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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쎈 선배의 편지

by 쎈 바람

회사에서의 면접이란 채용을 원하는 회사와 취업을 원하는 지원자가 대면하여 회사는 지원자를, 지원자는 회사를 함께 일할 파트너로 적합한지 판단하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회사를 대표하여 지원자를 만나는 면접관으로 수많은 면접에 참여한 저는 면접으로 알 수 있는 건 미미하다고 단언합니다. 질문 몇 개면 실무가 가능한지는 파악할 수 있지만 제가 협업과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인성과 자세는 어떤 질문으로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면접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쩌면 인성과 자세는 파악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만 아니라 다른 면접관들도 지원자가 입사하여 시간을 함께한 후에 면접 때와는 매우 다르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면접관으로 면접에 참여할 때면 면접 막바지에 독서량과 함께 가장 최근에 읽은 책과 그 책에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 이유는 독서 경험으로 그 사람의 인성과 자세를 조금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습관은 초등학교 때 엄마가 사주었던 50권짜리 ‘세계 소년 소녀 명작 동화’를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노는 게 일상이었고 동네가 제가 경험한 세상의 전부였는데, 책에는 제가 모르는 낯선 세상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낯선 이야기가 재밌어서 하교하고 집에 오면 책부터 읽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제 욕심만큼 책을 살 수 없었기에 그 전집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책의 주황색 하드커버가 떨어져 나가고 제본 실밥이 너덜거려 책장이 흩어질 때까지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는 습관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도 이어졌습니다. 빡빡한 학교 일정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청소년 추천 도서를 중심으로 읽었고 장르의 폭도 넓혔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소설에 푹 빠졌습니다. 특히 대하소설에 빠져들어서 10권 내외로 구성되는 책을 한꺼번에 구매해 쌓아놓고 곶감 빼 먹듯 읽으면 가슴에 행복이 차올랐습니다. 아르바이트해서 샀던 대하소설들은 아직도 제 서재 책장 제일 위 칸에 꽂혀 있으며 제가 가장 아끼는 자산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현대 작가들의 소설을 읽다가 어느 순간 논픽션 독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상의 변화를 빠르게 습득하고 이해해야 했고, 제가 공부한 영역 외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학습이 필요했으며, 조직 생활에서 마주하게 되는 여러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했는데, 독서가 그 모든 걸 해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경험은 직접 경험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시간적 공간적 물리적 한계가 있기에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야 하는데 간접 경험의 도구로는 책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픽션과 논픽션을 한 권씩 번갈아 읽는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픽션은 제가 좋아하는 취향대로 논픽션은 공부가 필요한 영역에서 선택해서 읽었습니다.

이렇게 읽다 보니 자주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았고, 서점에 가면 매번 쌓이는 신간을 보며 독서 리스트레 올리는 책이 많아져 마음이 조급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눈이 허락할 때까지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 연간 50권의 책을 읽자는 다짐을 했고, 지금까지 꾸준히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면접에서 독서량을 묻는 이유는 책이 가진 힘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짧게라도 책에 관해 대화할 때면 포장하지 않은 지원자의 내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책을 가까이하면서 저에게는 책이 만든 근육이 생겼습니다. 전문적이지는 않아도 어떤 분야든 상식선에서 대화할 수 있고, 낯선 상황에도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길러졌습니다. 물론 제 경험만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동안 제가 만났던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 변화에 대한 수용,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시도와 용기, 여러 관계에 대한 이해와 배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등 삶을 지탱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또 그들은 독서가 그 힘의 근원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책을 읽으라고 조언합니다. 그때마다 후배들은 두 가지 질문을 합니다. 추천하는 책이 무엇인지 그리고 책을 구매하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추천하는 책은 질문하는 사람과 상황에 맞춰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제가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읽고 싶은 책을 제가 선택한다고 생각했는데, 책과 함께 세월을 보내오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저를 찾아온다는 것을요.

돌이켜 보면 신기하게도 제가 책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필요로 하는 내용을 품고 책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책에서 그 순간 저에게 필요한 지식을 얻었고 풀지 못하던 문제의 답을 얻고 힘내라는 격려와 힘찬 응원을 받았습니다. 마치 누군가 필요한 책을 제 손에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서재에 있을 때면 물끄러미 책장에 있는 책들을 보곤 합니다. 이 책들이 곧 저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엔 저의 일부인 서재의 책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후배와 대화를 나누다 그 후배가 관심을 보이는 분야의 책이나 그 후배에게 필요할 것 같은 책을 찾아 짧은 편지를 써서 후배에게 선물하는 프로젝트에요. 새 책을 선물하는 것도 좋지만 제가 읽은 책을 선물하면 내용을 공유하고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오늘은 책장에 있는 책들에게 이 말을 해야겠습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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