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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일할 것인가

쎈 선배의 편지

by 쎈 바람

제가 처음 팀장 직책을 맡게 되었을 때 사장님이 종이 한 장을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일본의 한 최고 경영자의 신입사원일 때 일화가 프린트되어 있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편의상 그 경영자를 A라 할게요.



A는 입사해 일을 하면서 자주 상사의 생각과 본인 생각이 다른 상황을 마주했고, 많은 경우 상사의 생각보다 본인의 생각이 옳은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본인의 생각을 전달해도 상사는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입사 때의 열정도 식고 상사가 지시하는 일도 억지로 하게 되었다. 그러다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이런 상황을 아버지에게 터놓고 이야기했더니 아버지가 A에게 물었다.


“진심으로 네 생각이 옳다고 믿니? 네가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A는 진심으로 회사를 위한 판단이고 개인적인 욕심이나 욕망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이런 답을 주었다.


“앞으로 그런 상황이 생기면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상사에게 네 의견을 말씀드려라.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네가 생각한 근거가 옳은지를 다시 판단하고 그래도 옳으면 다시 말씀드려라. 그래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시 또 생각해 보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려라. 그런데도 상사가 생각을 굽히지 않으면, 그땐 네 생각을 접고 상사의 생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라.”


이후 A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했다. 본인의 생각에 논리적 근거를 찾기 위해 공부했고, 그걸 상사에게 세 번까지 진지하게 전달했으며, 비록 본인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팀에 부여된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A는 일을 진심으로 대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다양한 성공 사례를 만들면서 그 회사 최고 경영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종이를 처음 받았을 때, 사장님이 저에게 원하는 업무 자세는 덮어놓고 Yes라고 하기보다는 근거 있는 No를 말할 수 있는 자세라 믿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제 주장이 객관적인지 고민하고 합당한 근거를 들어 설득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안으로 방향이 결정되면 그 안으로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했고, 설사 결과가 흡족하지 않더라도 제 생각을 굽힌 것을 후회하지 않고 그 누구도 탓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저는 이 종이를 그 회사에서 퇴사할 때까지 15년을 보관했고, 그사이 팀장이었던 저는 본부장이 되어 있었다. 종이는 버렸지만 이렇게 일하는 태도는 습관이 되어 이직 후에도 일하는 제 자세는 변함없었습니다.

이런 제 업무 자세는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때로는 긍정적으로 때로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상사의 스타일과 상관없이 깊이 있는 고민을 반복하고, 조직 관점에서 의견을 제시하며, 제 의견과 달라도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기에, 전문가로 인정받는 지금의 제가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일하는 자세를 정립하는 것은 조직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뚜렷하지만 유연한 업무관을 갖는 것은 성장에 밑거름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사원이니까 나는 리더가 아니니까 라는 생각은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것입니다. 직급과 직책을 벗어나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얕은 Yes보다는 깊은 No라는 의견을 낼 수 있을 때 성장이 동반됩니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내 생각과 다른 방향일지라도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면 의미 있는 경력이 쌓여갈 것입니다.

경력은 혼자 쌓을 수 없습니다. 구성원들과 논리적인 근거와 치열한 논의 그리고 하나 된 결의로 함께할 때 단단한 경력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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