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무더운 날이다. 생각해보면 생일날에 한 번도 비를 본 적이 없었다. 항상 화창한 날이었다. 두 시간째 맑은 하늘을 보며 ‘민’을 기다리고 있다. 보통은 이렇게 일찍 나와 민을 기다리지 않았다. 매번 민이가 나를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할 이야기가 있어 일찍부터 나와 공간의 분위기에 적응하며 적당한 말을 머릿속에 계속 떠올리고 있다. “우리 헤어지자” 머릿속에서만 대뇌이던 말을 조용히 내뱉어 봤다. 입에 붙지 않는다. 헤어지자라는 말을 평생에 몇 번이나 쓸까!? 아마 난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너무나도 어색하고 생소해서 외계어라도 하는 것 같다. 오후 두시가 다되어 간다. 이제 곳 민이가 오는데 심장이 뛴다. 3년 동안 민이를 생각하며 심장이 이렇게 뛰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그랬던 적이 분명 있었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 민이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민이는 처음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했던 건 오히려 나였다. 그리고 그때 민이는 연인이 있었다. 연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주위를 계속 맴돌았었다. 그런 나를 민이는 그렇게 가까이 두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조그마하지만 비집고 갈 약간의 틈새는 주었었다. 그 작은 틈새가 어찌나 좋았던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테스트를 받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자신을 얼마큼 좋아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그렇다고 지금에 들어서 기분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나도 영화에서 나오는 미련한 한 사람처럼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불나방처럼 뜨거워졌던 경험을 해봤던 것에 오히려 민이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주위를 맴도는 나에게 민이는 어느 날부터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말해 주곤 했었다. 이래서 싫어, 저래서 싫다며 자신의 연인에 대 안 좋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으며 한 번도 보지 못한 민이의 그 사람이 고마울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민이에게 잘해줬다면 난 오히려 그 사람을 싫어했을 거다. 민이가 그 사람에 대해 안 좋게 말할 때 나는 잘해줄 수 있는 데를 머릿속에서 생각했다. 그러다 나도 모를게 입 밖으로 말을 내뱉었다. 암묵적인 룰을 깨트려 버린 거였다. 민이도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좋아하는 건 되지만 고백 비슷한 거라도 하면 안 되는 그런 거 말이다. 그날 난 깨트려 버린 것이다. “난 잘해 줄 수 있는데” 이 말을 뱉고 며칠간 민이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었다. 내가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었다. 그렇게 몇주동안 처음 느껴본 감정에 휩싸여 지내고 있었었다. 스토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미저리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을 공감되기 시작했었다. 그래도 선은 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것은 사선에서 줄타기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줄타기를 아슬아슬하게 그나마 해냈던 것 같다. 민이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에게 와 달라는 짧은 통화 내가 도착했을 때 민이는 친구들과 막 헤어지는 중이었다. 그런민이를 뻘쭘하게 쳐다보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초저녁에 불어오는 쌀쌀한 바람이 날 부들부들 대게 한다.
민이가 그런 나에게 걸어왔다.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민이는 예전처럼 날 대하려 노력하는 듯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어색함을 말이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계속 걸었다.
짧게 짧게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어색한 질문과 답이 이어졌었다. “우리 언제까지 걸을 거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뻘쭘하게 민이의 눈언저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웅~웅~웅~ 휴대폰 진동음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민이가 손에 움켜잡고 있던 폰을 들어 올려 액정을 바라봤다. 어떤 이의 이름이 화면 액정에 보인다. 어렴풋이 민이가 말한 그의 이름 같았다. 예전에는 사랑이라 저장해둔 거 같았는데 이름으로 바뀌어있다는 왠지 모를 기대감이 부풀어 버렸다.
민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나랑 사귀고 싶어? 그러면 다음 전화 오면 받아서 우리 사귄다고 말해 그럼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거야” 그 말의 해석하느라 잠시 멍하니 민이를 쳐다보고 있을 때 같은 이름 같은 번호가 민의 폰 액정에 떴다.
민이는 전화기 통화버튼을 누르고 폰을 내 손안에 쥐어줬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그날 우리는 이상하게 사귀게 되었다. 가끔은 민이가 나와 만나려고 헤어진 것인지, 헤어져서 나를 만난 것인지 알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한 번쯤은 궁금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민이를 너무 좋아해서 민이 가 싫어할 것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을 때는 이미 나와 연인 사이인데 그런 걸 물어봐야 뭘 하겠냐는 생각에 물어보지 않았다.
찰랑하는 소리와 함께 가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눈길을 주었다. 민이다. 손에는 케이크 상자가 들려있다. 아마 초콜릿 케이크이겠지 항상 생일 때마다 초코케익을 사다 주었다. 왜 하필 초코케익일까?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하는 마당에 뜬금없는 게 갑자기 궁금해졌다. 민이가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케이크 상자를 얹어놓고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초코케익이야?” 두 번째 생일 때부터 물었던질 문을 또 질문을 했다. 민이는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듯 아무 말 없이 싱긋 웃어 주었다. 서로의 어깨 너머에 있는 밖같풍경을 서로 바라본다
사귀기 전보다 사귀고 나서 그리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었다. 좋게 말하면 담백한 거였고 나쁘게 말하면.... 글쎄 모르겠다. 왠지 나 혼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민이를 더 유심이 살펴보게 된다. 여전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근데 난 왜 헤어지려 하는 것일까 민이와 있을 때 끝이 보이지가 않았다. 연애하는 장면은 떠오르지만 오래같이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 상상을 할 때면 먼가 이질적인 감정들이 가슴에 올라왔다. 사랑하지만 떠난다는 개 같은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다았다. “무슨 일 있어?” 철렁한다. 가슴이 이상하게 뛴다.
하지만 무표정한 표정으로 민이에게 눈으로 말한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오늘 좀... 어색해서” 나는 웃었다. 머릿속에 헤어지자는 말이 떠오르지만 민의 말, 손짓, 행동 하나하나에 단어들이 다시 흩어져 이 세상에 없는 말이 되어 버린다. 헤어지지 않으면 될 것을 끝까지 가면 될 것을 왜 지금 나의 마음은 이런 걸까. 차라리 민이에게 말할까 솔직하게 이상하게 그것은 더 싫었다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것보다 지금 나의 마음을 횡설수설하게 말하는 게 죽기보다 더 싫었다. 어쩌면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면 민이와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오늘 뭐 할까?” 민이가 하는 질문 중에 가장 설례이게 하는 질문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고민하는 일만 큼 연애의 가장 큰 목적이 있을까!? 연애의 처음이자 끝은 아마 무언가를 같이 하는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민아 우리 조금 시간 죽이고 있으면 안 될까? 날씨가 너무 좋아” 민이는 싫다고 했었다.
시간을 죽인다는 단어 표현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너라서 용서가 된다고 어쩐지 그때부터 민이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허공에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기를 바래서 일부러 시간 죽인다는 표현을 자주 썼었다. 그때마다 민이는 심술 굳은 표정을 잠시 짓다가 다시 웃으며 나를 쳐다보곤 했었다. 민이가 가방 안에서 볼펜을 꺼내 들어 티슈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뭘 적어?” 민이는 글쓰늘걸 집중하면 말했다. “생일편지” 민이는 항상 무언가 적는 것을 좋아했다. 일기도 꼬박꼬박 적는 것 같았다. 생일편지라... 평생을 살면서 생일편지를 받을 일이 있을까? 어쩌면 난 스스로 불행을 택하는 재주가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서도 늘 그런 걸 선택하는 족속이 있다. 아마 그게 나일 거다. 민이가 무언가를 적은 티슈를 팔락이며 주었다. 티슈 안에 깜안색 글을 보았다.
< 생일 축하해 태어나 줘서 고마워, 네가 항상 사랑받았으면 좋겠어 꼭 내가 아니어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