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집 안에도 보일러를 틀어 놓지 않으면 북풍한설로 풍찬노숙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이런 날일수록 이불 품 안에 있는 것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하루가 잘 돌아간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건 역시 러닝만 한 개 없다. 막상 나가기가 힘들고 초반에 뛸 때가 조금 괴롭지만 중반부터 몸에 온기가 돌고부터는 뛸수록 개운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디찬 공기가 폐 속을 돌아 입으로 뿜어질 때 나는 입김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하지만 처음에 말했듯이 나가기가 힘들다. 막상 나가도 뛰지 말까라는 생각을 수십 번을 한다. 왜 이런 짓을 하지,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뛰고 나서 느꼈던 상쾌함을 잊지 못해 꾸역꾸역 뛰게 만든다.
뛰는 것만큼 중요한 건 귓속에 울리는 노래 선택이다. 어떤 노래를 들으며 뛰어야지 지루하지 않으려나. 예전에는 그냥 뛰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도무지 귀에 이어폰을 꼽고 무언가를 듣지 않고 뛴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저질 체력으로 뛸 때 생각해 둔 골인 지점까지 가기 위해서는 파이팅이 있는 노래를 듣지 않으면 골인 지점까지 가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아는 사람 중 자신은 아침마다 명언 한 마디를 찾아 그것을 읽고 머리와 마음속에 되새김질하며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그러면 하루 동안 육체적으로나 마음적으로나 어떤 고난이 왔을 때 명언을 종교인이 읊어대는 그 어떤 글처럼 줄줄 외면 버티고 버텨 하루를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달리기하면서 노래를 듣는다.
해 뜰 때와 해 질 때를 보면 어떤 감정이 드는가?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잘 차려진 음식을 먹는 느낌이다. 라는 이 글을 읽으면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공허’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자신만의 단어를 가지고 있으니 나의 공허는 이게 공허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위에 글처럼 긍정적인 단어로 버무려진 무언가를 찾기 위해 하는 행동들이 잘 차려진 요리를 먹는 기분이 든다. 요즘 들어 그런 기분이 든다.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만으로 모든 것이 힘이 빠진다. 예전에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왜 해야 하는지 모른 채 하고 있다. 그러니 몸에서 열이 나지 않는다. 차가워지기 일쑤였다. 좋은 점은 딱 하나 있다. 모든 것들을 ‘유’하게 바라보고 행동할 수 있다.
가끔은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있으면 부럽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부러운 이유는 저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안타까운 이유는 그 열정이 정말 자신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이다.
빨간 약을 먹은 것인지 파란 약을 먹은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눈물이라도 나면 감정의 정체를 알겠는데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챗GPT에게 물어보면 알려주려나. 넌 알겠니, ‘경’, 이 마음의 정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