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예전 직장에서 사옥을 신축하여 입주했을 때의 일입니다.
사옥의 5층에 작은 정원을 두고 배롱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6층에 있는 사장 집무실에서 꽃이 보이도록 설계한 것이었습니다. 입주 후 몇 년 동안 꽃을 피우던 배롱나무가 언젠가부터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걸 탐탁지 않게 여긴 사장이 어느 해 봄, 담당 본부장을 불러서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배롱나무에 꽃이 피게 하라고 했습니다.
담당 본부장은 나에게 이 말을 전하며, 그동안 수목 전문가가 관리했는데도 안 핀 꽃을 무슨 수로 피우냐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나는 그 본부장에게 말했습니다.
“꽃을 피울 방법이 있어요. 본부장님 사무실에서는 바로 배롱나무가 보이니 매일 나무를 보며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해 주세요. 그리고 올해는 꽃을 피워달라고 부탁하세요.”
제 말을 들은 본부장은 어이없어했지만, 저는 허투루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매일 배롱나무를 보며 사랑한다고 할 거예요. 꽃이 피나 안 피나 두고 봐요.”
그때 저는 4층에서 근무했는데, 4층에서는 화장실 세면대 위의 쪽창으로만 배롱나무 귀퉁이가 조금 보였습니다. 나는 그날부터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마다 쪽창으로 배롱나무를 올려다보며 ‘사랑한다. 꽃을 피워다오.’라고 속삭였습니다.
그해 여름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사랑을 고백하려고 배롱나무를 봤는데 빨간 꽃 한 덩이가 보였습니다. 제가 화장실 쪽창으로 보며 마음을 전했던 딱 그 가지에 꽃이 핀 거였어요.
꽃이 핀 것을 발견하고 바로 5층으로 뛰어 올라가 담당 본부장 집무실 방을 열어젖히고 소리쳤습니다.
“배롱나무에 꽃이 폈어요. 보셨어요?”
본인의 방에서는 반대쪽에 있는 가지라 미처 꽃을 보지 못한 본부장을 데리고 베란다로 나갔습니다. 설마 했던 본부장은 배롱나무 귀퉁이에 수줍게 피어 있는 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본부장님은 제 말을 믿지 않았죠? 배롱나무에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았고요? 저는 매일 배롱나무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어요. 사랑의 힘은 꽃을 피우지 않던 나무에 꽃을 피우게 할 정도로 강하답니다.”
그 당시 저는, 제 진심이 배롱나무에 가닿아 배롱나무가 꽃을 피울 거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 믿음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어요. 식물을 키우면서 식물이 사람과 교감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진심과 사랑은 나무에 꽃만 피우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진심과 사랑이면 함께하는 사람과의 사이에도 꽃이 피고, 하는 일의 결과물도 꽃을 피운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진심과 사랑이면 못 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음을 굳게 믿습니다.
진심과 사랑의 힘은 강합니다. 그걸 알기에 저는 저 삶의 모든 순간에 진심과 사랑을 담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