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정지

by J팔

어느 날이었나...... 시간이 사라지니 뭐든 것들의 기억이 가물가물 해진다. 아니 기억을 못 한다기보다는 정렬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돼버린 세상이 아녔을 때도 어제 일이 그저께 일 같고

그저께 일이 오늘 일 같았는데 이제는 더더욱 정리가 되지 않는다. 반복적인 행동을 할수록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얼 했는지 기억이 종이 한 장 같아진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어제 왼쪽 행동을 하면 오늘은 오른쪽 행동을 한다. 그리고 내일에는 지그재그로 행동을 한다. 이렇게라도 하루하루를 다르게 살려 노력한다. 지금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행동을 하는 건 변해버린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살아 있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이다. 지금 어떤 세상이냐면......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일시정지당했다!? 자다 일어 나보니 평소와 다를 거 없다 생각한 하루 무언가 느껴졌다. 변했다는 것을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심 그런 생각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어쩌면 내가 원해왔던 세상으로 바뀌진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들었었다. 하지만 그런건 바라지도 말았어야 했다.

뜬금없는 세상을 살면서 가장 황당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세상이 일시정지되어 버렸다.

나만이 이 세상에서 움직인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어느 시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시간이었을 그 순간에 사진이 되고 그림이 되어 버렸다. 사진이고 그림이 되어버린 공간에서 나는 몇 년째 살아가고 있다. 3년까지인가 날짜 정도는 카운터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욱 하는 감정이 나를 휘감았고 카운터 하던 모든 것들을 부숴버렸다. 그때 이후로 나에게는 흐르는 것들이 없어져버렸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 다면 세상과 같은 존재였다. 더 이상 무얼 해야 할지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희미해지고 옅어졌다. 죽고 싶다는 갈망조차도 살고자 하는 희망이 살아질 때 같이 살아졌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진정한 잉여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일시정지당한 세상에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특별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단지 숨 쉬면서 움직일 수 있는 것 만으로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나 혼자 있는 이 세상에 조차도 왜 살아야 하는지를 증명해야만 했다. 나 자신에게 말이다.

숨 쉴 수 있는 것만으로는 살 수가 없었다. 왜 이 세상이 멈춰버리고 나 같은 무쓸모인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걸까? 다른 누군가 똑똑하고 건강하고 최소한 아무것도 없더라도 나처럼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존재가 아닌 진취적인 성격의 사람이 남아야 할 세상에 왜 나 같은 존재가 남은 걸까? 보통의 세상에 있을 때조차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은 나에게 이런 상황에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류) (일종의 오류) (무심결에 한 장난에 어쩌다 생긴 일) 웃긴 건 이런 일이 아니었으면 한다는 나의 바람이다. 이런 고통을 주는 어떠한 의도가 있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희망 하지 않으면서 정작 이런 것들만 머릿속에 스스로 세뇌시킨다.

왜 일시정지당한 세상에 나 같은 무능력한 인간이 살아남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같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먹을 것을 먹지 않고 있구나. 이렇게 변하고 한 번도 먹을 것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어떠한 생리현상도 격지 않았다. 왜 이제야 자각했는지 모르겠다. 마트에 가고 싶어졌다. 보통 세상 종말 전에 마트로 가는 것이 ‘룰’인데 나는 이렇게 변해 버린 세상에 가장 먼저 한 것이 출근이었다.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을 가장 먼저 간 거였다. 노예 중에 이런 노예가 있을까. 마트에 가서 보통의 세상에 였을때 카트 안에 담지 못한 거 다 담을 거였다. 마트에 들어 서자 마자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거슬렸다. 사람들을 시간 들여 커다란 창고 하나를 발견해 그 안에 마네킹을 정리하듯 넣었다. 다행히 별로 없어 다행이었다. 이제 오직 오로지 마트 안에는 나 혼자이다. 카드를 가져와 내 맘에 든다 싶은 건 다 카트 안에 담았다. 가득 찬 카트는 버려두고 또다시 빈 카트를 가지고와 가득 담았다. 그렇게 가득 찬 카트들이 마트 안이 가득 찰 때쯤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들은 적이 오랜만이었다. 천천히 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다가 같다. 살아있는 개소리라 생각했는데 강아지 인형이었다. 방금 전 카트에 담았는데 카트에서 떨어지며 작동된 것 같았다. 움직이는 것을 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움직이는 장난감 인형을 살며시 들어 다시금 작동시켰다. 쩌렁쩌렁한 개소리 신기했다. 개 짖는 소리가 이렇게 까지 신기하게 들리수가 있나 싶었다. 한참을 개 짖는 소리를 듣다 장난감 개인형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발로 세차게 밝았다. 헉헉헉 소리가 입에 나올 정도로 장난감 개 인형을 부서트렸다. 플라스틱들이 사방에 튀었다. 개의 형체는 점점 사라지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것만이 바닥에 있어다. 그 모습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빈 카트를 끌고 물건들을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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