공서에서 일할 때에 나는 전화 끝, 대화 끝에 인사말 한마디 등을 붙이기를 노력했었다. 큰 의미 없이 했던 단순한 행동이었다. 그 행동은 알게 모르게 나의 태도를 변화시켰고, 내가 응대했던 주민의 칭찬신고로 인해 후에 기관장 표창을 받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일로 인해 할아버지 침대옆에 있는 나날동안 계속해서 작은 것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 혹시나 할아버지 건강과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이 또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진 않은지 꼼꼼하게 생각에 생각을 더 채워나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상황의 모든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간병생활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주변 모든 일들이 우리도 모르게 점점 커져 당황스러운 일들이 종종 있겠지만, 그 방향이 ‘기적’ 또는 ‘행운’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방향으로 커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