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팔

햇살이 밝게 비치우는 날이 달갑지 않을 때가 있다. 내 인생이 내 삶이 그닥 밝지 않다고 생각할 때는 더더욱 말이다. 밝은 모습으로 밝게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며 거리를 노니는 사람들을 괜시리 시기하는 내 모습을 보기 싫어서 말이다.


우중충한 방구석에서 테잎이 다 늘어질 정도로 본 옛 영화를 또다시 보며 소주를 홀짝이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미워지지 않으려면 날씨가 우중충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내 자신이 또다시 너무나도 싫어진다.


늙는다는 것이 늙어 갈수록 두려워진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도장을 찍어 버리는 느낌이 드니 말이다.


뛰고 싶어도 뛰지 않아야 할 변명만 수천 수만 가지가 떠오른다. 뛰지 않은 날에는 결국 자기 연민에 빠져 하루를 허우적되다 허비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뛰지 않는다.


악몽에 허우적되더라도 애써 꿈속으로 빠져야 할 시간에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얇은 햇살이 주름으로 보잘것없게 된 두 눈덩이에 비추었던 어느 날 괴로움에 잠이 깨어났다. 괴로움에 허우적되기 싫어 어그적거리는 걸음으로 냉장고 문을 열어 행복의 나라로 보내주는 물을 찾으려 할 때 우연히 거울 속 내 모습이 비추었다.


제법 자라버린 머리카락처럼 인간이라는 동물은 의지를 가진 것 같아도 대부분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는 것이 많다.


‘머리나 자를까’


보통은 어떤 마음을 먹으면 그 행동의 결과가 머리에 그려지기에 이내 귀찮아지면서 마음먹었던 행동을 하지 않는데 비몽사몽이었던 정신이었던 게 도움이 되었나 좀비가처럼 아무 의지도 생각도 없이 어기적거리며 며칠 동안 씻지 않은 몸을 겨우겨우 씻겨내고 수염도 깎아냈다. 물을 맞아 그런 것인지 욕실 안에 비추어진 모습이 제법 사람처럼 변해서인지 정신이 돌아왔다. 이때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분명 밖에 나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볼 테니 말이다.


몇 달 만에 이발을 하러 나간다. 주말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랜만에 생경한 모습에 걸음에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미용실에 들어서니 개 한 마리가 날 반겨준다. 몇 달 전에도 있었던 개 한 마리 이상하리만큼 나에게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퍽이나 이 개가 마음에 든다. 속으로 그런 맘을 가지고 있지만 애써 무덤덤하게 행동한다. 주인의 안내에 따라 미용실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주인장은 스몰토크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영양가가 없는 그런 이야기, 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인 그런 이야기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늘 손님과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나에게도 몇 번인가 가벼운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어눌한 목소리로 돌아오는 답변이 대하기가 어려웠는지 어느 순간부터 날씨 이야기 이외에는 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나 또한 그것이 좋았다. 난 우중충한 날씨가 어울리는 사람이니 말이다. 우중충한 날에는 말이 필요 없이 소주 한 잔이면 되니 말이다.


이발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머리카락이 얼마만큼 무게가 나갔겠냐마는 부스스했던 머리카락을 짊어지고 있을 때보다 확연히 머리가 가벼웠다.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지날 때마다 바람이 이토록 시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어떤 것에도 취해 있지 않고 있으리라 결심한다.


취해 있는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지만 뒤끝으로 돌아오는 것은 감당하지 못할 무게가 아닌 무게로 심장을 누르고 있는 느낌을 붙들고 살고 있어야 하니 말이다. 비록 맨몸으로 칼날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어도 거기서 오는 서늘한 기분은 어쩐지 쾌락과 닮아 있다. 두려움과 공포만 마주할 수 있는 담대함만 있다면 그 기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은 이 순간만큼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발을 했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토요일 연재
이전 15화고통에 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