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다른 누군가 본다면 나는 죽었다는 거겠지....」
눈을 떴을 때 노트북 화면 마우스 커서 깜빡임에 깜 한 글씨로 적힌 글자를 본 것이 오늘 나에 하루의 첫 장면이다. 저녁 어스름 즈음 눈이 떠졌다. 주황 빛깔 방안은 몽한정신을 더 몽롱하게 만들었다. 주위에는 약봉지와 약들이 널부러 져있다. 구역질이 나온다. 화장실로 뛰쳐가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뛰어 가려했지만 세상이 뒤집어지듯 팽그르하고 돌았다. 그리고 방바닥에 고꾸라졌다. 더 이상 화장실 갈 힘이 없어 그 자리에서 헉구역질을 해댔다. 먹은 것이 없는 것인지 마른침 만이 바닥을 끈적인다. 축느러진 나의 몸을 일으킬 힘도, 의지도 없이 방바닥을 쳐다보며 두 눈만 껌벅껌벅거리고 있을 때 눈앞에서 벌레 한 마리가 스물스물 기어간다. ‘저 벌레는 무엇 때문에 저리 바삐 걸어가는 걸까?’ ‘어떤 급한일이 있기에 저리도 열심히 걸어가는 걸까?’ ‘저렇게 조그마하고, 작디작은 발로 뭘 그리도 열심히 걸어가는 걸까?’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벌레가 날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멀리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동안 해는 지고 주위는 온통 캄캄해졌다. 눈앞이 보이지 않게 되자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시끄러운 경적소리 사람들 소리 그리고 밖에서 수많은 소리들이 제각각 어울리듯, 안 어울리듯 조용한 내 방에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멍하게 있던 정신은 차츰 무언가를 가늠할 정도가 되었고 다시 한번 주위를 돌아본다. 분명 오랫동안 살아온 내방인데 왜인지 낯설게 만 느껴진다. 시계 소리가 들린다. 째깍째깍 거리는 소리가 귀청을 울리고 머리까지 울린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당장이라도 시계를 부셔 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지만 시계가 보이지 않는다. 시계 소리가 다시금 울린다. 시계가 울리는 방향으로 돌아보았지만 시계가 보이지 않는다. 시계의 정체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집에 시계를 나둔 기억이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거짓말처럼 시계 소리가 사라졌다. 귀가 편안해졌다. 어두운 방안이 차츰 적응이 되어 간다. 지금은 몇 시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다 TV 리모컨이 손에 잡혔다. 어두워 잘 안 보이는 눈으로 전원 버튼을 찾아 누른다. 특유의 소리를 내며 TV 화면이 밝아진다. 애국가가 들린다. 잠시 멍하게 노래를 들으며 TV를 쳐다본다. 화면의 불빛이 꼭 날 끌어당기는 듯하다. 불나방이 반짝이는 불빛을 찾는 이유가 이런 이유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상하리 만큼 별 볼 일 없는 TV불빛이 나에 마음을 안도하게 만든다. 수 분을 멍하니 있다. 화면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채널을 돌린다. 철 지난 공포영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에게 첫 고백을 하고 처음으로 영화 데이트를 약속했었다. 친구 녀석이 여자 친구와 영화를 볼 때는 공포영화를 봐야 한다며 그 이유에 대해 너무나도 그럴듯하게 설명했었다. 과학적 근거와 논리적 근거를 이야기하면서, 그 녀석의 말을 믿은 나는 그날 볼 수 있는 유일한 공포영화를 예매했다. 그녀는 저녁을 먹는 내내 공포영화에 대해 욕을 해댔다. 그녀의 욕을 들으며 설레이는 긴장감이 많이 풀렸고 그날 우리는 많은 것들을 나누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며 재미없는 영화에도 눈이 떠나질 않는다. 친구 녀석의 휘황찬란한 언변이 아직 귓가에 맴돈다. 그 녀석 말처럼 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마워해 할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출근시간이 다 되어 같다. 출근이라는 것이 내 삶을 연장하는 이유인 듯하다. 어떠한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배고프면 밥 먹고, 자고 싶으면 자는 그런 것과 비슷하다. 출근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출근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그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흐느적거리는 몸을 겨우겨우 끌 고당 기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문밖을 나가려니 쌀쌀한 기운이 맴돈다. 그래도 참을만해서 다른 외투를 챙겨 입지 않고 출근하기로 한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층수를 봐라본다. 엘리베이터 층수가 바뀌는 모습이 이상하리 만큼 이상하게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거울이 사방에 붙어 있는 안으로 들어간다. 거울에 네모난 종이들이 여러 장 붙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내용을 확인해보니 역세권을 위한 싸인을 받고 있었다. 100명 정도 싸인 할 수 있게 인쇄되었지만 인쇄된 공간이 부족해 종이 사이사이 빽빽하게 이름을 채워 넣어져 있었다. 종이와 종이가 붙어있는 공간 사이 거울에 내 눈동자를 보았다. 순간 다른 이가 나를 쳐다보는 듯해 순간 놀라고 말았다. 뒤를 돌아보니 나 혼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파트 밖으로 나가자마자 바람이 불어왔다. 밤새 내린 비 때문인지 축축한 냄새가, 바람이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이 냄새를 좋아한다. 다른 것들이 씻겨진 냄새 흙향기, 풀 비린내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봐라 보고 있으면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거다 그런 감정은 사치다 라는 생각이 든다.
비가 오는 어느 날 그녀와 이불속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향을 맡다. “비 오는 날이 좋지 않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누구와 어디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라고 말하고는 잠시 밖을 물끄러미 보다 내 질문에 생각이 잊혀질 때쯤 그녀가 다시 말했다. “나도 비 오늘 날이 좋아”라고.
집 문 밖을 나와 통근 버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서로 다른 곳에 있다. 같은 한 곳으로 모인다는 게 이상하게 신기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도 이런 감정이 들었었다. 전쟁영화나, 로봇을 만드는 그런 유의 영화가 생각이 났었다. 일 할 사람을 구하고 일할 곳을 정하는 일이 체계적이고 분헙화가 잘된 어느 공장과 같은 모습에 놀랐었다. 우리들을 인솔하는 사람들은 한치의 흐트럼 없이 많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모습이 이질적이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모래 알갱이가 된듯한 기분이었었다. 출근길이면 기억인지, 감정인지 모를 그때 그것들이 날 작게 만든다. 다시금 마음을 고쳐 먹고 버스길에 오른다. 통근버스는 정해진 곳에서 우리를 무사히 내려주었고 하나, 둘 버스에 내린다. 우리도 정해진 곳으로 순서대로 움직인다. 첫 번째로 식당이다. 다른 생각할 필요도 없이 발걸음을 움직인다. 정신이 빠져 있어도 몸은 알아서 수백 번도 더 한 행동을 알아서 수행한다. 집에서 밥을 챙겨 먹는 편은 아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음식들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 나오면 나는 일을 해야 하고 그래서 음식이 내 몸에 들어가야 한다. 내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내 몸은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몸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지키려 노력한다. 식당은 조용한 듯 바삐 움직인다. 모두들 같은 음식이다.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건 얼마큼을 퍼갈지를 정하는 것뿐이다. 맛있는 음식들은 퍼담을 수 있는 도구들을 반대로 놔두는 듯하다. 퍼야 하는 음식은 집게를 올려두고, 집어야 하는 음식들은 스푼을 올려 두는 듯하다. 맛있는 음식을 욕심내어 퍼담으려 해도 그럴 수 없게 한다. 시간을 내어 퍼담을 수 있지만 내 옆에서 그만 퍼담으라고 채근하듯이 바싹 오면 어쩔 수 없이 내 욕심 것 담지 못하고 식탁 위로 가야 한다. 나는 상관없는데 내 몸은 괜찮으려나 모르겠다. 식당 위에 앉아 따듯한 국물 한 목음을 마시고 밥한 숟갈 떠먹고 반찬들을 한입식 먹고 주위를 둘러본다.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사람들의 얼굴들을 표정들을 몰래 지켜보는 걸 좋아한다. 몰래몰래 다른 곳을 보면서 집중하고 있는 누군가를 유심히 관찰한다. 그 사람의 눈빛 겉모습 밥 먹는 취향 하루 일상에 풍겨오는 그런 것들을 관찰한다. 관찰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다가도 가끔 주위를 둘러본다. 몇 번은 눈이 마주친 적도 있다. 처음에는 당황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한다. 그 이후 그 사람을 봐서는 안된다. 한 번은 우연일지 모르지만 두 번은 그 사람이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니깐 그래서 자주 밥 먹는 자리는 매번 바꿔야 한다. 사람들은 불규칙하게 움직이다가도 가끔은 아무렇지 않은 곳에서 규칙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비슷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거나 같은 자리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에서 습관 같은 게 나오는 듯했다.
그녀는 항상 창가 자리에 앉았다. 대부분 사람들이 창가 자리를 원하니 그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러다 한날 친구 녀석과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나는 어김없이 창문 쪽 의자에 앉으려 했는데 친구 녀석이 싫다며 창문에서 떨어진 곳에 앉았다. 나는 친구 녀석에게 왜 창문 쪽이 싫은지 물었고 친구 녀석이 오히려 내게 질문은 던져왔다. 왜 굳이 창문 쪽을 앉으려 하냐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지고 싶지 않은 나는 보통의 사람들은 다 창문 쪽을 선호하지 않느냐며 말했고 친구 녀석이 네가 먼데 보통의 기준을 정하냐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다른 이유 때문에 만난 거였는데 자리 토론을 몇 시간을 해댔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와 카페 창문 쪽 의자에 앉아 친구 녀석과 싸운 일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말하는 나를 보고는 오랫동안 낄낄 되며 웃어 됐다. 그렇게 한참을 웃으며 그런 걸로 싸울 수도 있냐며 놀려 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놀림에 챙피하고 부끄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창문 밖 지나가는 행인들과 건물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이 많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아무런 생각 없이 입안에 음식을 넣는 일에 만 신경 쓰는 걸까?.
어릴 적 국민에서 초등으로 바뀔 때쯤에 나 외에 사람들은 인형인 줄 알았다. 내가 아니 다른 사람들의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나만이 유일한 사람인 줄 알았다. 아마 이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놀고, 밥 먹었을 것이다. 그러다 얼마 후 학교에서 실내화 주머니에서 신을 꺼내 갈아 신고 있는데 친구 녀석이 대뜸 나에게 물었다 “너 인형, 아니지?” 나는 깜짝 놀라 둥그렇게 뜬 놀란 눈으로 그 녀석을 쳐다보았고 그런 놀란 나의 눈을 본 친구 녀석도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학교 안 복도로 뛰어 같다. 나는 그 녀석의 뒷모습을 봐라보고는 처음으로 가슴에서 느끼지 못했던 기분, 감정, 느낌 이런 것들이 뒤범벅되어 느껴졌다. 그때 당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아니 아마 지금도 모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이유로 난 많이 변했다. 겉으로 들어 나는 그런 것들이 아닌 내면의 무언가가 많이 변했다. 하지만 변했다는 것 만이 알 수 있고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변했다는 그 어떤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유일하게 내가 의식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불안해 보였다. 친구 녀석의 질문 하나에 나는 사람들이 불안해 보였다.
모든 회사 식당들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잘되어 있다. 음식 그런 것이 아니라 잘 작동 되게 만들어진 듯하다. 멀리 떨어진 시선으로 식당 풍경을 봐라보면 주유소와 닮아 있는 듯하다. 식당 문을 나와 조금 걸어 나가면 화장실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참으로 특이한 공간이다. 사람들의 많은 더러운 것들을 비우는 장소라는 게 똥처럼 외면적인 것들은 주기적으로 신호를 보내면 사람들이 화장실이든 무엇이든 그곳에 비우지만 내면의 더러움을 어디에 비워야 할지 모르겠다. 화장실처럼 외면의 더러움이 쌓이면 비울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만의 방법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술, 담배 가 될 수 있고 운동일 수도 있다. 자기의 나름의 방식을 찾은 사람들은 그나마 세상이 정해진 룰에 살아갈 수 있지만 더러는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침에 화장실에는 똥을 싸기 위해 사람들은 줄을 길더라도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내면의 화장실이 생긴다며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줄을 서서 기다려서 라도 속 안에 것을 비울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깨끗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텐데. 화장실을 나와 컨테이너 박스로 향한다. 가는 길에 사람들은 무채색 표정으로 걸어간다. 다른 이들이 그들의 표정을 봤다면 분명 이렇게 물었을 거다. ‘일이 힘들어요?, 일이 고되요?’ 내 주위 사람들이 항상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 나는 일이 힘들지 않다. 피곤할 수는 있어도 힘든 건 아니다. 만약 누군가 무채색의 표정으로 걸음을 한다면 이렇게 물어 봐줬으면 한다.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이런 말이 아니더라도 건전한 자극이 되는 말을 해주는 게 그들에게는 좋은듯하다. 그들의 얼굴에도 다른 어떤 색이 띌 수 있을지 모른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같은 모양의 캐비닛이 수십 개가 있다. 캐비닛이 쌓인 사이, 사이를 수없이 지나다닌 곳이라 아무 의식 없이 생각 없이 내 것을 찾아간다. 캐비닛 문 중간에는 내 이름 세 글자가 쓰여져있고 그 주위에는 여러 명의 이름들이 바래져있다. 다른 누군가가 이 캐비닛을 수없이 사용했으리라는 짐작을 하는 흔적들이다. 그 흔적들을 가끔 멍하게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이 캐비닛을 스쳐가는 한 사람이겠구나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바래진 내 이름을 보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겠지.
군대 훈련을 나 같을 때 삼인 일개 조로 산 어딘가에 매복조로 숨어 있었던 적이 있다. 나는 선, 후임과 같은 조였는데 우리는 산속 작은 터널 속에 숨어 있었다. 선임은 터널 안을 한번 둘러보고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우리에게 보라고 말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우리보다 몇 년이나 일찍 군생활을 했었던 선임들의 흔적이었다. 춥다는 둥, 덥다는 둥,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이것저것 적고 자신들의 이름과 자신들 만이 알 수 있는 어떤 글귀들도 남겨져있다. 선임은 벽에다 낙서를 해놓고 갔다면서 욕을 하면서도 작은 조약돌로 벽에다 배고프다면서 벽을 긁으며 한 자, 한 자 적어 나간다. 그리고 끝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그런 선임과 벽에 쓰여진 이름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을 했다. ‘왜 이름을 벽에다 써놓는 걸까?’
캐비닛 문을 열어본다. 늘 변함없이 어제저녁에 넣어둔 작업복이 그대로 있다. 작업복을 꺼내고 지문인식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다. 가끔 지문 인식기를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어렸을 적 SF영화에서 우주정거장 그 어디쯤 사용했던 기계가 어른이 되어 출, 퇴근 확인을 받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그 어떤 것이 현실에 서 더 치열하게 현실적으로 나타날 때 어떨 땐 그것이 마땅히 당현한 것일지라도 이질감으로 불편하게 느껴진다. 컨테이너 박스에 나와 작업장으로 걸어간다. 서로가 다른 방향에서 작업자들이 같은 장소로 걸어간다. 걸어가는 사람들과 서로 마주 보고 약속시간, 장소를 정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마주친다. 일하는 작업장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가는 길에 흡연구역이 있다. 흡연구역에서 수십 명의 입에서 한꺼번에 뿜어내는 연기는 멀리서 보면 공장 굴뚝에서 나는 연기만큼 찐하고 선명하게 하늘에 흐트러진다. 흡연구역을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수십 명의 사람들은 박스 모양의 줄을 선다. 엘리베이터가 기계소리를 내며 내려온다. 주위에 바람이 분다. 처음 엘리베이터에 탄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작업장으로 길안내를 해주었던 나의 사수는 오묘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함이 있는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일상에 진짜 아무것도 아닌 그런 것 들에서 사수는 오묘한 사람이다. 천천희 걷지만 누구보다 빨리 걸었고 욕심부려 악을 쓰는 사람보다. 실속을 챙기는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데도 화를 내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은 욕심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는 화도 내고 비겁하게 행동하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하지만 사수는 그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수는 신이 라도 된 것처럼 행동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인간답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유한한 것에 직시하는 사람이었다. 사수가 내 옆에 줄을 섰다. 나는 그를 보며 눈인사를 한다. 사수도 나의 눈인사에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받아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박스 모양으로 줄을 선 행렬은 빈 박스에 물건을 채우듯 엘리베이터 안으로 뚜벅뚜벅 들어간다. 빽빽히 찬 안은 문이 서서히 닫히고 덜컹 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계음을 내며 위로 서서히 올라간다. 좁은 창밖으로 햇빛이 들어와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간다. 순간 찌릿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잠깐 떨려왔다 멈췄다. 덜컹하는 소리가 들리고 안전에 유의하라는 방송과 함께 문이 열린다. 사람들은 하나둘 밖으로 나와 각자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나 또한 복잡한 작업장을 이리저리 들어가 동료들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한다. 동료 한 명이 인스던트 커피를 한잔 태워준다. 나는 뒤따라 오던 사수에게 방금 받은 커피를 전해주고는 동료에게 눈빛으로 한잔을 더 부탁한다. 동료는 귀찮다고 말하지만 웃으며 커피를 태워준다. 동료들과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만을 쳐다보며 따듯한 커피로 몸을 녹인다. 종이컵 안이 빈 잔이 될쯤 말하기를 좋아하는 동료 녀석이 들어도 그만 안 들어 도 그만인 쓸데없는 이야기와 농담을 쉼 없이 떠들어 된다. 다른 동료들은 떠들어대는 동료의 영양가 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이야기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게 하는 듯하다. 그렇게 수 분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우리 팀의 반장이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다. 우리는 반장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 난다. 반장은 회의 내용을 공지해주고 동료 각각에게 작업을 전달해주고 동료들에게 할 말 있는지 물어본다. 동료들은 눈빛으로 없다고 반장에게 말한다. 반장은 안전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를 하고 자리를 떠난다. 동료들은 각자가 맡은 작업에 맞는 장비들를 챙겨 각자가 일할 구역으로 떠난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점심밥을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동료들은 다시 한번 같은 장소에 모인다. 동료들은 오전 중에 작업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서로에게 조언을 해준다. 그러는 와중에 반장이 오고 점심밥을 먹으러 간다. 나는 사수의 뒤를 따른다. 일을 처음 할 때부터 사수와 밥을 먹는 것이 습관인지 버릇인지 모를 것이 돼버려서 항상 사수 뒤를 따른다. 사수는 늘 변함없이 천천히 걷는다. 나는 느리지만 빠른 그의 뒤를 따른다. 일할 때는 안보이던 사람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식당으로 모인다. 길게 늘어진 몇 개의 줄들 처음 이곳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밥을 먹는 것이 하루 종일 걸리 꺼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긴 줄이 있다 하더라도 금방 사라진다. 신기할 따름이다. 일찍 와 줄 앞에서 밥을 먹어도 늦게 와 줄 뒤쪽에서 밥을 먹어도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난 사수 등 뒤에 붙어 줄을 선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오늘따라 느리다는 생각이 들면 점심메뉴 중에 맛있는 것이 있다는 증거이다. 각자가 음식을 떠먹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이나 맛이 없어 보이거나 생소한 음식이라도 사람들이 많이 떠 가는 것은 서로가 한 줌이라도 더 뜨기 위해 오랜 시간을 잡아먹는다. 그리고 식당의 직원들은 쉽사리 맛있는 음식을 내주지 않기 위해 도구를 집어야 할 것은 퍼는 것으로 퍼야 할 것은 집는 도구로 놔두어 둔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안 되는 도구로 악다구니를 써가며 어떻게든 더 가져가기 위해 퍼 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많이 퍼담아 가리라 생각 하지만 사수가 음식을 담는 모습을 보면 그 마음이 사라진다. 사수는 늘 자신이 먹어야 할 양을 아는 사람인듯했다. 국물이 들어가는 음식 빼고는 남긴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국물을 남기는 건 자신이 뜬것이 아니라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떠주시는 걸 가져가기 때문 일거라 생각한다. 만약 국 또한 자신이 담아서 먹었더라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먹었을 거다. 나는 이런 사수의 모습을 좋아했다. 그와 있으면 모든 것이 모자랄 것이 없는 세상인 듯했다. 그와의 점심시간에 재미난 말도 그렇다고 내게 도움이 되는 말도 해주지 않지만 그와 같이 걷는 것 많으로도 나는 백 마디 말을 듣는 것보다.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점심을 먹은 동료들과 나는 작업장 본부에 모여 인스던트 커피를 태워 먹는다. 커피를 한잔식 먹으면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왜 커피를 먹고 있는지 모를 때가 있다. 입사 첫날부터 사수가 커피를 건네주며 마시라고 주었었다. 일이 고되고 힘드니 커피라도 마셔두라는 의미라 생각했다.
그녀와 데이트 때마다 카페에 갔었다. 그녀와 편하게 앉아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은 그때 만해도 카페가 유일했다. 몇 번은 이것저것 다른 커피를 주문했었다. 그러다 커피는 카페에 않아 있을 수 있는 티켓 같은 생각이 든 후로 그녀와 나는 카페에서 가장 싼 커피 만을 주문했었다. 그녀와 나는 싸구려 커피 두 잔으로 많은 행복을 누렸다. 내가 화나는 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는 빨 때를 만년필 삼아 커피는 잉크 삼아 작은 티슈 위에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글귀를 적고는 나에게 주었다. 티슈를 밨았을때는 이미 글이 번져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되었지만 나는 그 티슈의 냄새를 맡으며 진한 커피 향기에 행복해졌었다.
동료들과 마시는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혹시나 하는 하는 마음에 커피가 담겨져있는 종이컵에다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 보지만 내가 생각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내가 일하는 이 장소에 어울리는 냄새가 났었다.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에 점심시간은 지나가고 반장이 우리에게 온다. 아침 조회 때와 마찬가지로 작업을 정해주고 형식적인 말들이 이어지고 안전을 유념하자는 말과 함께 각자가 뿔뿔이 흩어진다. 내가 일하는 작업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쉬는 시간이면 그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 짧은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점심메뉴에 대한 평가, 인생에 대한 철학, 가족 이야기, 자신의 고민 별별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서 온 사람은 한 명도 볼 수 없다. 사업하다 망하고, 단기간 빨리 돈이 필요해서, 아무 생각 없이 돈 벌기 위해, 등등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많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곳에서 일해야지 하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상에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해 본 적이 있다. 정작 나조차도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 인생을 걸고 싶을 정도로 다른 무언가도 없다. 하루를 이득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은 채 살아간다. 하루가 생기니 그 하루를 보낼 뿐이다. 그런 나를 보는 가족들은 공부를 해서 다른 것을 알아보라 한다.
어느 날 형제 중 한 명은 나에게 물었다 “너가 가장하고 싶은 일이 뭐냐”라고 그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소설을 쓰고 싶다”라고 그런 말을 들은 나의 형제는 정말이지 의외라는 표정을 잠시 짓고는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길을 설명하며 가장 옳은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줬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은 평소에 생각해서 말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 좋차도 즉흥 적으로 말하 것이다. 그렇기에 소설에 대한 나의 철학도 애정도 없었다. 그러나 형제의 말을 들으니 화가 났었다. 하고 싶은 일을 물으면서 세속적인 언어들로 나에게 충고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끔 다른 사람과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분명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인 취급을 받는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이런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누군가는 나의 말을 자격지심으로 취급해버렸고 나는 그 이후로 이런 나에 생각들을 타인에게 말하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내자신을 낮게 생각할까 두려워서, 말하지 않으면 적어도 누군가 나를 어떡해 평가하든 자기만의 세계에서 나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곤 속으로 세상에 대한 욕을 하곤 했다. 이 세상은 범죄자들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일부러 범죄자를 만들기 위해 시스템을 만드는 것 같다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해 범죄자들을 만드는 것 같다며 마음속에서는 히틀러의 연설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허한 외침은 그져 내 가슴 안에서만 떠들 뿐이다. 자신들에게 주워지는 상황에서 부조리와 불평등함을 당하는 쪽이 아닌 가하는 쪽이면 기꺼이 누리려 하기에 누가 선이고, 악이라는 것은 없다 무능력한 자기 자신 많이 악한 존재가 돼버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 착한 행동을 하다 마음의 상처를 입을 때면 나는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차라리 내가 상처를 입으며 하하호호하고 넘어 같을 텐데 그녀의 상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화를 내면서 왜 바보처럼 행동하냐고 화를 냈고 그녀는 내 눈을 보면서 울먹이며 “내가 바보 같고 멍청한 거 알아 그래도 상양 하게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나는 안아주었다. 그녀는 나의 가슴 품에서 크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내뱉었다. 그러곤 먼가 안도한 듯 내 엉덩이를 꼬집으며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그런 그녀의 웃음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작업자들과의 대화는 가끔 나를 균열 가게 만들 때도 있다. 타인의 삶의 일부분을 듣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가끔은 동화 속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천천히 하지만 성실하고 충실하게 시간이 흘러간다. 작업장에서 두 시간여만 있으면 집에 간다. 그러면서 열두 시간 후에는 다시 여기 있을 거라는 생각해본다. 그리고 일 년 뒤에도, 오 년 뒤에도 십 년 뒤에도 나는 여기 있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죽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안 하는 나, 자신이 웃겨 피식하고 웃게 된다. 작업시간이 끝나고 늘, 그래 왔듯 모였던 장소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반장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 시간에는 커피는 필요하지 않다. 그냥 시원한 물을 벌컥여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나의 동료들은 술 한 모금이 간절한 것 같다. 각자들 집에 들어가서 먹을 술과 안주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나 또한 술이 땡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끊으 라는 말을 듣고부터는 참아 보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술보다는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그리고 따듯하게 안고 자고 싶은 마음도 반장이 온다. 반장은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는 늘 하는 말로 시작해서 집에 가서 푹 쉬고 내일 아무 일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보자는 말로 끝을 맺고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퇴근을 한다. 동료들과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 컨테이너 박스에 아무 말 없이 걸어간다. 작업복을 구깃구깃 집어넣고 캐비닛 문을 닫는다. 퇴근 도장을 찍기 위해 지문인식기 앞에 사람들은 줄을 섰다. 각자의 지문인식기에 같다 될 손가락에 입김 한 번식을 불어넣는다. 깨끗한 손은 인식을 잘하지만 일하고 나온 손가락은 더러워서 인지 지문 인식이 잘 안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처음 일할 때 나이 든 작업자들이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새끼손가락으로 지문 인식을 하는 것을 보고 왜 새끼손가락으로 지문을 등록한 걸까 생각했지만 일하면서 알게 됐다. 작업을 하다 보면은 자주 쓰는 손가락은 지문이 마모되어 달아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작업자들은 자신의 일하는 습관이나 자신의 일의 특성에 따라 자주 쓰지 않는 손가락 지문을 등록하였다. 작업자들에게 풍기는 냄새 그리고 지문 인식을 하는 손가락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더러는 알아맞힐 수 있었다. 생활에서 묻어나는 그 어떤 것들이 자신이 누 군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라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은 나에게 풍기는 향기 나의 말투 내가 모르는 습관을 알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건 죽을 때까지 모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야지만 내가 모르는 나를 알 수 있으니깐 말이다. 진실되게 나를 말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녀는 나에게 달콤한 냄새가 난다 했고 친구 녀석은 똥냄새가 난다고 했고 형제들은 쓰레기 냄새가 난다 하고 동료들은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한다. 난 어떤 냄새가 나는 걸까?. 아침 출근버스에서 내린 자리에 가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줄 뒤에 서서 스마트 폰을 꺼내어 만지작거린다. 그러기를 몇 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내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줄을 만들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줄을 보면서 줄 속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와 똑같이 집에 돌아가 따듯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은 걸까 아님 동료들처럼 한잔 하고 싶은 걸까 수백 명의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밥을 먹고 비슷한 일들을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똑같지 않아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미술 전시관에 간 적이 있다. 그녀는 자주 이런 곳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장소, 공간에 와본 적이 없는 나는 이런 곳과 맞지 않다 생각 하지만 그녀가 좋아하고 그녀가 자주 가는 곳이기에 좋아했다. 전시회에서 더러는 이런 걸 왜 그렸지 왜 만들었지 하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는 그냥 신기한 것쯤으로 취급하고는 넘어 같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의 표정을 알아채고는 내게 물었다. “너 방금 저 작품이 이상하다고 느꼈지!” “왜 저런 작품을 만드나 그런 생각도 했을 거고!” 그녀는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 물어 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응”이라고 대답을 했고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곤 대부분이 그런 것들 투성이라는 말도 덛붙였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아무 말 없이 관찰하듯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을 쳐다보는 나의 눈빛을 한번 의식하고 말했다. “그런데 왜 이런데 오는 건지 궁금하지!” 나는 대답 없이 그녀를 쳐다보기만 하였고 그녀는 나와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입을 땠다. “살다 보면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을 때가 있잖아,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걸까 싶기도 하는 그런 순간 말이야 그럴 때면 어떡해서든 그 사람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거나 아님 그게 안될 때는 그 사람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증명하려 노력한단 말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을 더듬듯 이야기를 이어 같다.
“어느 날 혼자 전시회에 혼자 가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전시회에 아무도 없는 거야 혼자 덩그러니 서서 작품들에게 둘러 싸인 거지 그런데 작품들이 내게 말을 하는 거야 그렇다고 날 겁주려고 그런 것들이 아닌 그냥 이상한 말들로 조잘조잘 되는 거야 다른 나라 언어의 말 같기도 하고 외계어 같기도 한 언어들로 중얼중얼 거리는 거야 묘한 기분이였어 그러다 사람이 전시장에 들어오자마자 작품들이 말을 그만하는 거야 신기한 경험이였어 그때 이후로 별 쓰잘 때기 없어 보이는 작품이라도 일단은 물끄럼이 쳐다보게 되었어 그리고 작품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들도 읽게 되고 말야 그러다 문득 느껴지더라 세상에는 참 많은 언어들이 있구나 같은 언어로 말을 한다 해도 각자가 자기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거 말야.” 그녀는 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 같다. “그 경험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었어 그러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나에 마음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에 배타적인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어 너도 조만간 나와 비슷한 걸 느낄지도 모를꺼야” 말하곤 어떤 작품을 가리키며 그녀는 말했다 “저건 내 발로 만들어도 되겠어 눈감고 만들었나 봐.”
통근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문이 열리고 줄지어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버스에 탑승한다. 나도 지친 몸을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는다. 버스는 출발하고 한 번의 덜컹거림 없이 매끄럽게 집에 도착했다. 집에 오자마자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는다. 그리고 몸에 걸친 모든 것을 벋어 던진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맥주 한 캔을 집어 마시려 했지만 이네 그만두고 물을 꺼내어 한잔 마신다. 그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식탁의자에 앉아 멍하니 어딘가 시선을 두고 생각에 빠진다. 긴장이 풀렸는지 온몸이 나른하고 노곤해 온다.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켜 방안의 모든 불을 끄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 밤하늘을 쳐다본다. 잠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 20층 아래 바닥을 쳐다본다. 저 아래 떨어지면 어떤 느낌일까 많이 아플까 아님 오히려 안 아플까 아님 그런 고통도 느낄 수 있는 순간도 없이 죽어 버릴까 만약 떨어지면 나는 어떻게 될까 뼈가 부서져 버리고 머리가 깨지고 많은 피를 흘리겠지 내가 죽고 나면 누가 나를 먼저 발견하게 될까 만약 떨어진다면 뭐 좀 걸치고 떨어져 주는 게 아무래도 들 부끄러우 려나 그런 생각을 꼬리를 물고 물다 욕조에 물이 넘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베란다 창문을 닫고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욕조가 있는 곳으로 간다. 뿌연 증기에 기분이 몽해진다. 욕조안 물속에 천천히 몸을 누인다. 나른한 몸이 따듯함에 더 나른해져 쳐진다. 천천히 얼굴이 물안 속으로 잠긴다 이대로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을 용기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말이 웃기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런 엉뚱한 말을 하는 그녀를 쳐다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이다. “응 그렇지 않느냐고?” 그녀의 물음에 나는 “응”이라고 대답했고 그녀는 입술을 내밀며 “성이 없어” 하고는 하늘을 본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가끔 이곳이 죽어 있는 세상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 죽어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가지 않을까 하고 말야. 근데, 근데, 근데 말이야 지금은 살기 싫어 죽고 싶어 졌어.” 나는 그녀를 보며 “왜”라고 물었다. 그녀는 평소에 볼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나의 눈을 보고는 그건 가르쳐 줄 수 없다 말하곤 하늘을 봐라 봤다.
천천히 물속에서 얼굴을 꺼내 욕조 밖으로 나와 크게 숨을 내뱉고 다시 크게 숨을 들여 마셨다. 두 손으로 욕조를 집고 몸을 일으켜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거실에 나와 식탁 위에 얹혀져있는 약봉지 하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집어 들어 싱크 데에 가져가 약봉지를 뜯어 안에든 가루들을 물에 흘려보낸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 앉아 창문 밖 어두워진 하늘을 물끄러미 보다, 바닥에 놓여진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른다. 노트북에 화면이 뜨고 「이 파일을 다른 누군가 본다면 나는 죽었다는 거겠지....」라는 말에 마우스 커서가 움직인다. Backspace 눌러 글귀를 지우고 다시 글을 적어 넣는다. 「그래도 다시한번.」 아래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고 Day 365 숫자를 지우고 Day 366일로 바꾸어 쓰고는 기절하듯이 바닥에 쓰러진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