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얼마 전, 신입 공채 면접에서 최근에 읽은 책을 물었더니 한 면접자가 <자존감 수업>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책을 읽은 이유는 취업 활동을 하다 보니 자존감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취업 희망자가 취업 과정에서 자신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회사를 탓하다가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취업했다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 생활을 하다가도 자존감이 낮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후배들에게 오래전 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언젠가 의기소침해진 저는 누군가의 응원이 필요했습니다. 그 누군가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그런데 이 질문에 답은 너무 뻔했습니다. 미혼에다 연애도 하지 않았기에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과 조카들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자존감이 바닥을 친 일을 가족과 나누기는 어려웠고 회사 일을 집까지 끌고 가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가족 외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하는 사람의 범위부터 정해야 했는데, 그때 정한 범위는 제가 좋아하고 진심으로 잘 되기를 응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 범위에 드는 내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렸습니다. 가족은 물론이고 동료, 선후배 등 많은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문득 그 사람들의 이름을 A4 크기의 줄 노트에 빼곡히 적어보자는 생각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적었습니다. 이름 사이에 쉼표를 찍으며 노트 줄에 맞춰 적자니 종이를 채우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줄을 채울 때마다 사랑하는 사람의 범위를 넓혀 겨우 제 사람들의 이름을 종이 한 장에 빼곡히 채웠습니다.
종이에 적힌 이름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종이를 채우는 게 정말 어려웠는데, 막상 다 채우고 읽어보니 제가 챙기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다 깨달았습니다. 거기에 제 이름이 빠져 있음을. 제가 떠올린 그 많은 사람, 그 사람들과 연결된 유일한 사람인 저임 잊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제 부모님이니까 사랑하고, 선배도 제 선배니까 사랑하고, 직장 동료도 제 동료니까 사랑하는 것이니, 제가 종이에 적은 그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결국은 저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제가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저를 위해 그동안 제가 무엇을 하였나를 생각해 보니 정말 한심했습니다. 늘 스스로 만든 틀에 저를 가두어 놓느라고 이러면 안된다 저러면 안된다고 구속하고 억누르고, 저를 위해서 한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 아닌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나누면서 저에게는 베푼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잘할 수 있는 데도 부족하다고 탓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만 생각하고, 몸이 아파도 챙겨주지 않고, 쉬고 싶은데도 시간 없다고 미루고, 맛있는 게 먹고 싶어도 절약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그렇게 늘 저 자신을 제어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존감도 낮아지고 눈치 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순간 저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저를 위하고 존중하며 그 누구보다 저 자신을 사랑하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그렇게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저 나름의 답을 얻었는데, 그것은 저를 좋은 사람이 되게 하자는 거였습니다. 저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게 제가 저를 사랑한 결과이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라고 정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사소하게는 사무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줍거나 누굴 만나든 먼저 인사하는 것부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제 경험을 나누는 등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은 많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더니 신기하게도 제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고 제 주위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높아졌습니다.
자존감은 외부에서 얻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 채우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고 실천할 때 자존감은 높아집니다.
타인보다 자신에게 엄격해야겠지만 한편으로 관대해지고자 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