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가 넘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나. 원래 기독교를 싫어했던 안티 크리스천이었는데 내가 신앙을 가지다니. 놀랄 노자다. 그래서 주변에서도 내 변화에 많이 놀랄세라 주변에 많이 알리진 않았는데 할아버지한테는 끝내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은 모르신다. 일요일마다 아침에 나가길래 일하러 간다고 생각하시더라. 사실 이야기 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그와 나는 다니는 교회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더 독실해졌다는 우리 할아버지는 매주 교회에 다니시는 집사님이시다.
덕분에 모시고 사는 우리 집에서는 특히 엄마가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더더욱이 안티 크리스천이 되어버렸다. 워낙에 말 수가 적은 할아버지, 옛날 사람이라서 인지, 성격 탓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표현이 츤데레가 아니라 정말 오해할 만큼 쌀쌀맞을 때도 많으시다.
거기다 내가 20대 초에 S그룹에 합격하던 날부터, 집안에 대소사에 대해 좋은 일은 다 하나님 덕택이요, 안 좋은 일은 다 우리 가족이 잘못한 거라고 그 어떤 설명도 없이 단언해 버리셨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남편 없이 홀로 두 자녀를 키우면서 할아버지까지 모시며 아득바득 살아왔는데 이게 다 엄마 본인이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거고 잘못한 건 다 본인 탓이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을 것이다. 나라도 서운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테지. 항상 그런 식이시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크리스천들에게 중요한 절기가 다가온다. 성탄절. 나 또한 교회에 다닌 지 이제 2년인데 신앙이고 뭐고 그냥 크리스마스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교회에 있으면 사람들과 더불어 행사를 같이 하면서 더 행복해짐을 느낀다. 할아버지도 그러신 걸까? 성탄절을 앞두고 성경공부하는 모임에서 특별무대를 준비하신다고 하셨다. 당연히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와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내일모레 90인데 댄스 무대를 한다고?'
그 무대가 어떤 무대인지 더 알아야 했다. 말려야 하는 무대면 말려야지. 자세히 캐묻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제일 넓은 방을 쓰시는 할아버지지만, 그 방에 온 가족이 다 몰려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니,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참 좁은 공간이 되어버린다.
어라, 말릴 틈도 없이 이미 연습도 진행이 된 모양이었다. 세상에나 연습영상까지 있네? 다 같은 연배의 할아버님들이 준비하는 무대라면, 난이도가 높지 않고 길이가 짧지 않을까 했다. 웬걸.. 할아버지만 80대였고 그 위로는 60대 할아버지, 50대 아저씨 각각 한 분씩을 비롯해 나머지 거의 40대의 여자집사님들로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할아버지는 연신 괜찮다고 말씀하신다. ‘아이 나 뭐 하는 것도 별로 없어. 거 봐봐 뒤에 가서 팔만 이렇게 하고 좀 있다가 내려오면 돼’ 영상을 보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더라. 난이도가 높아 보이진 않지만, 연세가 있으신 터라 걱정을 내려놓을 순 없었다.
할아버지가 구해달라고 하신 선글라스가 어제 쿠팡에서 배달이 왔다. 귀여운 성탄절 분위기 나는 모자도 있냐고 물으시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하얀 방울이 달린 털모자도 드렸다. 그거.. 쓰시면 귀엽긴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