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끔 누군가에게 미련하게 보일만큼 걷습니다. 팝송을 들으며 걷습니다. 귓가에 이국적인 풍경이 펼쳐지면 보이는 풍경 또한 그렇습니다. 어떤 노래를 들으며 걷느냐에 따라 세계 어디든 갑니다. 가끔은 우주 또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어디든 가기도 합니다.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이 걷는 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매번 같은 길을 걸어도 매번 다른 그림이 내 눈 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미묘하게 다르게 걸으면 보여지는 풍경은 절대 미묘하지 않습니다. 조그마하게 틀어진 각도로 걸으면 하루 전과는 다른 모습 일주일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 내 눈앞에 보입니다.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보였던 것들이 또 다르게도 보입니다. 매번 같은 길인데 매번 다른 예술작품들이 저에게 보입니다.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매번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행위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도 불현듯 내 안에 감정들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떨 때는 외롭게도 어떨 때는 웅장하게도 어떨 때는 기쁘게도 어떨 때는 슬프게도 어떨 때는 화나게도 어떨 때는 먹먹하게도 이렇게 이렇게 오만가지 감정들을 느끼게 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걷는 길 위에서 저는 희로애락을 수십수백을 느낍니다. 감정이라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고 걷는 길 위에서 알아갑니다. 내 마음속의 영혼을 걷는 길 위에서 느낍니다.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디서 어디까지 걷기로 머릿속으로 지도를 그려봅니다. 머릿속 지도는 오래 걷겠네 생각하지만 막상 걷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금방 도착합니다. 그렇다고 시간은 짧은 시간이 걸린 게 아닙니다. 마음의 시간이 짧게 도착했을 뿐입니다. 어디서 어디까지 빨리 도착해야지 하고 걸었다면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걷는 행위를 했다면 아마 걷는 길이 불 바닥을 걷는 것과 같았을 겁니다. 걸을 때 언제 도착하지를 생각하며 걷지 않습니다. 사실 무엇을 생각하며 걷는지 저자신도 잘 모릅니다. 걸으면서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몽상하기를 좋아합니다.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하며 걸어야지 하고 결심하더라도 뜻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원하는 상상을 몽상을 하다가도 어딘가로 빠지기도 어딘가로 날으기도 하니깐요. 빠지는 와중의 나는, 날으는 와중에 나는 내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나지만 내가 아닌 나입니다. 여기로 돌아왔을 때의 생각은 꿈과도 같습니다. 자고 일어나 꿈을 꿔서 어떤 감정 이 느껴지지만 기억은 절대 안나는 것과 같습니다. 좋았던 상상도 몽상들이 걷는 나로 돌아왔을 때 깃털처럼 날아 가버릴 때 잡고 싶지만 잡을 수 없을 때 가끔은 허탈하기도 슬프기도 합니다.
가끔은 어떤 것 일지 모를 것을 부여잡을까 아님 날으면 날으는 데로 나둘까 그것 하나로 한참을 생각하면 걷기도 합니다. 그런 고집스러운 생각 하나로 시간은 금방 갑니다.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육체의 무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걷다 보면 저도 모르는 순간에 허벅지에 커다란 돌덩어리를 얹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억 하고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조금씩 무거워집니다. 나중에는 질질 끌려가듯 걸어갈 때도 있습니다.
이런 무게의 걸음이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 하루 최소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인간이 아니구나 하는 기분이 느껴집니다.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작동시키기는 했구나 내가 먹은 무언가를 사용하긴 했구나 하는 감정이 좋습니다.
집에 왔을 때 땀으로 젖은 몸을 씻어내고 뽀송뽀송해진 몸을 방바닥 위에 뉘었을 때 아직까지도
다리에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집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난 이렇게 누울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천천히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막상 걸으면 생각보다 빨리 도착합니다. 생각보다 무언가를 해냅니다. 느린듯한지만 느지 않는 것이 걷는 것입니다.
그래서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무리 초조해도 아무리 불안해도 걸을 수만 있다면 분명 도착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걷자 라는 말이 좋습니다.
걷자, 걷자, 걷자 오늘도 걷자 내일도 걷자 일년뒤에도 십년뒤에도 걸을 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