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수학은 철학, 곧 삶을 도식화한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수학의 개념과 원리를 보다 보면 삶의 순간들이 투영되어 보이곤 하죠.
우리는 중학교 때, 자연수에서 정수, 유리수, 무리수, 실수로 확장되는 수체계와 수의 사칙계산을 배웁니다. 그리고 거듭제곱, 괄호,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이 섞여 있는 식을 간단히 하는 복잡한 계산을 연습합니다.
복잡한 계산을 푸는 순서는 수학 교과서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이 중 식에 포함된 괄호는 소괄호( ), 중괄호{ }, 대괄호[ ] 순서로 계산합니다.
소괄호 안을 계산하면 중괄호는 소괄호가 대괄호는 중괄호가 되고, 대괄호는 없어집니다. 다시 한번 소괄호 안을 계산하면 중괄호가 소괄호가 되고, 중괄호는 없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소괄호 안을 계산하면 모든 괄호가 없어지고 복잡했던 식은 간단히 정리됩니다.
어쩌면 우리 삶도 순서를 생각하며 풀어야 할 여러 개의 괄호로 묶여 있는 복잡한 계산 식과 다름없을 것 같습니다.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들과 내게 주어진 상황들을 들여다보면 소괄호, 중괄호, 대괄호로 묶여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삶의 문제를 푸는 건 수학에서 복잡한 계산 문제를 푸는 것에 비해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그것은 삼인칭 시점으로 푸는 수학 문제와 달리 삶의 문제는 일인칭 시점이라서 풀어야 할 괄호의 순서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삶의 문제도 한 걸음 떨어져 삼인칭 시점으로 객관화하여 바라본다면 해결 순서가 보이지 않을까요?
인간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삶의 인연들을 괄호로 묶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가까운 인연을 소괄호로 묶고, 다음은 중괄호, 대괄호 순으로 묶는다면 각각의 괄호 안에는 어떤 인연들이 포함될까요? 또 저는 그들의 어떤 괄호에 포함되는 인연일까요? 복잡한 계산에서 괄호를 풀 듯 삶의 인연에 겹겹이 둘러쳐진 괄호를 푼다면 모든 인연이 한결같이 소중한 의미가 될 수 있을까요?
인연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괄호를 다 푼다는 건 무리한 욕심입니다. 제가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인연과 공정하게 동일한 관계를 맺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동일한 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은 상향 평준화가 아닌 하향 평준화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어떤 면에선 괄호가 삶을 단순하게 정리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인간관계에서는 괄호를 풀기보다 소괄호 밖의 사람들을 소괄호 안으로 포함하려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따뜻한 마음이 충분하면 괄호는 자연스럽게 없어질지 수도 있겠지요.
어떤 시험에 출제된 문제
7+7÷7+7×7-7
의 정답률이 18%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괄호 없는 단순한 계산 문제인데 말입니다. 수학 교과서에 제시된 식의 계산 순서를 안다면 괄호가 필요 없는 문제지만, 계산 순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괄호를 넣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7+(7÷7)}+(7×7)]-7
이 문제에서 오류를 줄이기 위해서는 괄호를 없애는 것만큼이나 괄호를 넣는 것도 중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삶에는 괄호를 적절히 넣거나 괄호를 해체하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