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by J팔

여기서 오래 일하다 보면 아니 처음 이곳에 일할 때부터 받는 질문이 있다

‘언제 까지 일할 거예요?’

이 질문이 지긋지긋해서 싫지만 어느새 나 또한 습관적으로 질문하게 된다. 이래저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자주 들어왔다 나가기 때문일 거다. 그래서... 그냥 그래서 의례적으로 물어본다. 조금은 오래 있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이다.

‘언제 까지 일할 꺼에요.’ 라는 질문에 보통은 잘 모르겠다와....이라 대답하지만 그래도 몇몇은 기억에 남는 대답을 한다. 지금도 생각나는 대답이 있었다. 오랜만에 젊은 나이에 한 아이가 온 적이 있었다. 모든 것들이 무난한 아이였다. 직장동료라 하면 가장 좋은 사람은 무난한 사람이 아닐까 하다. 오랜만에 괜찮은 동료를 만나 오래 일했으며 하는 맘으로 물었다.

“넌 언제까지 일할 거야?”

대답은 하지 않고 질문에 웃기만 했다. 몇몇의 반응은 이러하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아이의 대부분은 금방 그만두었다. 내심 그랬지만 어쩔 수 있나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가 말했다.

“사람들이 대부분 오래 일하려고 오는 건 아니잖아요. 세월 따라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거죠”

틀린 말이 전혀 없는 말이었다. 저 말이 내내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다. 정작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아쉬워했더랬다. 조금은 미워하는 마음도 있었다. 수명째는 미워하고 수십 명째는 아쉬워하고 수백쯤 될 때쯤에는 무덤덤해졌다. 컨베어벨트를 지나가는 하나에 무언가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이곳에는 한국사람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한 명씩 들어왔다. 그 또한 젊은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오다. 그곳에서 퇴직하고 노동에 중독되어 심심해서 외로워서 월급이라는 마약을 끊지 못해 찾아온다. 회사에서는 굳이 젊은 사람들만 고집하는 이유를 몰랐다. 단순하게 기력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기력이 아니라 그들 마음에는 자신들을 삶을 지탱하기 위해 굳은살이 너무 배겨 그 굳은살을 사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어떤 경우는 좋은 쪽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상황과 결과는 좋은 쪽으로 직결되지 못한다. 그래서 회사는 젊은 사람을 원한다. 굳은살이 그나마 없는 젊은 사람을 말이다. 굳은살 때문에 화가 났지만 어쩐지 나에 부모들이 생각이나 화보다는...

처음 이곳에 일할 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하대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동등한 위치가 되어 친구처럼 지냈고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 외국인들이 한 자리씩 꿰차고부터는 한국사람이 하대 당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장이 한국인이고 그리고 대부분이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도 한국인이라 한국인이 했던 것처럼 막 하대 하지는 않지만 묘한 그런 것이 있었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했던가 새옹지마 업보 인과응보라는 이런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듯했다. 외국인 친구들이 천대받는 상황일 때 회사에서 유일무이하게 당영한 것을 당연하게 대했다. 그런 네 모습에 몇몇 한국인 동료들이 못마땅하기도 했었다. 시간이 지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득세하게 되고 지난날 업보가 도움이 되었다. 외국인들이 다른 한국인들의 말은 귓등으로 듣다가도 내가 하는 말은 적어도 귀로는 들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외국인들과에 대화 창구로 나를 불렀다. 그렇게 된 계기가 한번 있었다. 외국인과 한국인의 월급이 달랐다. 그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일을 했었다. 그러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줄고 자신들이 없으면 일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파업을 했다. 사측은 어이가 없었다 찍소리 없이 일했던 존재들이 갑자기 소리를 높이니 말이다.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수십 년 동안 생각했던 무언가 때문지 인지부조화를 일으켰는지 패착을 두고 말았다. 외국인들은 모두들 집단적으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일할곳은 많았다. 그곳을 알려줄 그리고 도움을 줄 커뮤니티도 있었다. 당장에 불편은 할 수 있어도 불행하기는 싫었던 그들은 거리 킬 게 없었다. 그제 서야 사측은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안한 것보다. 더욱 파격적인 제안을 해보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믿어주지 않았다.

평사원 중에 서도 평사원이었던 나를 어떤 말로 들었는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불러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설득해 줄 것을 부탁 같은 요구를 했다. 황당했지만 윗사람이 까라하니 까기는 하지만 내심 의구심이 있어다. ‘내가 말해봐야 듣겠어’ 일이 잘못되어도 불이익 같은 건 없는 것 같아 회사가 원하는 말 전달하자는 맘으로 가볍게 일을 맡았다. 근데 외국인이 하는 말 들어주고 사측의 내용전달해 준 것뿐이 없는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이 술술 풀려버렸다. 이렇게 잘 해결할걸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만한 게 합의가 이루어져 외국인들은 회사에 복귀를 하고 그 덕에 난 회사에서 조그마한 인정을 받고 승진을 하고 보너스도 받았다. 한국인 노동자도 좋아라 했다. 처음에는 나가면 나가는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가버리니 일이 잘 돌아가지 않았다. 노동에 강도가 배가 되었다 야간은 물론 잔업 철야 주말이 없는 특근까지 기일을 맞추기 위해 있는 인원으로 사람을 끊임없이 돌렸다. 물론 하는 만큼 벌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여야지였다. 모던타임스에 찰리채플린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시대에 맞는 인식에 변화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외국인들은 좀 더 좋은 처우받았다. 한국인노동자들이 피 아닌 피를 봤다. 자신이 한 업보가 아닌 지난날 한국인이 외국인에게 했던 대우에 대한 대가를 자신들이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해피한 결과를 받은 건 아마 나일 거다. 멍하니 하늘을 보다. 사과가 뚝하고 떨어져 버렸다. 아무것도 안 한 게 오히려 행운으로 돌아왔다 사람일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일이라는 것을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일을 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여러 가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환기를 시킨다. 짧은 단잠을 잔다던다 누군과와 통화한다던가 무언가를 보거나 잠시 걷거나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보거나 무엇을 마시거나 한다. 가장 많은 사람이 하는 건 무엇보다 담배를 태우는 일이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뜬금없지만 담배값을 올리는 이유로 금연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건 개소리라 생각한다. 담배를 태우는 것은 아니지만 담배를 태우는 사람을 따라 흡연장으로 자주 같었다. 난 사람들과 시시 껄렁한 농담을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으로 환기를 시키는 사람들은 농담이 방해되지만 담배 태우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처음 입사 했을 때는 한국인들을 자주 따라 같었다. 시간이 지나 선임들 사수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회사를 관두거나 자신과는 어울릴 일이 거의 없는 직책으로 가버렸다. 결국 한국인들 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해오던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졌다. 대부분 한국인 노동자는 오랫동안 해오지 않아 희로애락에 정이 없었고 나이차이가 나기도 했다. 세대 차이 하나 많으로도 타국이라는 거리보다 더 거리감이 느껴져 꺼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한국인들과 어떡해서든 어울려 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외국인과 한번 안 어울리기 시작하니 당연하게 되었다. 한국인도 한국인끼리 잘 어울 리니 그것으로 됐었다.

외국인들은 담배를 자신들의 개인 담배케이스에 넣어 다녔다. 케이스에서 꺼내는 담배모양도 투박했다. 궁금해 물었다. 무슨 담배냐고 자신들은 한국 담배가 자신들에 입맛에 안 맞아 고향에서 가지고 온 담배를 직접 말아 핀다고 했다. 담배를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담배가 자신들에 입맛에 맞지 않고 자신들에 고향에서 가지고 온 거라는 말에 어쩐지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 외국인 동료에게 한 개비만 맛볼 수 없냐고 물었다. 그 말에 외국인동료들이 요상한 웃음으로 씨익하고 웃어 됐다. 난 이웃음을 안다 고등학생 때 담배를 태우지 않던 친구가 담배를 태우던 친구에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물으면 담배를 태우던 친구는 자신이 느꼈던 느낌을 어쩌고 저쩌고 설명한다. 쾌락적이게 말이다. 그리고 담배를 태우지 않던 친구는 자신도 한 대만 피우자며 한 개비를었을 때 담배를 태우던 친구가 씨익하고 웃었다. 외국인들의 웃음도 그거와 같을 거라 생각했다.

난 외국인 동료들이 담배를 한 개비 줄주 알았다. 웃기만 할 뿐 주지 않았다. 말은 담배가 독해서 줄 수 없다고 했고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말하며 줄 수 없다고 이것저것 이야기 하며 주지 않았다. 섭섭하기도 하면서도 내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휴일전날 퇴근시간쯤 담배를 피우고 난 담배를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데 외국인 친구 한 명이 한 개비 남은 담배케이스를 주며 꼭 집에서 혼자 안전할 때 피우라고 말했다. 속으로 무슨 마약을 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약이었다면 외국인 애들이 성실하게 매일매일 일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담배를 처음 태우면 핑하는 느낌이 있다니 이건 정도가 심하겠거니 했다. 내심 기대를 하며 품 안에 꼭 껴안고 집으로 가져 같다.

월요일 새벽 두 시쯤 눈을 떴다. 금요일 저녁쯤에 샤워를 하고 영화를 보며 소주를 반주삼아 족발을 먹다. 담배가 생각이나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냈다. 태우려 해도 담배를 태운적이 없으니 집에 라이터라는 게 없었다. 주방 가스레인지 불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짧게 짧게 태우다. 용기 아닌 용기를 내 깊게 가슴속 깊은 곳까지 연기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순간 담뱃불 때문에 큰일 날 것 같아 싱크대에 담배를 버리고 천천히 바닦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뜨니 어두 었다. 금요일 저녁이거나 새벽이겠거니 하고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보는데 두시였다. 근데 날짜를 보니 이틀이 지나있었다. 순간 이런 장난이 있나 거짓말 같았다. 몇 번이나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기분이 어쩐지 묘했다. 한 번도 느껴지지 않는 감정이 느껴졌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를 그런 것이 느껴졌다. 나쁘지는 않았다. 우월감 같은 게 생겨나기도 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외국인들을 찾아 같다. 외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오는 나에 표정을 보더니 묘한 표정으로 미소를 보였다. 난 미소를 짓고 있는 외국인에게 물었다. 이 담배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내 물음에 자신들끼리 숙덕여 됐다. 그 숙덕임 속에 익숙한 말을 들었다. ‘카오스 슈퍼마켓’ 난 외국인들에게 ‘카오스 슈퍼마켓’이라 말하며 지역명을 말해주며 이곳 맞냐고 물었다. 외국인들은 조금 놀란 듯 흥미로운 눈빛으로 봤다. 내 고향이 그곳이라고 말하니 외국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배를 사고 싶다면 이번주 주말에 자신과 함께 그곳에 같이 가자고 했다. 자신들이 담배를 사는 곳은 아는 사람에 소개가 아니면 구입할 수 없는 곳이라며 자신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 난 담배에 가격을 물었다. 그러자 외국인이 싼 편은 아니지만 그리 비싼 것도 아니라며 이번에는 얼굴을 터주고 자신들이 산 담배를 조금 나누어 줄 테니 다음에 직접 와서 구입해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일주일 내내 삼 년 만에 가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보다. 담배 한 개비에 더욱 마음에 뺏겼다 빨리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몇 년 만에 주말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회사일이 편해지고부터는 주말을 기다린 적이 없는데 말이다. 빨리 주말이 왔으면 좋겠다.

이전 08화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