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by J팔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길이면 주말에 만 장사를 하는 가계가 나온다, 이곳을 지날 때면 어묵 탕 냄새와 찌짐 기름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온다 투박하게 천막을 쳐 놓고 장사하는 이곳은 술이라고는 막걸리뿐이 보이지 않는다, 막걸리를 마시는 등산객을 보자면 막걸리를 한잔 하고 싶어 지면서 여러 가지 옛일들을 생각나게 한다. 어릴 적 외갓집에 놀러 가면 식사 때마다 반주로 막걸리 한 사발을 비우시는 외할아버지를 보곤 했었다 밥반찬은 보잘것없어도 막걸리 한 사발이면 밥을 뚝딱 해치우시고는 했었다 막걸리가 요술 물약처럼 느껴져서 마셔보고 싶었다. 조금 더 커서 외갓집에 아버지와 놀러 갔었는데 이모와 이모부 집이 빛 때문에 넘어 같다고 했다 집 뒤에는 조그마한 과수원이 있고 옆에는 조그마한 개울물이 흐르는 집이었었다, 방학이면 이모 집에서 놀며 사촌들과 매미도 잡고 또랑에서 가재도 잡고 과수원을 거닐며 사과도 따먹고 복숭아도 따먹은 기억이 생생한 집이었다 막연하게 나는 커서 내가 결혼하고 집을 사서 산다면 이런 집에서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그런 집이 빛으로 넘어가 버렸단다. 근데도 이모와 이모부는 밝으셨다 이모가 아버지한테 재작년에 담근 장독 김치가 그 집에 묻혀있다며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시장에 들러 수육과 막걸리 몇 통을 사 가지고 이모 집이 있는 곳으로 같다 아직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조금은 다르다면 신경 쓰지 않은 과일들은 다 떨어져 썩어가고 벌레들이 파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모 집 바깥에 조그마한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그걸 보니 외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내가 어렸을 때 귀신이 무서워 똥 싸러 갈 때 할아버지에게 화장실 문 앞에 있어 달라고 졸랐었다, 그럴 때면 취기가 살짝 오른 할아버지는 나에게 뭐가 무섭냐며 틱틱대면서도 항상 문 앞에 있어 주시곤 했었다. 이모는 집 옆에 조그마한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텃밭을 가꾸어 나부다 먼지모를 풀들과 여러 가지 농사기구가 비닐하우스 안에 널 부러져 있었다, 텃밭 구석에 비닐을 거둬 내니 장독 뚜껑이 보였다 뚜껑을 열어 보니 서리가 살짝 낀 김치들이 보였다 신기하다 냉장고도 아닌데 서리 가 설여 있다 그리 추운 날씨도 아닌데 말이다. 이모는 커다란 사발 그릇에 김치 한 포기를 꺼내어 먹기 좋게 쭉쭉 찢어 사발 그릇 옆에 척척 걸쳐 놓았다. 내게 찢은 김치를 손가락으로 돌돌 말아 한입 먹여 주었다 아삭아삭 하고 상큼한 맛이었다 수육이랑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이모부와 이모, 아버지는 막걸리를 한 사발식 하고는 김치를 먹으며 별거 없다는 표정 모습을 하고는 실없는 농담들을 하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저 막걸리 맛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나는 아버지한테 “막걸리가 맛있느냐며” 물었다 아버지는 웃으며 “한번 맛보겠냐며” 막걸리를 따라 주었다 나는 설렘 반, 신기함 반으로 한 목음 마셨는데 맛이 이상했다 꿉꿉하기도 하고 탄산음료처럼 톡톡 쏘기도 하고 쉰 밥맛이 나기도 하고 그때 기억으로는 무척이나 요상한 맛 이였다 그런 맛이 표정으로도 비춰졌나, 부다 그런 내 표정을 보더니 어른들은 깔깔깔 웃더니 “와 맛이 없느냐며” “더 묵어 볼래,” 라며 말하였지만 더 이상 나는 먹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이해가 안 됐다 아버지도 이모부도 이모도 머가 맛있어서 저리 먹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조금 더 커서 술을 먹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처음으로 친구들과 술집에 들어가 술을 먹었다 친구 중에 유독 막걸리를 좋아하는 녀석이 있었다. 왜 막걸리 가 맛있느냐고 물어보니 “그냥 다른 술은 쓰기만 한데 막걸리는 달다”고 했다 내 기억의 “막걸리는 요상한 맛이었는데”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니 친구가 “너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서 술맛을 제대로 모르는 거라고” 말했다 어처구니없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어른이되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에 들어가니 내가 조금 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렸을 때 군인들을 봤을 때 엄청 큰 존재의 어른 이였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군대에는 대민지원이라는 게 있었다, 뉴스에서 홍수나 이런 자연재해에 군대들을 동원하는 모습을 많이 보곤 했지만 농사일을 돕는지는 전혀 몰랐었다 대민지원이 나쁜 거냐 그렇지 않다 농사 대민지원은 가고 싶어도 선택받은 자만이 갈 수 있었다, 농사일은 힘들어도 주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농사일을 끝내고 나면 맛있는 음식과 막걸리 한잔 식은 꼭 주셨다 이걸 위해서 정말 열심히도 일했었다 그리고 대민지원만큼은 선임들도 그렇게 군기를 잡지 않아서 선임 후임이 아닌 군대 밖에서 만난 친한 사람처럼 대해줬었다 대민지원의 꽃은 나는 추곡수매였다 추곡수매가 되면 근처 부대 있는 사람들이 다 모이고 그 지역에 쌀들이 한 곳으로 오는데 그 쌀들을 창고에다 쌓는 일이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쌀들을 본 적이 없었었다. 이 많은 쌀들을 창고로 옮기려 생각하면 까마득하지만 일 끝나고 주민들이 마시라며 막걸리를 말통으로 쌓아둔 것을 보면 힘이 났었다. 선임 들은 쌀 포대를 후임들이 잘들 수 있게 등에 얹어주고 후임들은 한 포대씩 등에 짊어지고 창고에다 쌓아둔다 일을 할 때는 등이 뻐근하고 힘들지만 일을 마치고 막걸리 한잔을 위해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일이 끝나고 주민 분들이 길다랗게 펼쳐놓은 책상 위에 비닐을 깔아 두고 그 위에 김치와 수육을 투박하게 턱, 턱 얹혀 놓으셨다 우리는 그것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한잔씩 먹었다 그리고 술기가 은근한 상태로 이 열 종대로 행군하며 부대로 복귀할 때 군가가 아닌 사가를 부르며 복기했었다 군대라는 것이 묘한 매력이 있었다. 어떠한 부조리와 어떠한 낭만이 엉켜있는 곳이었다 상병에서 병장이 될 때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상하게 슬프지가 안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외할아버지 빈소에 군복 차림으로 절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들 배고프다며 육개장과 수육을 내오셨다 그리고 사촌들이 술 한잔 하라며 소주를 따라 주었는데 나는 소주 대신 막걸 리가 먹고 싶어 졌다 그리고 눈시울이 불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역을 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막노동을 했었다 군대에 갓 전역한 나는 머든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고 군대보다 힘들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사회의 일은 그 나름의 고단함이 있었다, 특수부대 군인 출신이라도 막노동을 하면 힘들어할 꺼라 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막노동을 할 때 고단함을 있기 위해 막걸리를 한잔씩 걸치고 일한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아저씨에게 막걸리에 대해 말하니 무슨 쌍팔년도 이야기하냐며 웃으셨다 개인이 하는 작은 공사는 몰라도 이렇게 큰 회사가 낀 작업장은 술을 먹으면 아예 일을 안 주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아저씨가 일을 마치고 막걸리를 한잔 사주셨다 고단함이 사라지고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 잡지에서 우리나라 사람 열에 다섯은 직장에서 짝을 만날 일이 많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도 우리나라 사람이었나 보다 회사에서 만난 여자 친구는 막걸리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왜 좋아하냐고 물으니 “다른 술은 어떤지 모르지만 막걸리는 제때 먹지 안 으면 상하는 게 마음에 든다고”했다 내가 “와인도 그렇다고” 하니깐 “와인도 빨리 상하냐며” 놀라 했지만 그래도 “ 막걸리는 서민 적이 라며 막걸리 가 최고” 다했다 나는 “ 우리나라에서 와인이 비싸지 다른 나라는 막걸리보다 와인이 더 싸다”하니 “ 그건 그 나라 서민 술이라고” 화를 냈었다 여자 친구 와는 편의점에서 파는 김치 한 봉지와 막걸리 한통이면 밤이 끝나도록 계속 웃고 떠들 수 있었다 하지만 때가 지나면 상해버리는 막걸리처럼 우리의 연애도 상해 버렸다 그리고 어렸을 적 이때쯤이면 세상을 다 알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 한만큼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세상을 모르고 더욱더 나를 모르겠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고 모를 것 같다가도 알 것 같은 일들의 반복이었다 상심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울고 웃고 그러다 보니 시간은 흘러 같다 나도 어느새 버릇인지 아님 맛있어서 먹는지 모르겠지 만 집에서 밥을 먹을 때면 반주로 와인 잔에 막걸리 한 사발을 한다, 그리고 취한 것인지 아닌지 모를 그런 기분으로 또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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