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시대의 유물이 있다면 그중 하나는 두발단정 화가 아닐까 싶다. 지금 시대의 학교는 정확히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간간이 보이거나, 듣기는 말로는 두발의 자유화가 맞는 것 같다. 자유화는 아니더라도 라떼처럼 머리카락 길이가 기준에 비해 길다고 해서 수업 중에 기습적으로 가위로 잘리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라떼 선생님은 효율적으로 잘랐다. 수습이 불가능 한쪽에 정확하게 노리고 싹둑 잘라버렸다. 그러면 이발 해라 마라 말할 필요 없이 빵구난 길이만큼 머리를 정리해야 했다. 정리해오지 않으면 항명죄로 간주하고 찍히게 된다. 등굣길이 피곤해지고 마주치는 선생님에게 한소리 듣는다. 이래저래 머리를 길게 기르고 싶었던 나는 평생 숙원사업으로 머리를 기르는 일이었다. 이상하게 이래저래 기르고 싶은 열망은 컸으나 기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어중간한 길이에 머물러 있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길이, 예전부터 기르고 싶었던 열망의 길이 어디에서 왔다리 같다리 하니 머리카락 길이도 긴 것 같다가 도 짧은 것 같기도 하고 이래저래 어중간한 길이만 기른 체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지저분하지도 그렇다고 깔끔하지도 않은 헤어라 겉모습조차 그래 보이는 듯했다. 나의 모든 행동마저 헤어 스타일만큼 우유부단해 있었다. 그러다 순간 문득 거울 보자 뭔가 이상한 충동이 일렁였다. 이래서는 무언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무작정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간단명료하게 다가왔다. 그 순간의 생각, 기분, 감정, 분위기, 오감, 육감..... 모든 것들을 말로 설명하기가 무척 힘들다. 이미지로 설명한다면 인터스텔라에서 쿠퍼가 다차원 공간에서 허우적 되는 그런 이미지와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아무튼 모든 것들이 간단명료해지니 아무것도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일종의 근자감 같은 것 일수 있으나 주관적인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신선하고 무겁지만 산뜻한 것이었다. 이것을 단지 허공에 떠도는 무언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일종의 결심, 결단 같은 거 말이다. 그래서 단장 눈에 보이고, 답답해 보이고, 어중간해 보이는 머리카락이 짜증스럽게 다가왔다. 없애 버리고 싶었다. 나는 부엌에 가서 주방용 가위 하나를 들고 욕실로 들어가 자를까 말까라는 고민이 들기도 전에 바로 손으로 한 움큼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가위로 싹둑하고 잘라버렸다. 몇 번을 계속 계속 계속 잘랐다. 귓가에는 가위의 날 선 날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소리가 영화에 나오는 효과음처럼 들렸다. 그래서 그런지 먼가 모를 희열이 몰려왔다. 단지 머리카락을 자른 것뿐인데 이게 뭐라고 이런 희열이 몰려오는 것인지 어린애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애전에는 분명 알고 있는 그런 도파민을 뿜어내는 그런 감정이었는데 어느새인가 점점 사라져 버린 그 무언가가 다시금 부화하는 기분을 느꼈다. 듬성듬성 잘린 머리는 잔뜩 짓밟힌 잡초처럼 변해있었다. 웃음이 났다. 한참을 거울을 보고 꺼이꺼이 웃어 됐다. 난 스스로 후회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저지를고 나니 그런 단어가 있었는 좋차 모르게 되었다. 생각보다 잘생긴 한 사람이 거울에 비쳐 있을 뿐이다. 한참을 혼자 거울을 보며 웃고는 그래도 이런 꼴로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감고 미장원으로 같다. 미장원 주인아주머니는 내 머리 보고는 당혹해했다. 뭔 일이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 감정 없는 말투로 갑자기 짜증 나서 잘라버렸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도 몇 분을 꺼이꺼이 웃으시고는 머리를 너무 짧게 잘라서 거기 맞춰서 잘라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카락을 자른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냥 빡빡 밀어 버렸다. 땡중 중에 이런 땡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냥 빡빡머리가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꺼이꺼이 웃어버렸다. 아주머니도 자신이 자른다는 표현이 민망했는지 꺼이꺼이 웃었다. 딱히 한일이 없다는 말투로 2,000원을 깎아 주셨다. 오는 내내 주위 사람들이
날쳐다 봤다. 어떤 사람음 더러 나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 왜 그런 걸까 그 정도로 비호감인가. 키득키득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리는 시렸지만 마음은 상쾌했다. 몇 년 동안 묶혔던 무언가가 살아진 것 같았다. 머리를 잘랐다고 주위의 무언가 당장 바뀔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 안에 무언가의 삔트는 조금은 바뀐 것 같았다. 그것이 좋은 방향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흠 모르겠다. 일단은 머리는 가벼워졌으니 짐은 덜었다. 그러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