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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0 = 1

쎈 선배의 편지

by 쎈 바람

0에 0을 더하면 얼마일까요? 수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0이라고 답할 겁니다. 그런데 0에 0을 더하면 반드시 0일까요?


제가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였습니다.) 2학년 때였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떠들지 말라는 담임선생님의 엄명이 있었음에도 마치 신기한 걸 발견했다는 듯이 교실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저에게 소리쳤습니다.

"너 이거 알아? 0 더하기 0이 1이야."

그 말을 듣고 저는 친구보다 더 큰소리로 반박했습니다.

"야,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0 더하기 0이 0이지 어떻게 1이니?"

덕분에 우리는 앞으로 불려 나가 손바닥을 두 대씩 맞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야단맞는 걸 무서워했던 저는 간단한 계산도 못 하는 친구 때문에 손바닥을 맞았다는 억울함에 책상에 선을 그어놓고 절대 넘어오지 말라고 눈을 흘겼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세상은 수학과 같이 명확한 답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0에 0을 더해서 1이 나올 수도 있고, 1과 1을 더했는데도 0이 나올 수 있으며, 에디슨의 물방울처럼 1에다 1을 더해서 다시 1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는 것이나, 하나의 조직에서 일하며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을 보면 무에서 유가 만들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만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열, 백의 크기로 만들려고 욕심을 부리다 보면 하나마저 없어져 영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수학을 전공하면서 수학은 인생과 철학을 논리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배웠지만 가끔은 그 말에 오류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수학이 삶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학 문제는 정답이 있지만, 삶은 수학과 다르게 정답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삶은 딱 부러지는 콩나물값 계산과 같지 않습니다.


저는 제 능력 부족을 자각하고, 일상에서 무기력을 느낄 때면 '0+0=1'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저에게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기운나는 주문이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대상 없는 한탄을 하는 것보다는 무에서 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저 자신을 응원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할 때, 그 걸 하기 위한 환경이나 상황은 완벽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준비된 것보다 부족한 게 많고, 긍정적인 신호는 적은데 부정적인 생각은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새로운 도전 앞에서 ‘0+0=1’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의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 확신이 0에 0을 더했을 때 1, 아니 2, 3. 10과 같이 그 이상을 만들 수 있는 힘이 되어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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