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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 선배의 편지를 발송하며

by 쎈 바람

저는 수도권의 그저 그런 대학 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는 수학 교사가 되겠다는 9살부터의 꿈은 현실 학교를 경험한 후 스스로 꺾었습니다. 그러나 수학을 놓고 싶지 않아 수학으로 아이들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출판사에 입사했습니다.

책을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수학과 관련된 책을 만드는 일은 내게 행복을 넘어서 쾌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책 만드는 일을 사랑하다 보니 꽤 많은 베스트셀러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쎈 수학’이고, 쎈 수학은 내 가장 든든한 이력입니다.

저는 쎈 수학의 기획자이고 브랜드 결정부터 내용 구성까지 내 모든 걸 쏟아부어 개발했지만, 출판사의 주인이 아니라 직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쎈 수학의 엄마라 칭함에도 불구하고 쎈 수학을 출간한 회사를 떠나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회사 주인이 아닌 피고용인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쌓은 경력 덕에 회사의 꽃이라고 하는 임원 타이틀을 달고 있습니다.


첫 출발은 교육방송까지 소유하한 업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출판사였고, 거기서 사원에서 대리까지의 직급을 달며 사회생활의 기본을 익혔습니다. 그러나 IMF 이후 회사는 부도가 났고, 함께 일하던 몇몇이 새로운 출판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R&D, 인사, 총무, 회계 등등 회사라면 갖추고 있는 모든 조직의 일을 맡아서 일하다, 이렇게 일하다간 죽겠다 싶어 탈출했습니다. 세 번째 출판사는 직원이 30명이 안 되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거기서 15년을 일하면서 과장에서 이사까지 직급을 달았고, 회사는 사옥을 두 번 올릴 만큼 성장했습니다. 이후 교과서가 주력인 회사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네 번째 출판사로 이직했습니다. 7년을 근무한 네 번째 출판사에서도 성과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성과는 인정받지 못했고, 최고경영진이 바뀌면서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네 번째 회사의 마지막 해부터 다니던 대학원 덕에 퇴사 후에도 백수가 아닌 대학원생으로 보냈고, 내 공부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진지하게 공부한 시간이었습니다. 대학원을 마칠 때쯤 새로운 제의가 들어왔고, 나는 지금 다섯 번째 출판사에 재직 중입니다.


이런 시간을 거쳐 어느새 저는 회사 경력 삼십 년을 넘기고 감사하게도 아직 현역입니다. 나이가 들고 마음을 내려놓게 되어서인지 요즘의 저를 보는 사람들은 제가 아주 평온한 사회생활을 했을 거라 지레짐작합니다. 아마도 제가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들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제 회사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차별, 성과로 인한 시기 등 많은 고비를 견뎌냈고, 심지어는 자살 충동도 있었지만 이겨냈습니다. 누구 못지 않은 다양한 회사 생활에서의 희노애락을 경험했기에 그동안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는 사회 후배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얼마 전 학부모 강연을 준비하다 박노해 시인의 시를 만났습니다.


어떤 일이든

박노해

어떤 일이든

3년은 해야 감이 잡히고

10년은 해야 길이 보이고

30년은 해야 나만의 삶의 이야기가 나오죠

(후략)


이 시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각자 사는 삶인데 제 이야기가 뭐 특별하다고 세상에 내놓나 하며 머뭇거렸는데 박노해 시인이 힘을 줬습니다. 사회 생활을 30년 넘게 했으니 제가 겪고 느꼈던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격려로 읽혔습니다.


이제 앞서 세상을 걸어온 '쎈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편지 보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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