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수학은 개념이 나선형이 연결되며 앞서 배운 것이 뒤에 배우는 것에 기초가 되면서 새로운 개념이 추가되고 확장됩니다. 그중 고등학교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처음 학습하는 것이 ‘집합’과 ‘명제’입니다. 집합과 명제는 수학이 약속의 언어임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개념입니다.
이 중 ‘명제’란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식이나 문장을 뜻합니다. 이 명제라는 녀석은 완전히 낯선 개념인데, 특히 '모든'과 '어떤'이란 조건이 붙는 명제는 많은 학생이 까다롭게 여깁니다.
'2+5<4'와 같은 명제는 거짓이라고 쉽게 판별할 수 있는데
'모든 x에 대하여 x²+x+1>0’
과 같이 '모든' 또는 '어떤'이 붙으면 참, 거짓의 판별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이란 조건이 있는 명제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만족해야만 참인 명제가 되고, '어떤'이란 조건이 있는 명제는 하나 이상만 만족하면 참인 명제가 됩니다. 따라서 참, 거짓을 판별하기 위해서 '모든'이란 조건이 붙은 명제는 거짓이 되는 예(반례)를 찾고, '어떤'이란 조건이 붙은 명제는 참이 되는 예를 찾습니다.
예를 들어 명제
'모든 x에 대하여 x²+2x+1=0’
은 'x=2'이면 방정식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거짓인 명제이고, 명제
'어떤 x에 대하여 x²+2x+1=0’
은 'x=-1'일 때 주어진 방정식이 성립하므로 참인 명제입니다.
‘모든’과 ‘어떤’이란 조건이 붙은 명제를 사람에 빗대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이란 조건이 붙은 명제 같은 사람은 모든 점에서 완벽해야 하고 반례가 없어야 하므로 빈틈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으로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을 담금질할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어떤’이란 조건이 붙은 사람은 참이 되기 위한 한 가지 예만 찾으면 되니 여유롭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졌을 것 같고요.
이렇게 생각하니 저는 '모든'이란 명제보다 '어떤'이란 명제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상황이나, 좋고 싫음을 판단하는 상황도 따지고 보면 참, 거짓을 판별하는 명제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명제 앞에 '모든'을 붙이냐, '어떤'을 붙이냐에 따라 참, 거짓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영화 한 편을 본 후 그래픽인 게 티 난다든지, 분장이 어색했다는지 하는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던 몇 가지에 주목하게 되면 그 영화는 돈 아까운 영화가 되고, 공감하는 한 가지를 얻고 그것에 만족하면 그 영화는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됩니다.
이런 상황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대부분 '모든'이란 조건을 전제하고 그것으로 참, 거짓을 판단함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고, 단 하나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참이면 전체가 참이 되는 '어떤'의 행복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죠.
눈이 예쁘고 코가 못생긴 여자가 '모든'이란 조건을 달면 추녀가 되지만 '어떤'이란 조건을 달면 미녀가 됩니다. 기왕이면 '모든'이라는 조건을 버리고 '어떤'이라는 조건을 선택하여 추녀가 아닌 미녀라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요?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모든'의 강박에서 벗어나 '어떤'으로도 만족하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