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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아리 Apr 05. 2024

02. 그게 시작이었을까?

할아버지와 쓰리K장녀 간병의 시작부터

   평소에 할아버지와 난 그렇게 많은 교류가 있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모시고 살고 있고 같이 산 세월이 거의 20년은 족히 넘었지만, 각자 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하고, 나란 손녀나, 할아버지나 두 사람 모두 말주변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기도 하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상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떻게 변한 건지 면밀히 살펴볼 기회는 없었다. 할아버지는 본인 건강에 항상 자부심이 넘치던 분. 실제로 89세의 나이에 비해서 하루 1만 보이상을 걸으시고 지하철 택배일도 계속하고 계셨으니 정말 정정하셨다. 



  길눈도 손녀인 나보다 훨씬 좋으시다. 치매 기운도 아직 없으시고 보청기도 필요가 없으시다. 지병이라고는 당뇨와 고혈압뿐. 이건 솔직히 50대인 엄마도 있다. 

지팡이도 없이 배낭을 메고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택배일을 하시면서 평일을 보내시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다녀오신다. 혼자서. 



그러니 항상 정정한 줄로만 알았지 뭐. 조금이라도 걱정스러워서 잔소리를 엄마와 내가 늘어놓는 날이면 대답을 안 하시거나 역정을 내시는 날도 있었다. 더 면밀히 살펴보는 건 서로에게 여러 가지로 무리였다.

언제부턴가 할아버지가 부쩍 쇠약해지셨다. 같이 밖을 다니는 건 한 달에 한번 될까 말까 하니, 이미 알았을 때는 병세가 꽤 진행된 이후였을 것인데 미처 몰랐다. 그저 나이 탓으로만 생각했다. 본인도 자꾸만 괜찮다고 하시니 원..



성인 걸음으로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약10분남짓. 23년 여름 그날 할아버지는 그걸 한 번에 걷지 못하셨다. 정말 너무 놀랐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벤치가 보이자마자 앉아서 숨을 헐떡이셨다. 이렇게나 쇠약해지셨구나..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쇠약해지신 걸까? 새삼스레 코로나가 또 미워졌다.



그날의 가족외출 코스는 외식과 카페 그리고 다시 귀가였다. 몆 번을 헐떡임과 솟아올라오는 기침을 옆에서 봐야 했는지 모르겠다. 같이 있던 엄마는 노인성 기침이라며 저 기침은 그냥 노화로 인한 거라 약도 없고 그냥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흐음..어른들의 등쌀에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옆에서 걱정될 만큼 기침을 계속하신다. 어라? 기침소리가 좀 멎은 거 같기도? 아니다 다를까 방을 슬쩍 들여다보니 용각산을 털어넣으셨다. 아이고.. 약을 안 먹어도 기침을 안 해야 될 텐데. 어떻게 된 게 이 집에서는 나만 걱정하는 것 같다.



지하철 택배일을 하루에 2건 정도는 거뜬히 해내던 할아버지가 아무래도 힘들어 보이셔서 이내 엄마가 말리기 시작했다. 젊었을 적 천상 직장인이시던 할아버지는 출근할 곳이 없어지는 게 힘들어서 그런 건지, 일 자체를 좋아하시는 건지, 쉬는 것은 극구 반대하셨다. 결국 하루에 한건만 하기로 두 분이서 극적 화해를 본 것 같다. 나는 그저 옆에서 마음속으로 ‘하루에 한 건도 격일로 하셔야 되지 않나.. 무리되실 것 같은데..’ 그렇지만 말은 하지 못하고 그저 묵묵히 또 밀린 집안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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