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 쌔벼올 수 있어?”
동네마다 그 동네만의 룰이 있다. 가위 바위 보도, 편을 먹는 구호도 술래의 별명도 동네별로 각각 다르다. 지금 나에게 협박인지 아닌지 모르는 말투로 말하는 이 아이는 자신의 동네의 룰을 지키려는 것인지,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난 당황스러워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이사를 오고 며칠 동안 집안에만 있었다. 이사 전에 있던 동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무작정 밖에 나가 동네 한 두 바뀌 돌면 아이들 한두 명은 꼭 있었다. 한두 명이 모이면 뭘 하든 재미있게 놀 자신이 있었다. 뭘 하든 하고 있으면 아이들 한두 명씩 늘어난다. 늘 그런 날일 줄 알았지만... 너무 심심해서 결국에는 밖에 나왔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애들도 있었다.
같이 놀자는 말은 못 해서 괜스레 주의를 어슬렁거리며 기웃기웃거렸다. 나에게 관심 가져주기를 그리고 나와도 같이 놀아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돌아오는 건 이상한 말 뿐이었다.
자신들과 놀고 싶으면 도둑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난인가 생각했지만 절대 아니었다.
말하는 입들, 나를 쳐다보는 눈들 장난이지만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괜히 어슬렁 거렸다는 생각이 마구 밀려온다. 단지 예전 동네 에서 처럼 낄낄되며 같이 놀고 싶은 것뿐인데 그러고 싶으면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어 오라는 말을 듣고 있다. 지금 이라도 빠져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어 묘한 압막 감이 느껴진다. 거부하면 먼지 모르겠지만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 꺼야, 말 거야?”
기분 나쁘게 미소를 지으며 물어본다. 주위에 몰려든 아이들도 좋은 구경거리가 생기기를 바라며 말을 거둔다. 자신도 해봤지만 별거 없다. 별 탈 없을 거다. 걸리더라도 조그마한 꾸중을 듣고 끝난다. 이런 식의 말로 한 마디씩 거둔다. 한마디 한마디 말이 쌓이니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
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 아이들이 일제이 웃는다. 그리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큰 도로 보인 지, 큰 도로에 가면 근처에 슈퍼가 있을 거야 거기서 껌 한 통을 쌔벼와 절대 사면 안 돼 쌔벼와야 해 근처에서 우리가 지킬 거야.”
껌 한 통이라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나 돈 이나 비싼 물건을 훔쳐오라고 하며 어쩌지 하는 생각에 걱정이었는데 껌 한 통이면 어찌어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았어 껌 한 통이면 되지”
키득키득 키득키득 아이들이 이상하데 또 웃는다 기분이 나쁘지만 당장 이런 나쁜 감정보다 앞서는 게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다. 말은 알았다 했지만 벌써부터 다리가 저릿해오고 심장은 벌써부터 빨라지기 시작했다. 길거리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찌릿찌릿하다. 슈퍼 앞까지 왔다. 어제인가 며칠 전에 한번 와본 슈퍼이다. 그때의 슈퍼의 모습과 지금의 슈퍼의 모습이 왜인지 모르게 다르게 느껴졌다. 슈퍼 입구에 서있으니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몇몇 아이들이 지나가는 말을 기억해본다. 그냥 주머니에 넣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아이도 있고 훔치고 나서 다른 물건을 사서 나오라는 말도 있고 사고 나서 나올 때 훔쳐 나오라는 말도 있었다. 전부 한 번씩 훔쳐본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실패한 사람은 없다는 뜻이 된다.
조금은 걱정을 덜었다. 망설이다 결국은 슈퍼 안으로 들어 같다. 껌이 계산대 앞에 있다. 처음에는 어슬렁거리다 과자 같은 거 사서 계산할 때 훔칠생각이였지만 생각해보니 과자 말고 껌을 사는 척하면서 껌 한 통은 사고 한통은 훔치면 될 것 같았다. 어쩌면 아이들이 껌을 산거 아니냐고 물어본다면 한통은 훔쳤다 말할 것이고 두통다 계산한 거라 말한다면.... 고민했지만 영수증이라는 단어가 잽싸게 머리를 스쳐지나 같다. 그래 영수증을 달라하자. 그래도 못 믿는다면 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는데 어떻게 훔칠지에 대한 고민이 넘치니 잠잠해졌다. 일단 주인아주머니는 계산대에 있는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TV에 몰입해있다. 전혀 나를 신경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망설이지 말자 어차피 훔쳐야 한다.
나는 잽싸게 껌 한 통을 주머니에 넣고 다른 껌 한 통을 들고 계산대에 같다. 차분해져 있던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잠시만 참으면 돼 조금만 아무렇이 않은 척 그러면 다 끝나.
주인아주머니가 TV를 보다. 나를 보고 계산대 위에 있는 껌 한 통을 보고는 “500원” 나는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500원짜리가 있었다. 계산대 위에 500원을 올려놓았다.
“주머니에 있는 건 서비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너무 놀라 TV를 보고 있는 아주머니를 빤히 봤다. 아주머니의 입이 또다시 뻐끔거린다. “자주 오라고 주는 서비스라고 어여 가봐 애들 기다리겠다”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먼가 이상하게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맥 빠지게 슈퍼를 나왔다. 슈퍼 건너편에 있는 아이들이 키득키득거린다. 그리고 손으로 자신들한테로 오라고 손짓한다. 아이들에게로 털래 털래 걸어가니 껌을 달라며 손을 뻗는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좀 다른 방법 나올 줄 알았는데 저번에 너 가했던 방법대로 했다. 그지 하면서 자기들의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처음에 물건을 훔쳐오라고 말하던 아이가 내 어깨를 툭 치면서 키득키득 웃는다. 그리고는 너희 동네에는 뭐하고 놀아 라며 묻는다. 그리고 우린 이거 이거 하고 논다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기분이 묘했다 웃어야 할지, 성을 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무지 감정이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다 뭐든 됐다 싶었다. 이 동네에서도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첫인상이 이 정도면 나머지 날들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