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

by J팔

날이 갈수록 시야가 좁아진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건물이 하늘을 다을 듯 높아져간다.

멀리 바라보는 건물을 볼 때면 가로세로 갈라진 틈 사이에 누군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 만약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어떤 이유로 저기에 있는 걸까?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난다. 어쩌면 내가 알 수 없는, 내가 한 번도 마주 친 적도 없는, 그리고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인연이 먼 언저리 어딘가에서 검은색 머리만으로 나를 상상하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알 수 없는 존재의 상상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쩌면 고단할지 모르는 그의 삶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의 상상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존재일까? 그 무엇이 되었던 좋다. 그가 나를 존재하게 해 주어 보이지 않는 나는 보이는 존재가 될 테니깐. 가끔은 시간이라는 존재가 멈추어 버리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길 위에서, 코끝이 얼어버릴 것 같은 추운 날 커피 한 목음 마실 때, 후덥지근한 여름날 아지랑이 필 때 아무 생각 아무 감정 아무 느낌이 없을 때 불현듯 찾아온다. 천년 전에 내가 서있는 이곳은 무엇 이였을까? 그리고 천년 후에는 여기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지나간 시간과 지나갈 시간이 교차되어 시간이라는 것이 사라진다. 그냥 그냥 장소 위에 덩그러니 얹어진 나만 보일뿐이다. 세상이라는 공간에 나 자신이 중요할 거라는 망상에서 벋어나 그냥 그렇게 있는 돌부리처럼, 비 온 날 고여 있는 물웅덩이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낙엽처럼 그냥 그렇게 어느 장소에 있는 그런 그런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마음이 편해진다 한없이 가벼워진 나의 영혼은 수면 위에 비취어진 나처럼 일렁일렁거린다. 겉이 없고 속만 있는 존재가 되니 난 한없이 가벼운 존재라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어찌 이리 가벼울 수가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난 가벼웠다. 조금은 남들보다는, 적어도 적어도 어떤 기준에서 보다는 무게감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바람이었을 뿐이었다. 돌이켜 보면 지나간 시간들은 나의 영혼에 무게를 더해주지 못한 것들 이였다.

17... 16....15...14...13... 신호등의 사람이 사라지고 초록색 숫자만 카운트된다. 가끔씩 나는 신호등 위에 있을 때 다른 어디인가로 가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나는 다른 어느 곳에 다녀오는 듯한 그 어떤 잔상은 확실히 남아있다. 그래서 신호등을 건너야 할 때, 건너지를 못하고 한두 번은 놓쳐버린다. 빨간불이 되고 다시 초록불이 되고 사람들이 줄지어 있다. 교차되어 있다를 반복해서 본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방금 무슨 생각을 했어? 무슨 생각을 그리 하길래 건너려는 신호등은 건너지 않고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어? 하지만 대답하지 않는다. 물음 전에는 넓고도 깊은 생각을 할 것 같지만 사실 나에 생각은 4.5평짜리 공간과 같다. 한 곳을 볼 때 다른 곳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넓을 거라는 착각을 하며 조그마한 창문 사이로 보이는 넓어 보이는 세상이 나의 세상일 거라는 「희망착각」 속에 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질문에 대답을 못하기에 허공을 맴돈다. 설사 대답을 할지라도 4.5평 안에 떠돌아다니는 그 무엇은 집어 말할 뿐이다. 질문이 같고 답이 같은 일상에 갇혀 눈만이 꿈벅 꿈벅하고 있다. 신호든 앞에 서서 멈춰버린 나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 난 누구?, 여긴 어디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분명 목적이 있었기에 밖에 나왔고 분명 그 목적을 위해 길 위를 걷고 있는데 신호등에 부닥혀 잠시 멈춰진 순가 모든 것들이 다 무의미해지는 듯하다.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온 건물이 벽처럼 다가와 더 넓어지려는 생각이 사라져 또다시 무의미한 목적을 쫓아 잠시 멈춰서 있던 신호등을 건너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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